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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 산에 뜬 달 Oct 05. 2023

백제 여행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2023년 초 아직 겨울바람이 기세를 부리고 있을 때 공주-서산-부여를 잇는 '백제 여행'을 했다. 친구가 내 여행 계획을 듣더니 충청도식 먹부림이라고 들어봤냐면서 해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충청도 한 집에 손님으로 갔더니만 집주인이 재래김과 간장을 곁들인 밥상을 내오며 소소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란다. 알고 보니 식기는 전부 방짜유기에 간장은 오백 년 된 씨간장이고 김은 유기농으로 화로에 한 장 한 장 구워 내 온 밥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백제 스타일 플렉스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외지인용 유명 관광명소를 엮은 여행 일정이었지만 내가 본 충청도 백제의 모습도 그러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고려의 문신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궁궐에 대해 표현한 말이다. 여행에서 직접 본 백제의 건축과 예술품에서 받은 느낌도 위 표현이 딱이다. 백제의 문화유산은 이보다 더 적당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최고의 재료와 기술로 표현되어 있었고, 마냥 화려하고 들뜨지 않게 뒷꼭지를 살짝 잡아당겨 눌러 앉힌 듯한 모양새로 우리를 맞았다.



공주국립박물관 – 무령왕

송산리 백제 왕가의 무덤군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무령왕릉이기 때문이다.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라 묘지석을 통해 무덤 주인을 특정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기 때문이다. 백제왕릉 중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단 하나의 무덤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굴 당시의 사진을 보면 질척이는 바닥에 발굴단과 인부, 사진기자들이 섞여 이런 아수라장이 없다. 도굴도 이것보다는 더 체계적으로 정성들여한다며 최악의 발굴로 기록되며 학자들이 두고두고 수치스럽고 안타깝게 여기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박물관에 옮겨져 박제된 무령왕의 유물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검소하지 않다. 극강의 화이불치(華而不侈)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뛰어난 금세공술은 금을 종이보다 더 얇게 펴 문양을 만들어내고 미세하게 오려내고, 끝까지 다듬고 덜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금이 아무리 무르다지만 그 옛날 1~2mm 정도로 작은 고리나 구슬을 그토록 정교하게 엮고 쌓은 기교와 집념이 놀랍다.

일본에서 수입된 금송(金松)과 삼나무로 만들어진 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장신구를 껴묻기 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을 보며 고대에서 죽음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백제의 미소니 하는 이미지로 가려져 있지만 백제 왕가는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31명의 군주들 가운데 13명이 단명하거나 암살되었고, 3명은 전쟁터에서 살해당했으며, 1명은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부흥을 꿈꾸며 야심 차게 천도한 짧은 웅진 백제 시절 총 네 명의 왕이 있었는데 무령왕은 암살되지 않고 자연사한 유일한 왕이다. 안정적인 치세를 하고 성정도 온화하고 어질었다는 무령왕. 하지만 그는 방문 너머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진한 죽음의 그림자를 평생 두려워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의 죽음은 그의 생보다 더 평온하고 달콤했을 것이며 영원히 지속되어야 했다. 하지만 야단법석으로 그 잠은 방해받았고 왕과 왕비의 관은 박물관의 은근한 조명 아래 놓여있었지만 어딘가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다.

무령왕과 무령왕비의 관


1500년동안 무령왕의 무덤을 지킨 진묘수 - 뒷발 하나가 떨어진채로 발견되었는데, 무덤을 지키게 할 목적으로 만든 직후 일부러 깼다는 해석이 있음



정림사지 5층석탑(부여)

석탑인데도 목탑의 형식을 하고 있는 독특한 백제의 탑은? 학창 시절 국사 단골 문제로 나오던 그 탑을 이제야 본다. 남아있는 전각 하나 없이 너른 터를 지키고 있는 탑이 외롭다. 탑의 각 층 지붕돌의 사방 끝이 살짝 위로 굽어 빼어 올려져 있다. 단단한 화강암을 마치 찰흙처럼 주물러 딱 적당하게 멋을 낸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쳐다보았다.

석탑 1층 탑신부에는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낙서가 4면을 둘러싸고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나의 관전 포인트는 이것이다. 소정방은 급하게 전후 처리를 하고 퇴각하느라 기념비를 새로 만들어 새기지 못하고 정림사에 있는 탑을 활용한다. 글은 '대당평백제국비명'이라고 시작하는데 이 탑이 있던 자리가 정림사라는 근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만들어 두고 간 탑이라 여겨져 '평제탑'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불리는 수모를 당했다.

