“헬스장 다녀올게요.”
아파트 노인회관 2층, 그곳엔 작은 헬스장이 있다.
월회비는 무료, 러닝머신과 사이클이 각각 두 대, 그 밖의 꽤 쓸모 있는 운동기구들이 알차게 있는 아파트 헬스장이다. 최신 운동기구들을 기대하긴 힘들어도 오래된 아파트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게다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지금의 나에겐 엄청난 행운이었다.
물론 내가 이 공간을 알게 된 건, 움직이는 병에 걸린이후부터다.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선생님 말씀은 곧 잘 듣는 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나는 원래 부지런쟁이가 아니었다.
소파에 누워서 TV 드라마 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던 지극히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당뇨 진단을 받은 이후 나의 삶에 가장 큰 변화는 다름 아닌 식단과 운동이었다.
예전엔 치킨, 피자, 고기 등 살찌는 음식들을 즐겨 먹었다. 엄마 가게에서 흔히 보였던 튀김류의 음식들은 내게는 당연히 주 3 회 이상은 먹는 음식들이었고, 특히나 컵라면을 먹을 때면 물을 반만 따라 짜게 먹기 일수였다. 그렇게 한때는 고추장을 간식처럼 먹기도 했던 내가, 당뇨 진단 이후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빵 먹고 싶다.’
게다가 당뇨 진단을 받기 직전 한 두 달은 하루 2만 칼로리씩 먹은 것 같다.
그때 맛 들려버린 빵의 유혹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혔다.
작심삼일처럼, 삼일 정도 식단관리를 잘하면 어김없이 빵의 유혹에 휩싸였다.
하필이면 코 앞에 있는 빵집, 구경하다가 빵을 한 아름 사 왔다. 아침, 점심, 저녁 빵빵빵. 빵 식단.
먹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입 안 가득 베어 물어 버렸다. 물론 주사를 맞고 먹었지만 턱도 없었다. 정제된 밀가루, 설탕, 버터가 잔뜩 들어간 빵을 먹으면, 평소 주사의 두 배 이상은 맞아야 하지만, 탄수화물 감이 없었던 그때의 나는 무조건 운동으로 당을 낮추려고만 했다.
사이클 1시간, 러닝머신 1시간, 윗몸일으키기, 스쾃, 스트레칭…. 점심을 먹으면 3시간이 넘게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식단이 주는 악순환은 반복이었지만, 그래도 음식에 대한 집착은 서서히 잠잠해져 갔고, 전보다 훨씬 좋아진 컨디션에 제법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당뇨는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고혈당일 때나 저혈당일 때나 겉으로 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그 증상이 다르다고 하지만 보통 난 갈증이 나고 허기가 지고 소변이 자주 마렵고 눈이 흐릿할 때 고혈당이었고, 손이 떨리고 갑자기 배가 고프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을 때 저혈당이었다. 이런 느낌들은 특별히 티가 나거나,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아니기에, 스스로 고혈당과 저혈당이라는 두려움과 맞설 수밖에 없다.
1형 당뇨와 처음 마주했던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방학 내내 나는 집과 헬스장을 오가며 고혈당과 싸웠고, 3개월 뒤, 첫 외래진료에서 당화혈색소 5.7%의 성적표를 받았다.
마치 고혈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분이었다.
그 후로, 그렇게 좋은 성적을 받기까지 12년이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오늘은 어디를 청소하지?’
당뇨 진단을 받은 지 꼭 1년이 된 겨울방학.
움직임 중독에 걸린 나는, 오늘도 밥을 먹으면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음… 소파 먼지를 좀 털고, 텔레비전 위에 먼지도 좀 닦아야겠다.’
일 년 전, 암담한 미래보다는 하루하루 살아 내기 위해 시작했던 운동은, 이제 나의 삶이 되어가고 있었다. 운동이 가져다준 활력은 나의 게으름 세포까지 침투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움직임으로 내 주변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오와 열을 맞춰 각 잡힌 물건들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가족들은 청소부가 있어 좋다가도, 동시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다.
“여기에 두면 어떡해!!”
“으유, 저 호랑이 할머니.”
어릴 적 동생을 돌보던 엄한 누나, 나의 별명이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