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학교에서 외국인 교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왜'에 대하여.
1. 왜? vs 왜!
타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화 차이로 인한 충돌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 충돌의 시작은 보통 물리적인 충돌의 형태로 발현되어 시끌벅적하지만 그 첫 단계만 잘 넘어가면
새로운 문화와의 화학적 반응을 보이며 참신한 융합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타 문화와 타 문화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고정관념을 깨부수어 나가면서 만들어진 융합물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태국 학교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던 지난봄의 나와 이제 한 해의 꽁무니에 서 있는 나는 더 이상 같은 내가 아니다.
내 상식이 이해할 수 없는 태국 학교 문화와 그 이질감에 흥분하고 속앓이를 하던 내가 이제는 훅 치고 들어오는 새로움을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내 사고는 태국이라는, 그리고 태국 학교라는 또 다른 문화를 만나 확장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가 근무하는 태국 학교 교무실에는 태국인 교사들 30여 명과 함께 필리핀 교사 4명, 영국인 교사 3명, 파키스탄 교사 1명, 한국인 교사(나) 1명, 일본인 교사 1명, 중국인 교사 1명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교사들이 한 공간에 있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외국인 교사들은 요즘, 태국 문화와의 충돌로 인한 물리적 좌충우돌을 격렬하게 진행하는 모양새다.
"왜(why)?"로 시작하는 물음이 잦은 신참 교사들의 애달픈 외침을 듣다 보니 '왜'라는 성질은 두 가지로 나뉜다는 걸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정말 몰라서 진정한 답을 원하는 '왜'와 자신만의 답이 이미 나와 있어 답 따위는 필요 없이 느낌표가 꽂힌 '왜'.
답을 원하는 '왜'는 그저 궁금해서 순진하게 그 답을 얻고 싶을 뿐이다.
골치 아픈 일들이 발생하는 시점은 후자의 느낌표로 끝나는 '왜'가 많아질 때다.
내 경험과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니 그건 잘못되었다는 의도가 충만한 이 '왜'에는 꼰대 냄새가 다분히 배어 있다.
"왜 그러는 건데? 왜 저러는 거냐고!"라는 질문 아닌 질문, 혹은 울분을 토로하며 태국 생활에 스며들기를 완강히 거부해왔던 두 명의 외국인 교사가 지난달, 약 5개월간의 학교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들은 '태국 학교 부적응'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자의 반 타의 반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외국인 교사.
새로 온 지 한 달 된 이 교사는 엄청난 와이(why)쟁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궁금해서 묻는 why이다.
태국 문화에 대한 궁금증뿐 아니라 교무실 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교사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문화 또한 진정 알고 싶다는 눈빛으로 질문을 해댄다.
그런 호기심으로 타문화를 알아가고 수용하려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엄마 미소가 절로 핀다.
당연지사 그는 우리 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태국인 교사들은 외국인 교사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해왔는데 이게 웬일이람, 태국인 교사들도 스스럼없이 그에게는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다.
교무실 내의 놀라운 변화다.
'난 꼰대로 머물겠다' 대 '난 기꺼이 융합하겠다'
이 상반된 두 경우를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존중과 수용, 이해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실천하기가 힘든 일이기에 온갖 미디어 매체와 교육 현장에서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것이리라.
타 문화와의 융합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든, 노력이 부단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노력으로 우리는 새 문화를 접했을 때 물리적 충돌의 혼란 상태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노련함이 길러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오랜 기간 다양한 타 문화권을 전전하며 살아온 나의 경우는 이렇다.
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그리고 타 문화 앞에서 늘 정중하기
이 노력이 쉽지 않기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기장에 적어보고 강조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가도 '내 사고는 늘 성장기'라는 점을 기억하며.
최근에 또다시 한 외국인 교사가 새로 부임했다.
목소리 볼륨 제어가 잘 안 되는 그는 교무실에서 아침부터 "와이(why)! 오 마이 갓, 언빌리버블!"을 외치는 중이다.
그럴 때마다 교무실 내 교사들이 은밀한 미소를 주고받는 걸 보게 된다.
처음에는 다 저렇지.
적응하면서 저 외침이 곧 잦아들 거야.
라는 뜻을 품고 신참 교사의 즐거운 변화를 예상하는 미소라고나 할까.
2. 학교 교지에 실렸습니다.
이제 막 따끈따끈하게 발행된 학교 교지에 이제야 '신규 교사'란에 내가 소개가 되었다.
교지에까지 실리고 나니 진정 이 학교와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진 기분이 든다.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일을 시작한 일본인, 중국인 교사들도 모두 신규 교사란에 사진과 함께 가벼운 인적 사항이 소개되었다.
이로 인해 마스크 속에 숨겨왔던 각 동아시아 교사들의 수줍은 맨얼굴을 전교생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교생이 3천여 명이 되는데 그중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이외에는 각 동아시아 교사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교내에서 교사를 만나면 인사는 해야겠고 저 동아시아 교사는 어느 나라 사람 인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한중일 교사들이 받는 인사말은 종종 번지수가 틀리곤 한다.
게다가 언제인가부터는 "안녕하세요, 니하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아예 3종 세트로 묶어서 인사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내 경우는 피부색까지 까무잡잡해서 태국인 교사라는 오해가 가장 흔하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번지수 찾은 "안녕하세요!"를 들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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