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브 Oct 01. 2023

베를린 자전거 투어

날씨마저 다크한 다크 히스토리 투어

쉼보다 자전거


독일에 5일 간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였다. 딱 하루만 자유시간을 주었다. 나는 패키지 여행에서 고단한 터라 자유시간에는 그냥 동네를 어슬렁 거리면서 쉬는 게 낫지 싶어서 별다른 자유일정을 계획하지 않았다. 짧은 패키지 여행에서 은 쉽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지만, 체력이 별로 좋지 않은 나는 이 만큼의 쉼은 필수였다. 자유시간을 갖기 전날, 일행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모두가 화장실을 번갈아 다녀왔다. 그곳에 홍보 포스터를 보고 나만! 사진을 찍어왔다. 관심이 가는 홍보 포스터.



그것을 본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자전거 투어라니! 쉬는 것보다 자전거가 더 좋다,는 내 심장의 소리를 따라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했다.


베를린 자전거 도로망


베를린의 자전거 도로는 잘 되어 있다. 독일 전역은 모르니 베를린으로 한정하여 말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가이드님의 말씀에 따르면 베를린 자전거 도로에 사람이 서 있다가 다치면 사람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전거 도로를 피해 서있어야 한다. 우리 일행들은 인도 옆에 색깔이 다른 자전거 길에 서서 셀카를 찍기도 했었는데, 가이드님 말씀을 듣고나서는 꼭 피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 덕분에 자전거들은 쓩쓩 잘 지나갔다.

베를린 도로 옆이나 인도 옆에 자전거 도로 표시가 잘 되어 있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보았다. 자전거를 이용한 통근에 관심이 많은 나는 베를린의 자전거 도로와 사용자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헬맷을 썼지만 안 쓰기도 했다. 특히나 자전거 앞뒤로 유모차 비슷한 것을 끄는 경우도 있어서 탈것의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안전을 위해 야광조끼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며칠 간 베를린의 자전거 이용 현황을 보던 내게 자전거로 달리는 안전한 정보가 생겼다. 안전한 자전거 도로만을 달리고 싶은 내게는 베를린 자전거 투어가 괜찮게 느껴졌다.


베를린에는 자전거 이용객이 정말 많았다. 물론 신호등 신호에 따라 멈춰야하는 때도 있고, 자동차 신호에 맞춰서 갈 때도 있고 해서 처음 자전거를 타는 내게는 어려웠다. 그래서 자전거 투어를 의지하여 새로운 곳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투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영어로 설명을 하는 가이드투어도 있었다. 가격이 30유로, 한화로 5만원 정도고, 투어에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대부분 오후에 진행했다. 오전에 좀 쉬다가 오후에 투어 장소로 이동하면 될 것 같았다. 할까말까 고민을 좀 하다가 당장 내일 일정이므로 예약이 막힐 것을 염려하여 빠르게 30유로를 결제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4가지 투어 중에서 내일 일정을 진행하는 것은 두 개 있었다. 베를린 시티 투어와 다크 히스토리 투어였다. 그 중에서 한적한 길을 따라 하는 다크투어가 좋았다. 길이 비교적 외곽에 위치해있고, 안전하다고 하니 나 같은 초보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영어로 설명을 진행하는 것은 이해를 많이 못하겠지만, 나중에 찾아보면 되니까.


우리 패키지 일행 중에는 내가 자유일정 때 자전거 투어를 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을 살짝 내비친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나 혼자 하게 되었다. 여행자로서 경험이 많다보니 혼자서도 투어는 별로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베를린 다크 투어처럼 다크한 날씨


먼저 2시 30분보다 이른 시간에 투어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전까지는 비가 한번도 내리지 않다고 세찬 소나기가 1시부터 내렸다. 방수 점퍼와 우산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나는, 비를 맞으며 지도를 보며 사무실을 찾아갔다. 1시 30분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비내리는 처마 밑 문앞에서 약간 허름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한 사람이 낮잠 자려다가 일어나 내게 응대를 해주었다. 나는 비가 오는데 오늘 자전거 투어 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 비구름이 곧 물러갈 거라며 구름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우비를 제공하니까 괜찮다고 했다. 나는 어떤 코스를 이동하는지 알려달라고 하며 지도를 얻었다. 그분은 손가락으로 대강 이렇게 순환코스를 밟는다고 했다.  내가 예약이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또 추가 인원도 가능하냐고 물었는데, 그건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할까말까 망설였던 일행 두명은 세찬 소나기에 마음을 접고 돌아갔지만. 내 말을 잘 못알아듣는 것 같아서 독일은 영어가 잘 통하는 편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사람이 우리의 잉글리시 버전 가이드였다. 아마 내 발음이 그다지 안 들렸나보다.




