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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Oct 05. 2022

후회없는 오늘을




'성실하게 살자' 우리 집 가훈이다.

이 심플하고도 우직한 가훈은, 우리 집안사람들이 하늘이 두쪽이나도 자기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하도록 만들어준 무형체의 동력을 주었다.


'습관이 성공을 기른다' 중학교 2학년, 좌우명을 써오라는 숙제에 나는 저 말을 적었었다.

이유는, 그냥 멋있어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우리 집 가훈을 따르듯, 저 좌우명대로 행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었다.



그리고, 스무 살 이후 나에겐 하나의 좌우명이 더 생겼다.




"아무리 잘 관리해도 10년 정도 지나면 족부괴사, 실명 등의 합병증이 올 수도 있어요."


1형 당뇨 진단을 받았던 날,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사로서, 그저 최악의 상황을 말해준 것뿐이었겠지만, 이 말을 들었던 스무 살의 나는, 딱 10년 뒤, 서른 살까지만 살겠다고 결심했었다.

서른 살 이후의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성실하게 살아왔던 나의 습관은, 계속해서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고,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내일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자.'


그리고, 어느새 이런 다짐을 하고 하루하루를 지나는 나를 마주했다.


인생이 바뀔만한 큰 일이나 병이 아니면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는데,

나에게는 나를 고쳐 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것은 행운이었을까.

불확실한 내일에 불안하던 스무 살 겁쟁이를, 겁 없이 도전하고 실패에 두려움 없는 당찬 어른이 되게 해 주었고, 그 도전 덕분에 여러 경험들을 하게 되었던 내 자아는,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두꺼운 보호막을 만들었다.


오래도록 한 꺼풀씩 용기가 쌓여 이제 단단해졌는지, 나는 서른 살 넘은 이 순간에도 아직 잘 살아가고 있다.

이따금씩 오는 자괴나 슬픔에도 잘 버티고 있다.




한때, 결혼을 하고, 마음이 안정적 이어진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즈음 나는 아주 불안했다.


"너무 행복해서, 너무 불안해."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 힘든 일 뒤엔 반드시 행복이 찾아오는 것처럼. 밝음 뒤엔 어둠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남편은 나에게 늘 이렇게 말해주었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해. 일어나지 않은 일에 걱정하지마.“


그렇게 또 한 번 남편이 주는 안정어(安靜語)를 먹는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 결혼해, 서른을 넘긴 나에게 이제는 '서른이 되면 죽음을 택하겠어.'라는 말은 사라졌다.

13년째 함께하고 있는 이 병을 사랑까지는 못해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도 하다.

'내일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자.'라고 다짐했던 이십 대를 지나며 바뀐 게 있다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어떤 것도 그냥 얻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것

이해가 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

그러므로 화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

말씨와 표정에서 그 사람의 세월을 볼 수 있다는 것

빠른 일처리보다는, 바른 일처리에 초점을 둔다는 것

내 건강을 해치는 범위의 인간관계를 하지 않는 것


내 체력의 한계를 알고, 내 단점에 부딪혀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보내고, 삼십 대가 된 오늘의 나.

여전히 나는, 내일이 오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오늘을 살고 있다.


아주 행복하고, 정직하게.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는 마음을 가족과, 아이들과, 마음에 담은 친구들에게 보내며.



만약, 당신이 일상이 달라진 아픔과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감히..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다 지나갈 거고, 잘 지나가고 있고,

힘들겠지만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고..

내 몸과 마음이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 동안 충분히 힘들어하되, 너무 가혹하게 굴지는 말라고..

불행에 맞서는 것보다는, 행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다독여 주라고..


나는 당신이 너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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