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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Sep 24. 2022

난장(亂場)의 학교




‘여기…? 여기가 기숙사라고..?’



나의 첫 독립공간. 중국 대학교 안, 외국인 기숙사의 첫인상은 나의 기대를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하얀 외벽의 6층짜리 건물 두어 개.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었다. 마치 우리나라 80-90년대 연립주택과 비슷한 모습.거기까진 큰 실망감은 없었다.

1층 입구, 경비실 같은 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세탁실이 나오고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각 층마다 4-5개의 방이 있었고, 2층엔 슬기 언니와 다른 학교 여학생이 쓰는 방이, 그리고 같은 구조의 5층엔 나와 은정이의 방이 있었다.

올라가는 길, 슬기 언니가 머물게 될 기숙사 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곳곳의 거미줄과 파손된 문과 벽, 닫히지 않는 옷장.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침대 매트리스가 오래되어 마치 관에 들어가는 것처럼 움푹 파여있었던 모습이었다.


“언니.. 여기서 진짜 잘 수 있겠어요..?”

“할 수 없지 뭐..”


언니는 이미 기대하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도 깨끗하진 않았지만 각 방엔 작은 미니 거실과, 욕실, 독립된 주방과 작은 발코니도 있었다. 나름대로 다른 일반 중국인 기숙사에 비하면 아주 신식이었다.


“우리도 빨리 올라 가보자.”


은정이와 나는 서둘러 우리 공간으로 올라갔다. 5층이라 매일 오고 가기 힘들겠단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냥 운동하는 셈 치자 생각했다.


‘503호, 여기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환한 빛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 생각보다 깨끗한데...?’



2층 슬기 언니 방을 보고 올라와서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일까? 생각 외로 깨끗한 룸 컨디션에 내심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던 방 인걸 알려주듯 구석구석 거미줄과 먼지가 잔뜩 쌓여있었고, 청소 중 알게 된 끔찍한 사실은 천장엔 죽은 모기 자국들이 가득했다는 사실이다.


옆집 사는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짐을 옮긴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슐린을 냉장고에 넣는 일이었다.

혹시 꽁꽁 얼까 봐 기내용 백팩에 넣어온, 내 생명을 지켜 줄 소중한 녀석. 들어오자마자 냉장고의 플러그를 연결했고 가장 위쪽, 지퍼백에 담긴 인슐린 뭉터기를 내려놓았다. 작지만 그래도 냉장고가 있어 다행이었다.


우린 서둘러 다시 2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주변을 돌아본 후 저녁을 먹었다.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방.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기숙사로 향했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은정이와 나는 짐 정리와 청소를 시작했다.


“우리 이러다 밤샐 것 같지?”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라 그런 걸까, 묵은 먼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온돌문화가 아니기에 아마 침대 바로 아래까지 신발을 신고 드나들었을 거다. 집 안에서 신발 신는 게 익숙지 않았던 우리는 현관에서 들어오자마자 있는 거실 공간과 그 옆의 부엌 공간에서만 신발을 신기로 했고, 중문 안 쪽 침실 공간은 신발을 신지 않는 좌식 공간으로 쓰기로 했다. 옷장과 책상을 간단히 닦아내고 짐 정리만 했는데도 한참이 지났다.

침대 이불을 털고, 타일 바닥을 물걸레질하며 뽀득뽀득 닦아냈다.

한참의 정리와 청소를 마치고, 씻는 중에도 욕실 때를 벗겨내느라 한참을 씻었고, 나오고 나서 잠들기 전까지는 삼면에 붙어 있는 모기 자국을 떼어내려 한동안 씨름을 했다.


끝없는 전쟁 같았던 청소는 새벽 4시가 되어서 끝이 났다. 그쯤의 수고로운 청소를 하고 나서야 그나마 잘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잠자리에 들며 은정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방의 양끝으로 침대와 책상이 자리한 기숙사, 고가도로의 차들을 비추는 가로등과 달빛 덕분에 우리 방은 주황빛으로 환했고, 아직 채 봄이 오지 않은 3월의 날씨는 얇디얇은 창문 한 겹이 버티기엔 조금은 차가운 온도였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래 한번 해봐야지.’


그래도 현지 경험이 있는 슬기 언니와 동생이지만 속이 깊은 은정이가 함께해서 다행이었다.

혼자라면 무서웠을 첫 기숙사의 밤이 이렇게 지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중국 학교는 신(新) 캠퍼스를 지어 이사를 간 후였고, 일부 대학원생들과 외국인 유학생들만 구(舊) 캠퍼스에서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유학생 기숙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단, 언제 새로운 캠퍼스로 이사를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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