낙서의 내용은 당나라가 친히 백제 정벌에 나선 이유, 그리고 자신들의 군사력 자랑, 의자왕과 그의 자식들을 포함해 포로를 몇 명 잡아서 당으로 데려간다는 내용, 백제를 접수하고 보니 행정구역이 이렇고 인구는 몇이더라, 내가 접수한 김에 당나라식으로 행정구역을 선진적으로 재편하고 간다는 내용등이다. 사비와 웅진은 쑥대밭이 되어 불타고 있고 왕족들은 줄줄이 엮여 배에 태워져 당나라로 끌려가는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소정방의 모욕적인 글로 오염된 이 탑 앞에 섰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짧지 않은 700여 년 백제의 역사에서 무덤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건축물이다. 이 탑은 영원할 것 같은 왕국의 찬란함, 그것이 쇠망할 때의 비참함을 동시에 고하는 증언자의 모습으로 꼿꼿이 서 있었다.

정림사지5층석탑
소정방의 낙서 - 대당평백제국비명



백마강과 낙화암

구드래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의외로 겨울 강바람이 사납지 않다. 백마강에서 올려다보는 낙화암은 아찔하지도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조촐한 땅에 몸을 던질 삼천의 궁녀가 있을 리도, 있었다 해도 서있을 자리도 없는 절벽일 뿐이지만 망한 나라의 왕은 마땅히 조롱과 모욕을 감당해야 했다. 용맹하고 결단력 있고, 형제들과 우애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효를 다해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인 증자를 빗대 중국 역사서에도 '해동증자'로 기록된 의자왕. 그는 어쩌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치욕스럽게 중국으로 끌려가 당 고종에게 무릎을 꿇은 지 며칠도 안돼 비탄속에 죽어 나라 잃은 왕들의 공동묘지라는 낙양의 북망산에 묻혔는가.

고란사 선착장에 내려 부소산성을 오른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나른하게 흐르는 백마강과 부여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왜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성을 쌓았는지 알겠다. 내려오는 길 군데군데 유물 발굴이 한창이다. 부디 시간을 들여 잊힌 이야기들을 한 겹 한 겹 찬찬히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구드래 나루터 - 황포돛배


부소산 백화정에서 내려다본 백마강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곳

내 고향은 마치 맹장처럼 육지에 붙어 있는 충청도의 한 섬인데 어릴 적을 떠올려 보면 느릿느릿 말하고 느긋하게 움직이던 이웃들이 생각난다. 말을 하더라도 어떻게 말하면 상대가 나중에 문고리 잡고 웃음이 픽 새어 나오게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 같다. 아버지는 내가 뭘 떨어뜨리면 빙글빙글 웃으며 그렇게 해서 그게 깨지겄냐 더 씨게 해야지~ 하시던 분이었다. 그 섬에서의 아버지와 이웃 사람들은 그런 의뭉스러운 화법으로 말하고, 덜 화내고 더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 모습을 잊고 있다가 이번 여행으로 충청도 사람들의 느긋함을 다시 마주한다. 도착한 날 공주박물관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 점심때를 놓쳐버렸다.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검색해서 찾아간 식당들은 거의 다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들어가는 가게마다 안내판을 가리키며 점잖게 우리를 내쫓았다. 난감해하는 우리를 보는 주인들의 얼굴엔 그렇게 배가 고프면 어제 오지 그랬슈~ 하는 충청도 사람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문에 밝은 관광지 상인들조차 무리하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백제땅에서 태어난 나도 이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을 것인데 부박한 도시생활로 그 성정을 잃어버렸다. 나의 동족들이 건재함을 확인했으니 나도 백제인의 본성을 깨우쳐 좀 느긋하게 살 일이다.

부여국립박물관을 못 보고 와서 못내 아쉬웠는데 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을 맞아 특별전을 한다는 소식이 있다. 이번 가을에 미처 못 본 백제의 유물과 공산성을 둘러보러 다시 한번 충청도 백제땅으로 가야 하나 즐거운 고민을 해본다.     




p.s. 나를 위한 기억저장소     


1일 차 : 국립공주박물관 – 웅진백제문화 역사관 -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


2일 차 : 해미읍성 – 정림사지 5층석탑 - 정림사지박물관 – 부여돈까스 – 백마강 – 낙화암 – 부소산성 둘레길 - 에펠제과 


부여돈까스 : 클래식하게 샐러드, 수프, 모닝롤을 주는데 배가 작은 나는 이걸 먹고 배가 불러 정작 돈가스는 싸 옴. 돈까스 맛은 안정적이고 누구나 다 아는 그 맛. 젊은 부부가 느긋하게 운영하는 가게다.

에펠제과 : 우리 집엔 빵지순례자가 있어 어딜 가든 지역 유명빵집 도장깨기를 해야 함. 튀김샌드위치가 유명하다 함. 사장님이 마애삼존여래불상의 미소를 하고 계산할 때 빵을 더 주심. 백제 스케일~


부여돈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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