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해 뜨면 나가고, 해 지면 들어오는 거다"
나는 그저 꿈 없는 20대 대학 중퇴자였다 말년 휴가를 나와 복학을 고민했다 3년제 전기과였는데, 2년제였다면 1년만 버티면 되니 다녔겠지만 내겐 2년이란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학자금 대출로 다니던 학교, 복학은 곧 빚이 늘어나는 걸 의미했다 결국 나는 자퇴를 선택했다 대학가 술자리, 친구들은 물었다
"왜 복학 안 하냐, 같이 다니자"
나는 얼버무렸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전역 후 내 일상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새벽까지 게임 영상을 보다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났다 밥 먹고 다시 눕는 '폐인' 생활의 반복 어머니와 동생이 방에 들어와 한소리 하면 짜증부터 냈다
"복학이라도 하든가,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왜 자꾸 잔소리야"
가족들의 걱정이 비수처럼 꽂혔지만, 나는 가시 돋친 말로 튕겨낼 뿐이었다 그렇게 저녁까지 시간을 허비하다가 친구 or 형님들이 부르면 바로 피시방으로 달려갔고 새벽까지 미친 듯이 게임을 했다
어느 날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 어머니가 부탁하셨던 것 같다 삼촌은 혼내는 대신, 딱 한 가지를 부탁하셨다 "00아, 남자는 해 뜨면 밖에 나가서, 해 지면 들어오는 거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해 뜨면 무조건 나가라. 카페라도 가고, 사람들 일하는 풍경이라도 보고 들어와라"
그 말이 묘하게 가슴에 남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도 없었다. 동네부터 시작해 시청, 서울역, 삼청동... 서울 곳곳을 정처 없이 걸었다. 배고프면 길거리 간식을 사 먹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꽃보다 누나> 크로아티아 편을 봤다 화면 속 이국적인 풍경에 가슴이 뛰었다
'해외여행 한번 가보고 싶다'
비행기라곤 제주도 갈 때 타본 게 전부인 나였다 무작정 짐을 쌌다. 핸드폰, 충전기, 그리고 빈 가방 하나 내 목적지는 크로아티아가 아닌, '인천공항'이었다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외국인들의 낯선 말소리, 창밖으로 펼쳐지는 서해바다의 풍경 마치 진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설렘이 일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연인, 웃음꽃 핀 가족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1 터미널로 들어가 출국장과 입국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 돌아온 사람들의 아쉬움 그 틈에 섞여 있으니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았다 한 층을 더 올라가니 한옥처럼 생긴 카페가 보였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구석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보였다 대부분 딱히 갈 곳이 없어 공항으로 마실 나오신 분들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모습이 비참해 보였다 나는 젊은데 왜 늙은이처럼 이렇게 있을까? 그때 어디선가 은은한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반대쪽 유리벽 너머 면세점이 보였다. 사람들은 쇼핑백을 들고 웃고 있었다 그곳에서 밴치가 있었는데 한참을 앉아서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나도 저기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여권도, 탑승권도 없는 나는 들어갈 수 없는 금지된 구역이었다 화려한 공항 풍경 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 모습이 사무치게 처량했다 돈도 없고, 용기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나, 바이올린 소리가 내 비참함을 배경음악처럼 깔아주고 있었다 식당에 가서 밥 한 끼를 먹는데 주변에 많은 여행객들과 내 또래로 보이는 비슷한 친구들이 여행준비를 하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어려웠지만 다짐했다 통장 잔고는 10만 원도 안 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나도 돈 벌어서 해외여행 꼭 간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지 말자'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달라졌다 더 이상 방구석에 숨지 않았다 마침 아는 형님이 취업 제안을 했다 농수산물과 학교 납품을 하는 업체인데, 면접을 한번 보라고 했다 면접 분위기는 좋았고, 조만간 부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호텔 뷔페 서빙, 헬스장 알바, 공사장 노동, 박스 공장까지...
시즌 1에서 이야기했던 그 '먼지 묻은 작업복'의 시간들이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몇 달 뒤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대답뿐이었다 그렇게 희망 고문 속에 1년이 흘렀다 결국 나는 그곳에 취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1년의 기다림과 땀방울은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더 간절해졌고,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운명처럼 지금의 유 부장님이자 형님(당시 과장님)의 권유로 그렇게 나는 '교육 마케팅 영업'이라는 진짜 전쟁터로 걸어 들어갔다
인천공항 벤치에서 느꼈던 그날의 비참함이 없었다면, 1년간의 거친 노동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기본급 60만 원'이라는 조건 앞에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20대는 치열했다. 맨땅에 헤딩하며 팀을 꾸렸고, 매출을 만들었고, 사람을 얻었다. 그 시간들이 내 몸에 '생존 본능'이라는 근육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스물둘의 패기로 시작한 이 일이, 어떻게 나를 성장시켰는지. 단순한 '영업사원'이 어떻게 '팀장'이 되고, '마케터'가 되고, '기획자'로 거듭났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더 큰 시련과 더 짜릿한 성공들 다음 시즌에서는 나의 가장 뜨거웠던,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20대 중후반의 전성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이것으로 <시즌 1: 스물둘,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의 연재를 마칩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회 초년생의 생존기에 공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다음 시즌2에서는 <시즌 2:스물다섯, '파는 사람'에서 '이끄는 사람>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