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부르짖는 법
스물일곱 살에 마지막 사랑니가 났다. 치과에 갔더니 신경을 건드릴 수 있어 아직은 발치가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거절당한 후 차라리 잘됐다 싶어 서른이 조금 넘은 이 시기까지 사랑니와 함께 하고 있다. 사랑니는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고 하여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사랑니가 났다고 하면 ‘아니 그 나이에?’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 나이에 사랑니의 존재가 다소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렴풋한 첫사랑의 기억도 흐릿해진 지 오래인데 아직도 첫사랑 때문에 고통 받으며 사는 것 같이 보일까 괜한 두려움도 생긴다.
이미 세 번이나 겪어 본 사랑니 발치. 아는 것이 더 무섭다고 쉽게 용기를 낼 수 없어서 여태껏 미뤄둔 것이겠지. 아니면 이 고통에 익숙해져 굳이 없애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 일수도. 익숙함에 존재조차 잊고 있을 무렵 드문드문 찾아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분별없이 존재감을 뽐낼 때면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요즘 아이는 이앓이를 하고 있다. 왼쪽 아랫니 한 개가 올라왔고 오른쪽 아랫니가 올라오려는지 잇몸에 구멍이 났다. 입에 손수건만 가져다 대도 울부짖고 치발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지 자꾸 울기만 한다. 도대체 왜 울지? 왜 이렇게 짜증을 내지? 답답함의 나날들을 보내다 아랫니가 쑥 올라온 것을 보고 그동안에 의문이 해소됨과 함께 좀 더 보듬어주지 못한 내 모습이 후회가 됐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픔을 뚫고 빼꼼히 얼굴을 내민 첫니를 볼 때마다 기쁘면서도 안쓰럽다.
부쩍 사랑니의 통증이 심해졌다. 거울로 보니 잇몸이 벌겋고 퉁퉁 붓기까지 했다. 숱한 아픔들을 지금껏 잘 견뎌왔건만 노란 신호등이 깜빡이며 주의를 주듯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든 통증이 지속되고 있다. 아이의 이앓이와 엄마의 사랑니 통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뭉클하다. 엄마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는 보기 좋은 핑계를 만들어 자꾸만 미뤄온 것이겠지. 아니면 이제는 엄마가 되었으니 이 정도 아픔은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 때문인가. 아니면 그보다 아픔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 어리숙함 때문일까. 이렇듯 언제나 나는 속으로 아픔을 숨긴 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그 애씀은 결국 나를 더 닳고 곯게 만든다는 것도 알면서 누군가에게 들킬까 걱정하며 곰상스레 굴지 말고 씩씩한 척 힘을 내곤 했다.
오늘도 여전히 사랑니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는다. 며칠만 더 버티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쉽게 가시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제는 정말 치과에 가야겠다.
“나 사랑니가 너무 아파서 치과 가야될 것 같아.”
“사랑니? 사랑니 났어?” 남편이 영문도 모른 채 놀라며 묻는다.
“응. 몇 년 됐는데 위치가 안 좋아서 못 뽑았었어. 근데 이제는 뽑아야 될 것 같아. 너무 아파.”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대개 아팠을 텐데.”
“몰라. 그냥… 참았어.”
그동안의 아픔이 한낱 ‘그냥’이라는 말로 치부될 수는 없지만 이 말만큼 나를 잘 대변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아프지만 그냥 참았다는 말에는 수없이 많은 날들의 고통에도 끄떡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절규에 더 가까웠다. 그동안의 아픔을 ‘그냥’이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해야 먹먹해진 가슴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서먹해질 만큼 사랑니가 나에게서 멀어져갈 때면 가끔씩 별빛이 반짝이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어둠을 몰고 다가오기도 했다. 아픔을 참고 버티어 이겨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시간.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던 시간이 오늘은 무척이나 아리다. 그 아픔이 불편함에서 당연함의 얼굴로 찾아왔을 때 아무렇지 않게 대했던 내가 오늘은 왜 이렇게 부끄럽고 낯설게 느껴지는지.
생살을 뚫고 나올 때의 아픔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아이가 오늘은 참으로 기특하다. ‘그냥’이 아니라 ‘아프다’고 표현할 줄 아는 그 솔직함의 날 것이 무척이나 부럽다. 오늘은 아이에게 왠지 “잘 자.”라는 말보다 “편안한 밤 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아픔을 잘 이겨내고 잘 참았으니 그러니 잘 자.”가 아니라 “아픔에 힘껏 부르짖느라 힘들었지? 그러니 반짝이는 별을 마음에 품으며 동그랗고 노란 보름달을 이불삼아 밤하늘에 둥실둥실 떠있는 한 조각 구름을 떠올리다 편안하게 잠에 들렴.” 더불어 나도 편안한 밤이 되기를 바라며. 쓰디쓴 마음을 삼키지 말고 꾹꾹 눌러 담지 말고 아픔과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건강한 엄마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