비는 정말 멈췄다. 하늘을 보니 반은 회색 구름, 반은 맑은 하늘이었다. 가이드는 비가 올 수도 있으니 우비를 챙기라고 하나씩 나눠 주었다. 튼튼해보이는 네이비 판초였다. 뒤에 바구니가 달린 덕에 우비를 뒤에 실었다. 보이질 않으니 행여나 날아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우비끈을 바구니에 갈짝 묶었다.



내 자전거만 왜 이래! 장비탓하며 시작

투어 일행은 모두 7명이었다. 이들은 신장이 큰 편이어서 대부분 일반 자전거를 대여했다. 나는 다리가 짧아서 다른 자전거를 달라고 했더니, 내게 독특한 자전거를 줬다. 페달이 일단 뒤로 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돌리는 순간 브레이크가 걸린다. 또 이러한 특수한 페달이라서 앞으로 가는 것도 안 되었다.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는데, 신호에서 다시 페달을 밟을 때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 맨 뒤에서 뒤쳐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은 자전거였고, 조금 크더라도 평범한 자전거를 빌릴 걸 그랬나 싶었다. 브레이크도 오른쪽에 하나만 있어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외국은 자전거 시스템도 다른가? 싶어서 놀랬다. 나의 빨간 프레임 자전거만 페달이 독특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투어를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자전거를 타고 첫 장소로 이동했다. 처음 쉰곳이 바로 저, 윗 사진이 보이는 곳이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여기에서 리라이브 어플도 켜고, 우비도 챙겨 입었다.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리고 달려서 내가 패키지 투어일행과 갔다왔던 베를린 장벽 뼈대가 있는 곳,  베를린 월 메모리얼에 갔다. 자전거를 세워둔 투어 일행들이 많았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15분간 열심히 설명을 했다. 지도를 그리고 질문도 해가면서.

투어가 시간에 쫓기다보니, 가이드의 설명만 듣고, 보라는 것만 보고 이동하는 것도 역시 단점이었다. 패키지 일행들과 왔을 때는 이곳을 1시간 동안 천천히 둘러봤다. 그리고 특히 아래의 전시를 보면서 동베를린에서 장벽을 세우기전 집들이 폐쇄되는 과정과 집을 통해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사진들을 보면서 아픈 역사를 보았다. 그러나 자전거 투어에서는 잠깐의 설명으로 넘어갔다. 이점은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내가 미리 봤었으니까 더욱 그런 아쉬움이 남는것이다.


암흑의 역사를 돌아보다보니

다크투어를 위한 날씨인가. 회색 구름이 지나갈 때는 비릉 흩뿌렸다. 빗방울이 굵어 후두둑 소리가 났다. 우리는 설명을 듣다가 우비를 한명 두명씩 챙겨입었다. 나는 하늘을 보니 맑은 곳도 있길래 좀더 참아보자 했지만 그칠 기세가 없었다. 옷이 많이 축축해진 느낌을 받으며 우비를 마지막으로 걸쳐 입었다. 그런데 설명이 끝나자 비가 또 잠잠하다. 우린 또 우비를 벗었다.



자전거 투어를 하다보니 나의 패키지 투어가 가지 않았던 장소를 지나갔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슈프레강을 따라 한참 달리다가 멈춘 곳이다. 강둑을 따라 달리는 그 기분이 이날 주행 중에 가장 좋았다. 시원한 바람과 여유로운 주행, 일행과 나란히 달리며 대화도 할 여유도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보니 건물이 터널 역할을 하는 듯한 길도 지났다. 그곳을 통해 들어가니 마침내 이곳에 멈췄다. 기분좋은 주행 끝에는 이렇게 아픈 역사가 배어 있었다. 강으로 삼은 경계를 넘다가 희생된 이를 기리는 곳이었다. 베를린 곳곳에는 장벽과 경계선을 따라 삶을 희생당한 처참하고도 아픈 일들이 발견되었다. 도시는 그들의 핏빛 흔적을 잊지 않고 추모비로 위로하며 아픔을 서술해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관광객은 다크투어로 베를린의 노력을 보았다.


