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by 정희리


“울 애기 뭐 먹고 싶어?”

“엄마한테 까분다~”

“엄마 앞이니까 까불지, 내가 어디 가서 까불겠어?”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 3개월째.

항암 이후 급속도로 체력이 떨어지는 엄마 모습에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엄마가 물에 빠져 죽을까 두려워 조심조심 아기 다루듯 엄마를 대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엄만 이제 보호자 없이는 단 하루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문득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다.

엄마도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던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주름이 깊게 파인 엄마의 얼굴을 보니 아이적 모습이 도무지 상상이 안 됐다.

사진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걸.

6.25를 겪은 세대라 그런지 그 흔한 사진 한 장이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난 왜 엄마의 늙고 병들어가는 모습만 기억해야 하는지.


엄마는 백혈병 진단 후 미운 일곱 살이 되어 버렸다.

반찬 투정은 기본이요, 뭐든 싫다고 억지 부리는 고집쟁이에, 의사 말은 또 어찌나 안 듣는지 매일매일이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지나 보니 그 시절마저도 너무 그립다.

엄마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 점점 더 아이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정말 신생아까지 내려갈까 걱정이다.


혈액암 병동 같은 병실에 딸을 간병하는 85세의 노모가 있었다.

내가 음료수 병뚜껑을 따지 못하고 쩔쩔매자 그 할머니가 와서 단번에 따주셨다.

여든이 훌쩍 넘은 그 할머니는 병약한 딸을 번쩍 들어 침대에 뉘이고 휠체어에 태우는 괴력까지 보여주셨다.

할머니는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딸 자랑을 하시곤 하셨다.

딸은 악기 연주를 하는 아티스트였고, 음악 하는 남편 만나 결혼해 자식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근데 딸이 오십 넘어 몹쓸 병에 걸려 내가 이러고 산다는 푸념도 잊지 않으셨다.

한평생 돌봐온 딸을 또다시 돌봐야 하는 늙은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아픈 자식을 돌보는 엄마의 절박함을 따라갈 순 없을 것이다.

내 배에서 꺼낸 자식, 내 손으로 묻어줘야 하는 두려움... 나 같은 건 감히 상상도 못 할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두려움이 할머니를 천하장사로 만든 건 아닌지.


문득 내게도 할머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엄마.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엄마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고 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추억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나 역시 할머니 얼굴을 모른다. 제사상에 올려진 사진 한 장이 기억의 전부다.

할아버지 역시도 마찬가지.

엄마의 지나온 인생을 떠올려보니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저려 왔다.


엄마는 나훈아의 홍시라는 노래를 좋아하셨다.

홍시를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는 내용의 노래다.

할머니가 홍시를 좋아하셨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울 엄마는 홍시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당뇨 때문에 많이 먹지 못하는 게 한이라면서도 앉은자리에서 두 개는 거뜬하게 드시곤 했다.

아마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갈망은 아니었을까?


몰랐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엄마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래서 가끔 두렵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게 될지.


올해도 홍시는 나오겠지.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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