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혈당 500이 넘고, 당화혈색소는 13.8%, 소아당뇨인 것 같습니다.”
“네? 당뇨라니요? 그리고 저는 성인인대요?”
“1형당뇨라고 하는데, 보통 어릴 때 많이 생겨서 소아 당뇨라고 해요, 그런데 요즘은 20대에도 걸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보통 많이 먹어도 살이 빠지고, 다식(多食), 다음(多飮), 다뇨(多尿) 현상들이 있고요. 아 눈도 흐릿하지 않았어요?”
“네... 잘 안보였어요...근데 당뇨일줄은…. 그럼 ..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앞으로는 5대영양소를 골고루 나누어 섭취해야 하고, 인슐린주사를 맞아야 해요.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고, 스트레스도 받으면 안되고요. 아이스크림, 과자, 사탕 이런 것도 안돼요.”
“수술도 있잖아요, 수술하면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요?”
“췌장이 워낙 안쪽에 있어서... 아직 성공사례도 없고...현재로서는 어렵습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그럼.…..그렇게 살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낫겠어요.”
2010년 12월 6일. 첫 진료를 받는 날.
난 의사선생님 앞에서 엄마에게 소리쳤다.
“다 엄마 때문이야!!! 나 그냥 죽을래, 어떻게 이렇게 살아? 어차피 나중에 실명 될 수도 있고, 손발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며! 그냥 죽는 게 낫겠어!”
아무런 죄도 없는 엄마 탓을 했다. 그냥 뭐든 내가 아닌 다른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을까, 엄마라는 이유로, 굳어진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틀전에도 스무 살 여학생이 실려왔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쇼크로 쓰러져서 실려 왔을거에요.”
‘정말 다행히도 부정출혈이 날 살린 거라고?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건가.’
의사선생님은 나를 걱정한다고 하는 말이었겠지만, 3년전 산부인과의사선생님의 말에 날 서 있었던 나와 같이, 어떤 말도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몸속 깊은 곳 췌장이라는 곳에서 이제 더이상 인슐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무언가 먹기 전에 인슐린 주사를 항상 맞아야 한다고 한다. 내가 좋아했던 음식들은 이제 먹어 선 안 된다고 한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15년이 지나면 합병증이 올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떤 게 잘못되었길래, 나에게 이런 병이 온 걸까? 왜,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네가 잘 사나 보자.’
꼭 하늘이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왜, 왜 나인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가, 어릴 때부터 늘 엄마 말씀도 잘 듣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동생도 잘 챙기고, 친구들과 크게 싸우는 일 없이, 오히려 바보 같이 내 것을 내어주며 피해보더라도 ‘언젠간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위로하며 잘 살았는데. 이건 말이 안된다.
‘죽으라는 건가보다. 그냥 살지 말라는 뜻인가 봐.’
인정할 수 없었다. 우리집엔 당뇨인 사람이 없었고, 유전적인 영향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와 엄마는 한동안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만 닦아냈을 뿐.
당뇨 진단을 받은 첫 날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