이곳에서 오래 전 동서분단으로 인한 한 사람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는 불어오는 강바람의 맛에도 무감해졌고 강건너에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추모비에 쓰인 설명처럼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당시 그를 향한 시민들의 비통함이 느껴져 고개가 숙여졌다. 다크투어. 전 세계인류가 떠올려졌다.



뻥뚫린 전망, 감시에 최적인 전망

우리는 또다시 한참을 달렸다. 이번엔 숲이었다. 갑자기 자전거를 묶어두고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다. 다들 군말 않고 잘 올라갔다. 나도 뒤처지지 않고 쭉 올라가다가 이 광경을 본다. 와!


뻥뚫린 시야!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풍경이라니!

 

어딘가 구글지도로 살펴보니 대공포 감시탑이라고 한다. 감시를 위한 두 개의 탑에서는 베를린 전역이 보였다. 패키지 일행들이 돔 계단을 올라야만 볼 수 있다던 그 전망을 이 대공포탑에서도 볼 수 있었다. 자유일정이 또 있다면 오고 싶은 곳이었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자전거 투어를 통해서만 보고 끝이었다.


다크투어의 마지막은 거대한 추모의 물결

주행하다가 브란덴브르크 문이 보였지만 여긴 그냥 통과했다. 가이드는 브란덴부르크 문의 중앙 길은 왕들이 다니던 길로 우리가 그 길을 자전거로 통과하니까 왕이 된 심정으로 건너오라고 했다. 그 경험은 좋았다.


유대인을 위한 추모기념비가 있는 곳이 마지막 장소였다. 그곳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분들을 위한 위한 추모의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무겁고, 두렵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해를 위한 베를린의 마음처럼 여겨졌다. 가이드가 말했다.


“이곳에서 셀카는 찍지 마세요. 셀카를 웃으면서 찍어 인스타에 올리시던데,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물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떤 것이 예의를 지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의 말대로 셀카나 사진을 찍다보면 나는 흔히 스마일, 웃게 되는데 거대한 아픔과 슬픔을 향한 추모의 연대와도 같은 이천여 개의 기념비 앞에서 남모르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대신 자료를 위한 사진을 찍었다. 그는 그런 것은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투어 일행은 사무실로 돌아왔고, 일정을 마쳤다. 가이드는 마지막까지 대형 지도 앞에서 우리의 코스를 복습해 주었다. 우리 모두의 단체 사진을 찍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사진찍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다크 투어를 하고 그 장소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베를린에 새겨진 흔적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충실해보였다. 7명 중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나와 어느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연신 찍어댔지만, 그는 딱 두장, 자전거 라이딩 중에 찍었다. 놀라긴 했다. 나와 벨기에 여행자 빼고는 모두 둘씩 왔지만, 그들도 사진엔 관심이 없어보였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한 나조차도 내 사진찍기 취미에 대해 생각했다.



베를린을 자전거로 구석구석 달리는 기분은 참 좋았다. 네비게이션 없이 가이드를 따라 자전거를 달렸기에 다시 가라고 한다면 찾아가기 어렵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공원 산책길을 달리고, 차도 옆 자전거 도로를 달리면서 베를린의 모습을 살펴본 것은 의미있었다.


한 참가자에게 물었더니 그분은 늘 이렇게 자전거 투어를 한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구석구석 자전거로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서 매력적이고, 참 소중하다고 말이다. 나도 베를린 자전거 투어를 계기로 앞으로 어느 나라에 가든 자전거로 투어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불현듯 떠올랐다.

맞다. 체력이 부족해서 이제는 비행기 타는 일이 없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투어 코스. 원래는 순환코스인데 처음 시작할 때 리라이브를 켜는 것을 깜박했다.

 

2023. 10.1.

매거진의 이전글 미니벨로 타고 제주도 달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