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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Sep 22. 2022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난 걸까




‘좀 그만하고 싶다…’



고등학교 1학년, 나는 1년 내내 생리대를 하고 다녔다. 많던, 적던 매일 피가 새어 나왔다.

불편한 것은 둘째, 종일 공기가 안 통해서 습진으로 피부가 죽어갔다. 그때 난 어린 맘에 내가 여자로 태어나 생리를 한다는 게 억울하고 참 분했었다.


‘다음 생에는 제발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매일 빌었었다. 그러다 1학년 겨울방학, 갑자기 많아진 출혈에 병원에 갔었다.


 ‘호르몬 불균형’


호르몬이 불규칙적으로 분비되어서 그렇다는데, 아직 어려서 자궁을 건들기엔 힘들고, 약을 먹고 출혈을 멎게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피를 너무 많아 쏟아 걱정이라며 소의 생간을 손수 사다 주셨었는데

차마 그 비릿한 것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또다시 멈출 줄 모르는 출혈이 시작되었고, 일주일이 넘게 남아나는 이불이 없을 정도로 밤새 피를 흘렸다.



‘보충수업 가야 하는데…….’


이제 곧 고3. 아무리 힘들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생각에 피범벅이 된 이불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여느 때처럼 변기에 앉았고, 그 이후로 기억이 없다.


‘차갑다.’


왼쪽 볼이 차가웠다.


‘으.. 머리 아파.. 여기가 어디 지’


내가 일어서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난 화장실 타일 위에 엎어져 있었고, 나를 발견한 엄마는 곧장 날 등에 업고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은 데요.”


동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말에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큰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했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여고생의 신분으로 수치스러운 질문들과 동시에 여러 명의 의사들이 나의 아래쪽을 바라보는 순간의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 물론 그 순간엔 정신이 없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가물거리는 흐릿한 기억이다.



 “아마 옛날에 태어났으면 죽었을 거예요.”


 ‘네, 그렇지만 요즘 태어난 걸 감사하다고 생각하기엔 저는 이미 너무 힘들어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어린 나이였기에 세상의 관대함을 바랐던 나는 애꿎은 하늘에 원망 아닌 원망을 했다. 물론 속으로만.


며칠을 산부인과 병동에 입원하며,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역시나 어린 나에게 여자의 가장 중요한 자궁님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일 일터, 약물로 치료하고 기다려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출혈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수혈도 받았다. 남의 피를 받아, 나는 금세 회복이 되었지만 원인을 치료한 것은 아니기에 늘 불안함에 살았고, 고3 내내 홍삼진액과 보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다시 3년이 지났다.




 ‘피다. 또 시작인가….’



또다시 출혈전쟁이 시작됐다. 30분에 대형 패드를 한 장씩 갈았다.

거의 앉아서 잠을 잔 것 같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틀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출혈에 이번엔 지체하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온갖 검사를 다했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호르몬 불균형, 피임약 처방. 별다른 수가 없는 기다림이 약인 병인가 보다 생각하며 허탈한 맘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오후 다섯시, 지는 해의 빛이 거실을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였던 그때, 그 따뜻함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입니다. 공복혈당 수치가 500이 넘어서, 급히 전화드렸습니다. 지금 바로 입원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산부인과가 아니었다.


.

.


내분비내과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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