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린이맘 May 04. 2022

들려주고 싶은 소리

내가 하는 말에 대하여

임신을 알리는 두 줄. 임신을 확인받은 첫 번째 초음파 사진. 남편은 그래도 아직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은 날 그는 비로소 진짜 아빠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두근두근’ 아이의 심장소리는 우리에게 부모가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남편은 밤마다 배에 대고 오늘 하루 잘 있었냐고 안부를 물으며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배 속 아이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클래식, 태교동화를 찾아 들었다. 퇴근 후 즐겨보던 TV 뉴스도 보지 않게 됐다. 안 좋은 소식이 더 많은 뉴스를 굳이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 중에 길을 지나가다 낯선 이의 욕설이나 짜증이 들리면 귀를 막고 걸은 적도 있다. 그만큼 아이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특히 일상의 소리에 예민해진다. 택배원이 짐을 나르는 끌차소리, 배달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심지어 남편이 나를 위해 커피를 타준다고 물 끓이는 소리조차도 거슬린다. 이토록 소리가 미워진 것은 아이의 잠을 깨울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 때문이다. 물론 이 소리들은 아이를 깨우려는 의도가 전혀 없을 테지만 나에게는 잠재적 방해꾼으로 낙인 찍힌다. 이렇게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내가 뱉는 소리에도 날이 서있다.


밀린 집안일을 하다 툴툴대며 푸념소리를, 이것저것 반찬을 해온다는 친정엄마에게 “안 갖다 줘도 돼. 안 먹어. 그때 준 불고기도 아직 다 못 먹었어.” 싫은 소리를, “기저귀 갈았어? 내가 갈아주라고 했잖아. 지금 당장 갈아줘.” 남편에게는 잔소리를 자주 한다.


요즘 부쩍 아이의 옹알이가 늘었다. ‘아, 오’ 심지어는 비명을 ‘꺄’ 지르기도 한다. 소리내는 방법을 알았는지 자꾸만 내지른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내는 소리도 점점 다양해진다. 아빠와 엄마의 재롱잔치를 보고 꺄르르 소리내어 웃어주기도 한다. 육아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아이의 웃음소리. 울음소리만 듣다가 여러 소리를 내기 시작한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왜?"이다. 말을 하지 못 하니 왜 우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튀어나오는 말이다. 궁금증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왜? 대체 왜 우는 거야?" 되돌아오는 것은 울음뿐이지만 그래도 "왜?"라고 말하지 않으면 속이 답답하니 자동으로 나온다. 그 다음은 "자자." 아이가 자면 조금이라도 쉴 수 있으니 부드러우면서도 재촉하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던 엄마는 정작 아이에게 볼똥대며 볼멘소리를 자주하고 있었다니…. 반성하게 된다. 그동안 아이를 깨운다고 오해했던 일상의 소리들에 미안하다. 차라리 날을 세우며 미워하기보다 아이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고민하고 아이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앞으로 살면서 아이에게 좋은 소리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익히는 과정에서 수많은 ‘잔소리’를, 잘못된 행동에는 ‘쓴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아이를 위해 ‘싫은 소리’도 감수해야 한다. 그때마다 아이가 이 소리들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을 위한 소리임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또 다양한 소리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또 아이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내일은 또 아이가 어떤 소리를 낼까?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본캐는 나이고 부캐는 엄마입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