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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Sep 23. 2022

타율적 독립의 기회

 



난 어릴 적부터 집순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밖에서 놀다가도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 했고, 친구가 우선인 중고등학교 때도 친구네 집에서 놀다 자는 것보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자는 게 더 편하고 좋았다.

이런 집순이 기질은 대학교에 가면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는데, 문제는 학교가 너무 멀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1시간이면 버스로 괜찮지 않을까? 아 학교버스 타러 가는 시간까지 더하면 1시간 반, 그럼 왕복 3시간.. 매일매일 등교.. 힘들려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결과는 역시 버스통학이라는 뻔한 답이었지만.


연년생은 아니지만 내가 학교를 빨리 들어가게 되어 언니와 나는 한 학년 차이다. 한 해 먼저 대학교에 입학한 언니는 대전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대전도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간호학과라는 특성상 시험도 많고 실습도 있어 자취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중, 고, 대학생을 뒷바라지하는 엄마에게 등록금과 더불어 자취 비용이라는 변수는 계획에 없던 지출이었을 거다.


게다가 나까지 연달아 대학에 보내려면, 등록금 말고도 화장품, 옷, 책 등등 생각보다 많은 지출이 필요했다. 그나마 언니는 나를 위해 재수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해주었었고, 나는 등록금이 두 배 이상 비쌌던 가까운 학교가 아닌, 멀지만 합리적인 등록금의 국립대학교를 택했다. 이 합리적인 선택은 가족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난 힘들게 자취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가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집이 더 좋다는 생각이었다.

또 가끔 바쁠 때는 엄마 가게를 도울 수도 있고, 아직은 어린 남동생도 집에 혼자인 게 마음에 걸렸다.


다행인 건 우리 학교는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곳에 교양수업을 들을 수 있는 작은 캠퍼스가 있었고, 주 2일은 그나마 수고로움을 조금 덜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1학년 때까지였지만.

그밖에도 난 학교에 가기 위한 돈과 시간의 지출을 막기 위해 하루의 공강을 만들었어야 했고,  꽉 찬 4일 수업을 듣기 위한 수강신청은 전쟁과도 같았다. 뭐, 대학생이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집 앞 PC방에서 1시간 전부터 대기는 필수였다.


“성공이다.”


아쉽게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이 하필이면 공강 날이라 선택하지 못했지만, 이번 학기도 주 4일만 고생하면 된다. 그렇게 3학년 2학기 수업 날이 결정되었다.



“얘들아~ 이번 교환학생 시험 얘기 들었어?”

“교환학생..?”



가을, 2학기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곧, 2012년 교환학생을 뽑는 시험이 치러질 예정이란다.

교환학생, 우리 학교와 협력을 맺은 외국학교가 일정기간 동안 서로의 학생들을 교환하여 유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교환학생 대상으로 선정이 된다면 적어도 1년 동안은 중국에서 유학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고, 물론 나에게 해당될 수도 있는 얘기였다.


중국어과를 선택하고 중국 유학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갑작스러웠고, 또 망설여졌다. 20년이 넘게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가족들, 사귄 지 200일 밖에 안된 남자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 당뇨관리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럼 3개월마다 받는 정기검사는 어떡하지.. 인슐린이랑.. 바늘이랑.. 내가 다 챙겨가면 괜찮은 걸까? 갑자기 쇼크로 쓰러지면 어떡하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걱정은 이미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야만 할 것 같았고, 가고 싶은 기회였다.



‘더 이상 나에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3학년이 되기 전 1형 당뇨 판정을 받았던 나였다. 하늘도 땅도 무너지는 것만 같았던 그날 이후, 마치 나는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던 탓일까, 도전하는 일이 가장 두렵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나에게는 어떤 나쁜 일도 오지 않을 거다’라는 막연한 주문을, 아니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쭈뼛거리며 겁내 했을 전과 비교한다면, 꽤나 긍정적인 변화였다. 용기 있게 도전하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가도 되고 못 가도 할 수 없다’라는 말로 애써 티 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유학길을 향해 있었고, 꼭 원하는 학교로 가고 싶었다.


중국어과는 한 학년에 40명 정도, 대게 3학년~4학년 정도에 어학연수를 준비한다고 하면, 군 휴학이나 유학을 원치 않는 학생들을 제외해도 유학생 시험 응시자는 50명 이상은 될 것이다.

거기에 다른 학과 학생들도 기회는 있다. 그럼 이번 교환학생 시험은 피 튀기는 경쟁이…


 “이번에는 1지망, 2지망 선택이 있고, 성적순으로 자른대.”


 “그럼 1 지망에 학교가 몰리면, 성적이 좋아도 못 갈 수 있는 거잖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완전한 성적순도 아닌, 희망학교를 적는 것도 포함이라니, 눈치게임이 따로 없다.



‘1 지망 천진공업대학교, 2 지망 북경공업대학교...’


협력을 한 대학교 중에서 두 곳을 골라 적었다. 이밖에도 상해, 서주 등 다른 지역도 있었지만,

1순위는 천진이었다. 최대한 유학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고, 엄마손을 그나마 덜 빌리기 위한 최적의 선택은 이곳이다.

다른 대학과 달리 천진 공대는 100만 원가량의 왕복 비행기표를 제공해주었으며, 기숙사도 무료였다. 게다가 한 달에 한화로 13만 원가량의 용돈까지 지급해주는 의심이 갈 정도로 조건이었다.

이 정도라면 오히려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돈이 덜 들 것 같았다.

단, 3명 안에 들어야 한다. 조건이 좋은 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10명 정도 씩 자리가 있는 다른 대학들과 달리 천진은 단 3명만이 갈 수 있었다. 1 지망에서 떨어지면, 성적이 좋아도 2 지망 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1 지망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어.’


을씨년스러운 날씨의 11월 끝자락, 나는 마치 마지막 전쟁을 치르는 용사처럼 굳건한 마음으로 다짐하며, 교환학생 선발 시험장으로 향했다.

 

 

12월, 어느덧 학기가 끝나가는 오늘은 ‘중국어과 학술제’가 있는 날이다.

작년엔 한창 아팠을 때 학술제 연극을 준비했었는데, 꼭 1년이 지난 오늘은 동기 두 명과 중국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얘들아! 교환학생 발표 났대!!”



공연 리허설 대기 중, 교환학생 결과가 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달려가 확인을 한 결과...



‘합격이다...’



순간, 낯선 곳에서 홀로 적응해내야 한다는 두려움은 이미 없었다.

해냈다는 기쁨, 행복함과 뿌듯함만이 남아있었다.

나에게도 자의적이면서도 타의적인 독립의 기회가 오다니,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니 잘 해낼 수 있다.




이듬해 2012년 3월, 나는 같은 과 언니, 동생과 함께 중국 천진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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