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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삶을 등진, 나의 사람들

12월 출간될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

한여름의 열기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가 생각난다. 내 지인 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 번째 사람. 2010년 늦여름의 오후, 한 대학병원에서 기사를 마감한 나는 산책 중이었다. 누군가 뛰어왔다. 그리고 소식을 알렸다.


“A 기자님이 오늘 아침에 아파트에서 투신했대요.”

“네? 투신요?”

“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죠? 며칠 전에도 뵈었는데요. 우울증이 심했는데 치료를 중단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우울증이 심했다고요?”

다른 언론사 선배였던 A와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인사하면 수줍게 웃어주던 사람. 내가 점심시간에 엎드려 자면 기자실 불을 꺼주고 블라인드를 내려줬던 그였다. 조용하게 남을 배려해 주던 그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때 나는 우울증을 잘 몰라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의료 지식에 해박한 A가 왜 치료를 중단했는지 안타까웠다.

그의 빈소가 꾸려진 장례식장은 우리가 자주 마주쳤던 대학병원 안에 있었다. 처음으로 인사했던 곳도 그 병원 기자실이었다. 빈소 입구에는 우리가 같이 출입했던 병원들이 보내온 화환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의 영정 사진이 보였다. 기자단 명단에 실린 그 사진이었다. 그의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입원했다고 했다. 그와 닮은 남동생이 문상객들을 맞았다. 다섯 살이나 됐을까, 아이가 혼자서 놀고 있었다. 그의 딸이었다.


“며칠 전에 봤었어. 그때 멀쩡했다고. 근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우울증이 그렇게 심했어? 나는 전혀 몰랐어.”

“딸 얘는 어떻게 해. 좀만 크면 다 알게 될 거 아냐. 아빠가 그리 갔다는 거.”

문상 온 선후배들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자살, 우울증, 딸이라는 단어가 계속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앞으로도 그를 향한 추모는 이런 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했던 기자라는 말 대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기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것이다. 예상은 맞았다. 이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이면 그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다고 열을 올리다가 딸이 나중에 사연을 알면 어떡하냐는 말로 끝맺음이 됐다. 그가 안타깝게 세상과 작별한 이야기는 하루하루 일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각성시켰다. 앞만 보며 달려가던 우리를 잡아 세우며 지금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생각하게 만든 건 맞았다. 그러나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일상을 겪으며 그는 내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그렇게 생을 마치는 사람이 내 지인 중에 또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몇 달 뒤인 2010년의 끝자락, 회사 선배 B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몇 달 전 인사이동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전해 들었다. 누적된 스트레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힘든 점들이 있었을 테고 부당하다고 생각한 인사이동이 괴로운 마음에 불을 붙인 것 같았다. 그의 사연을 어떻게 알 수 있겠냐마는 주변 사람들은 그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공통된 말을 했다. 그리고 우울증이 심해졌다고. ‘이 선배도 우울증이었네.’ 우울증이라는 병은 마음이 가장 약할 때 파고들어 삶을 흔들고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우울증 그리고 통제가 안 될 수준의 몹쓸 생각은 남의 일로만 느껴졌다.

2012년 8월,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몹쓸 충동에 시달려 일상을 이어갈 수 없게 돼 병원을 찾았고,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충동을 실행하지 못한 건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일은 자기 파괴이자 주변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면 가족은 평생 고통에 갇힌 채 살아야 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만약 실패로 돌아갈 경우 나는 평생 치명적인 신체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고 가족은 간병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삶을 마감한 사람의 시신이 온전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실행하는 방법에 따라 훼손 상태가 다르지만 거의 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인생의 끝이 이럴 수는 없었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죽어도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한다. 그런데 멀쩡한 목숨이 끊어질 만큼 스스로 고통을 가해 생을 마친 사람의 소식은 충격을 넘어 누군가에게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건 내가 지향해온 삶이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살아온 지난날들을 종결짓는 동시에 한 사람의 역사를 완성한다고 본다. 따라서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시간은 존엄이 지켜져야 한다. 한 사람이 떠날 때는 지구상에서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건 나라는 도서관을 스스로 폭파하는 일이다. 삶의 고비마다 견뎌낸 날들, 나를 존재하게 한 수많은 손길, 나의 정신적 성장을 도운 현인들의 지혜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의 삶은 내 것만이 아니다. 수많은 깨우침의 순간들이 퍼즐처럼 모여 완성된 삶을 한순간에 버린다는 건 모든 순간을 배신하는 것이다. 여름 저녁 불어온 시원한 바람,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위로받았던 시절 모두. 세상이 내게 베풀었던 호의들을 비웃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은 진리였다. 우울증으로부터 회복하고 여러 고비를 이겨내면서 나를 힘들게 했던 생각은 삶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2020년 여름, 친분이 있는 의사가 스스로 삶을 놓아버렸다. 몹쓸 생각으로부터 나를 지켜줬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는, 나를 깨닫게 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떠날 수 있나, 그를 향한 배신감과 동시에 지켜주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은 나를 수시로 할퀴었다. 자살 유가족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족이 그렇게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예전 같은 일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예전처럼 숨 쉬어지지 않는다고.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여러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예방책을 정밀하게 설계해 막아야 하는 문제라는 걸 지인들이 떠날 때마다 느꼈다. 그가 세상과 그런 방식으로 작별하는 걸 보면서 나는 절대로 그런 이별을 하지 않을 거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다.

그는 떠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줬다. ‘자살 예방에 힘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생을 놓아버릴 수 있을까.’ 죽으려는 사람들을 구해 내려고 노력한 것, 그리고 그런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은 양립할 수 없지 않나. 해서는 안 되는 생각에 시달렸던 나로서는, ‘어떤 게 진실일까’ 알아야 했다. 생존의 문제처럼 절박했다. 자살 고위험군을 구해 낸 일,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버린 일, 그의 인생 두 가지 족적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일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니까 알 수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진실일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죽음은 자살이 지니는 위험성을 보여줬다. 기억해야 할 건 자살이라는 건 죽으려는 사람들을 구해 내는 일이 사명이었던 사람의 의지까지 꺾는 파괴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생을 놓아버리는 건 하루아침의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세한 균열을 방치하면 언젠가는 파괴를 일으키듯 우리 마음속에 깃든 취약한 감정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들을 돌보지 않으면 자신을 삼켜버릴 수 있다. 방치된 감정들은 약한 틈을 찾는다. 일상과 그 일상을 끌고 가는 의지 사이에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약간의 틈새라도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삶과 죽음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은, 이달 중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매거진에 실린 글들은 책에 담지 못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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