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빨간 피를 줄까~ 노란 피를 줄까~”
“피 안 맞을래. 기분 나빠.”
“엄마! 그냥 영양제라고 생각해. 이거 맞으면 기운도 펄펄 난대.”
“다 필요 없어. 항암도 안 한다고 해.”
“또 그러신다!”
“앞으로 병원 가자는 말도 하지 말고. ”
“아~ 진짜 왜 그래!”
“나 분명히 얘기했다!”
엄마가 내게 선전 포고를 하셨다.
피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는 매달 항암 주사뿐 아니라 매주 병원에 가서 피 주사까지 맞아야 했다.
병원에서는 적혈구를 빨간 피, 혈소판을 노란 피라고 부른다.
그날도 혈액 수치가 낮아 피주사를 맞기 위해 주사실로 들어갔다.
평소처럼 4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는데, 엄마 체온이 38도가 넘었다며 주사 처방이 스톱되어 버렸다. 담당 의사의 처방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해열제를 기다렸다.
근데 난데없이 응급실 처방이 떨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열이 오르니 감염을 의심된다는 것이다.
환자를 이송해주는 직원이 엄마의 휠체어를 끌고 응급실로 향하는데 어찌나 불안하던지.
백혈병 진단받자마자 난생처음 받아보는 골수 검사에 항암도 모자라 갑작스러운 응급실행까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쓰나미가 덮친 듯 나 역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응급실로 갔더니 코로나 검사 때문에 일단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무조건 검사를 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대기자 자리에서 거의 4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멀쩡하던 사람도 앓아누울 판이다.
순서가 되자 직원이 엄마를 데리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보호자는 코로나 결과가 나와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날 마치 병원균 보듯 입구에서 차단해버렸다.
이래저래 코로나가 야속했다.
가뜩이나 불안한 상황에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한참 뒤 코로나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는 문자를 보여주고서야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많은 환자들 사이에 엄마가 기운 없이 누워 계셨다.
해열제를 맞고 다행히 열이 떨어져 피 주사를 맞고 계셨다.
소변보고 싶어 죽겠는데 혼자 일어날 수가 없어 간호사에게 요청했으나 감감무소식이라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일어날 기력도 없는 엄마를 모시고 화장실을 갈 수가 없어 이동 변기를 챙겨 왔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은 너무 분주해서 간호사들의 도움조차 받을 상황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분주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모든 걸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결국 난 엄마의 속옷과 바지뿐 아니라 침대 시트까지 갈아야 했다.
응급실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조차 어려웠다.
엄마는 당뇨라 식사를 제때 하셔야 하는데 뭘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외래 왔다가 갑자기 응급실로 온 거라 엄마가 드실 약도 미처 챙겨 오지 못해 대략 난감이었다.
갈팡질팡 하는 가운데 엄마의 체온이 38.9까지 올라 버렸다.
또다시 해열제 투약.
집에 있는 옆지기에게 엄마 약통과 입원 시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와 달라고 부탁한 뒤 병원 편의점으로 가 요기가 될 수 있는 걸 찾기 시작했다.
엄마는 멸균, 살균식만 드실 수 있기에 선택의 폭이 좁았다.
통조림은 괜찮다는 말에 통조림 죽을 사다 드렸으나 엄마 입맛에 맛을 리가 없다.
나도 나지만 응급실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아파 죽겠다는 자들과 살리려는 자들 사이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살기 위해 편의점 김밥을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었다.
내가 살아야 엄마도 살리지.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다.
새벽이 되자 피곤이 몰려왔다.
응급실에 보호자 침대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달랑 의자 하나 있는데 딱딱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설령 침대가 있다고 해도 잘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작은 의자에 앉아 밤을 새우려니 온몸의 관절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엄마도 낯선 공간과 침대가 불편한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셨다.
그곳은 밤과 낮의 구분도 없었다. 창문이 없어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문이 있고, 벽에 시계가 붙어 있다고 해도 이곳 응급실은 시간이 무의미한 곳이 아닐까 싶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치료 안 받겠다고. 그러니 앞으로 병원 데려오지 말라고.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진지했다.
아직 2차 항암도 시작 안 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짜증을 냈다.
화가 용암처럼 들끓는 내 목소리와 달리 엄마의 음성은 무서우리만큼 차가웠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벌떡 일어나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의 얼굴은 차가운 목소리와는 달리 평온해 보였다.
엄마의 눈동자가 날 향했다. 엄마의 확고한 눈빛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너무 잔인하지 않아? 어떻게 딸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솔직히 말해 말보다 울음이 먼저 터져 나올까 봐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밖으로 나갔다.
심호흡을 했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라며 나를 타일렀다.
하지만 이성을 앞세우기에는 내 감정은 너무도 솔직했다. 복도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울면 안 되겠다 싶어 병원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을 맞으며 심호흡을 했다.
응급실 밖의 풍경은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다른 세계에 있다가 나온 사람처럼 어두운 도시의 평화로움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곳과 저곳, 어떤 곳이 진짜 세계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엄마가 진정 원하시는 건 뭘까?
무엇이 엄마를 위한 최선일까?
문득 내 욕심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항암을 거부하셨다.
엄마 체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걸 보니 엄마 말대로 항암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세포뿐 아니라 일반 세포까지 다 죽이는 게 항암치료다 보니, 엄마가 지금 응급실에 누워 있는 게 나 때문인가 싶은 죄책감마저 들었다.
엄마는 항암 후 자신의 온몸을 뒤덮은 붉은 반점들을 보면서 징그럽고 무섭다며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약물 부작용이라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치료를 안 받겠다는 엄마의 무책임한 발언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종심(從心).
논어에 나오는 從心所欲不踰矩의 줄인 말로 70세를 이르는 말이다.
뜻을 보면,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쫓아도 도(道)에 어그러지지 않았다.’
우리 엄마 나이 76세.
치료를 안 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자식을 생각한다면 그런 선택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부모가 돼서 자식 가슴에 못을 박는 건 도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젠 아픈 엄마에게 큰소리칠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다.
기력 없이 멀거니 누워 있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엄마를 보낼 순 없다.
그러니까 엄마...
나를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