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중
나는 매달 5권 정도 책을 산다(최근 6개월간 32권을 구매). 그 책을 다 읽느냐 물으신다면... 그럴 리가ㅎㅎ. 5권을 구매하면 평균적으로 2~3권 정도를 읽고 있다.
어디 가서 책을 사서 읽는다고 말하면 2가지 정도의 질문을 받는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안 됨?", "전자책도 좋은데 구독 서비스로 보면 안됨?". 그런데 내 성격상 그게 어려운 이유가 있다.
첫째, 도서관 최강 빌런이 될 자질을 가졌다.
먼저 나는 책을 읽을 때, 기억하고 싶은 혹은 인상 깊은 문장을 보면 펜을 들고 줄을 박박 그어가며 읽는다. 도서관에서 빌려봤다가는 독서 세계관의 최강 빌런으로 자리하기 딱 좋은 캐릭터인 셈이다.
둘째, 그냥 종이책 감성이 좋다.
개인적으로 밀리의 서재를 구독 그리고 이북 리더기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구독 서비스 내에 읽고 싶은 책이 없는 경우도 있고, 전자책은 종이책의 감성을 1도 살리지 못하다 보니 아무래도 잘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종이책을 산다. 다만, 이렇게 책을 사게 되면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이 책들을 어떻게 보관할 것이냐는 것인데… 사실 뭐 답은 뻔하다. 책장에 꽂아두는 수밖에 ㅎㅎ.
우리 집 거실 한구석에 산 지 2년 정도 된 스탠딩 책장이 하나 있다. 사실 인테리어 소품으로 구매했던 건데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그 책장을 보고 꼭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너랑 나는 책 읽는 성향이 완전히 다르네…?”
"와…. 이런 소설(삼체)을 읽는다고? 이거 어렵다던데?"
“의외네…. 이런 것도 읽는구나 너?" 등등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어쩌면 사람들은 저 책장을 보고 나라는 사람을 판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사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책을 치운 정도였다).
그렇게 책장의 존재를 잊어갈 때쯤, 썸원님의 추천으로 우치다 다츠루의 책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를 읽게 됐다. 제목부터 뭔가 참신한 느낌이라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책과 책장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몇 구절과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우리 집에 와서 제 책장을 본 사람들은 제가 거기에 있는 책을 전부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죠, 설마 그럴 리가요. '언제나 읽어서' 가까운 곳에 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가까운 곳에 두고 스스로를 질타하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은 착각해 주지요. '아, 이런 어려운 책을 매일같이 읽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하고요.
이 부분을 읽으며 '그래 이게 맞지 ㅋㅋㅋ’ 생각했다. 내 책장을 보며 한마디씩 하던 친구들 덕분에(?) 별 의미 없이 쌓아두던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책장에는 아, 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보여주고 싶었던 내 욕망이 투영된 셈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 책장을 좀 자세히 살펴보게 됐는데…. 위에서부터 살펴보니 가족사진, 만년필, 아로마, 피카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구매한 소품, 모터스포츠 F1 레이싱카 레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책이 등장하는데 해리포터 소설, 언젠가는 도움이 되리라 믿는 책 그리고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분명 이 책을 읽기 전 2~3개월 전쯤 정리했음에도 내가 보여주고 싶은 혹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들이 조금씩 책장에 담겨있었구나가 새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또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는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사지 않습니다.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을 사지요.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을 읽고 싶다고 느끼고 읽을 수 있을 만큼의 문해 능력을 갖춘, 언젠가는 충분히 지성적, 정서적으로 성숙한 자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모종의 책을 책장에 꽂도록 이끕니다.
개인적으로도 책을 살 때, 지금 당장 읽고 싶거나 지금 당장 정보가 필요한 책을 사기도 하지만 '와, 이건 언젠가는 꼭 필요할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드는 책도 구매하는 편이다. 마치 이걸 읽으면 내가 더 나은,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고르게 된달까?
이와 더불어서 매달 5권의 책을 사면서 읽지 못했던 책들에 대한 약간의 부채 의식 같은 게 있었는데... 이 문장이 앞으로도 (읽지 않는) 책을 사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변명의 여지를 만들어 준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구절이다.
책장은 우리의 바람을 담은 지적, 미적 생활을 이미지로 나타냅니다. 책장이 우리의 이상적 자아라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알고 싶다면 책장을 살펴보는 게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혹은 남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모습들이 책장 안의 책 또는 소품에 필연적으로 담겨있을테니 말이다.
그런 만큼,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지금 바로 본인의 책장을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몰랐던 나만의 취향이나 바람이 ‘나 좀 봐줘!’하고 손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뜬금없는 마무리지만 언젠가 나를 소개하는 자리가 생긴다면 내 책장 사진을 띄워놓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있어 보이면서 참신한 느낌이 든달까?ㅎㅎ
ps.
책(책, 책장, 도서관, 저작권 등)에 대한 참신한 시각을 엿보고 싶다면, 우치다 다츠루의 책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를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리며 이 글을 마무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