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걷고, 말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학습을 하게 되며, 일을 하게 되고, 또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 사이에 우리는 행복한 일들도, 가슴 아픈 슬픔과 고통도 경험하며 제각기 어른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는 인과(因果)가 있다.
‘원인과 결과’라는 공식은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붙어 다니는 것들이라 우리를 안심하게 하기도, 불안에 떨게 하기도 하는데, 그 중 ‘원인’이라는 녀석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범위로 무질서한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어 우리를 더 사지(死地)로 내모는 듯하다.
‘원인이 없다, 이유가 없다, 근거가 없다‘
분명 어딘가엔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끊임없는연구는 아마 인류가 그 삶을 다하는 순간까지 반복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이유와, 설령 알아낸 원인들이라 할지라도 해결되지 않는 결과를 가진 무수한 질병들. 그 아픔과 싸우고 있는, 아니 싸울 수조차 없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아주 많이 그리고 숨죽여 존재한다.
어느 날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는데, 이런 글귀가 보였다.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객관성이 없어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 글을 읽으며, 불행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불행은 우리 모두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다만 상상하지 않았던 불행에 대한 타격감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행복한 미래는 상상하지만, 불행할 미래는상상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쳤을 때 입는 상처의 깊이는, 꽤나 깊다.
나 또한 그랬다. 이 상처를 입기 전 까지는, 1형당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그저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다짐하며 행복한 미래만을 그렸다.
나에겐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은 오지 않길 바랐다.
나는 흔하디 흔한 당뇨환자다.
하지만 당뇨 환자 중에서도 보기 드문 1형 당뇨환자.
그래서 흔하지 않은 당뇨환자라고 말해야 맞을 수도있겠다.
세계 당뇨 인구 중 5%, 당뇨환자 100명중 1명에 해당하는 1형당뇨인은, 국내에만 약 4만 4천여명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병으로 일반 당뇨와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소수의 병, 불편해야 편하게 살 수 있는 이 병과 나는어떻게 마주 서야 할까 고민했다.
처음엔 치열하게 부정했고, 어느 순간 이 지독한 불편함을 인정해버린 것 같다.
“아픔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 병은 인생의 선물과도 같아요”라는 희망적인 말들 만으론 지킬 수 없었다.
내가 찾은 길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를 잘 지내고, 내일 하루를 또 잘 보내는 것.오늘을 잘 못 보냈 어도 괜찮다. 내일을 다시 잘 보내면 되지 않은가.
아픔에 몰입하지 않되, 숨쉬듯 함께하는 것. 어쩌면 이 습관이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응원과 격려, 감사의 말들도 모두 ‘내가 괜찮아야’ 힘으로 그 빛을 발휘한다.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이었다. 나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건 그냥 일어난 일이다.
나는 나의 힘으로 이 이유없이 찾아온 아픔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당신도 분명 그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 나의 온도를 정하는 힘은 온전한 나의 힘이며,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