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방문

-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by 정희리


“우리 딸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 파출부라도 알아봐.”

“그 돈 있으면 나줘~”

“돈 줄 테니까 알아봐. 너 이러다 병나.”

“병나면 엄마가 나 간호해줘. 그러니까 빨리 나아~”




엄마의 발병 이후 나의 두 집살이는 시작되었다.

아침 5시 40분에 기상. 엄마 집에 도착하면 6시 30분.

전날 준비해둔 아침 식사 재료로 죽과 반찬을 만들어 보통 7시 40분에 아침 식사를 챙겨 드린다.

한 시간 가량 천천히 식사를 마치면 후다닥 설거지를 해놓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다리에 기운이 없다며 걷는 걸 힘겨워하셨다.

그렇다고 방 안에서 가만히 누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주민센터에 휠체어 빌려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고 당장 달려갔다.

간단한 절차로 손쉽게 대여를 받을 수 있었다.

휠체어를 빌려오자 엄마가 선뜻 산책길에 나선다.

가다가 힘들면 언제든 앉아서 이동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애마가 또 있으리오.


그렇게 나는 엄마의 휠체어를 끌고 동네를 누비며 다녔다.

조금 걷다가 다리 아프면 휠체어 타고, 그러다 내려서 조금 또 걷고, 힘들면 또 타고...

공원에는 어여쁜 꽃들과 초록이 만발했고, 엄마는 꽃을 보며 잠시의 시름을 잊으셨다.

엄마가 미소 지으시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렇기에 난 엄마와의 산책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 같은 초보자가 휠체어를 운전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휠체어에 안전벨트와 브레이크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병원용 휠체어에는 그런 게 없어서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근데 휠체어에 안전벨트와 브레이크는 왜 있는 거야?

산책 5분 만에 그 베일은 벗겨졌다.

걸어 다닐 때는 몰랐는데 휠체어를 끌다 보니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바닥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공원 산책길은 다닐만했지만 엄마는 시장 구경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렇기에 한 번 나오면 시장까지 들르는 게 코스가 되어 버린 탓에 난 길바닥과 씨름을 해야 했다.

휠체어를 끌고 시장까지 가는 건 산 넘고 물 건너는 것만큼 험난한 여정이었다.

인도가 평평하지만은 않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렇다고 차도로 갈 수도 없고.

겨우 동네 마트까지 가면 평평한 바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장을 다 보고 나면 현기증 나는 복귀가 남아 있다.

가뜩이나 휠체어도 무거운데 장바구니까지 이고 지고... 집 가는 골목에 오르막 내리막은 왜 이리 많은 건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난 녹초가 되고 만다.

하지만 긍정의 힘!

팔다리 근육이 생겨서 헬스클럽 안 다녀도 되겠다며 위안을 삼아 본다. 덤으로 다이어트까지.

하.하.하.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도착하면 대략 11시.

시장 봐온 것들을 손질하며 빠르게 점심 식사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점심은 간단하게 준비를 한다고 해보지만 매번 새로 조리한 음식만 허용되는 환자기에 뭐든 지지고, 볶고, 끓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노하우가 생겨서 제법 요리 비슷한 게 나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점심 식사까지 마치면 대략 2시경.

그때부터는 청소 시작이다.

쓸고 닦는 건 물론이거니와 매번 엄마 손이 닿는 곳과 화장실 소독은 필수다.

백혈병은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까지 유난 떨게 만드는 아주 청결한 병이다.

빨래를 하고, 집안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나면 또 저녁 준비할 시간이 다가온다.

잠시의 숨 돌릴 시간도 없다.

이렇게 몸이 힘든데도 살이 안 빠지는 거 보면 그동안 비축해 놓은 살이 제법 많은가 보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와 내일 먹을 아침 식사 거리를 준비하고 나면 8시.

약까지 다 챙겨드리고 집에 가면 9시.

자상한 남편을 만나 집에서는 푹 쉬면서 한숨 돌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듯 나의 삶은 병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듯 같은 루틴으로 이어졌다.

혼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가끔 한숨도 나오지만 자식이 나 하나라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쳐갈 무렵,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보니 낯선 여자 둘이 서있었다.

외판원? 종교인?

낯선 외부인의 방문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만사가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그들은 공단에서 나온 조사원이라고 했다.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 집을 조사차 방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며 현재 엄마의 상태에 대해 토로했다.

한숨 어린 내 한탄을 듣자마자 그녀들은 깊은 공감을 해주며 발 빠르게 조치를 해주었다.

바로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오더니 며칠 후 사회복지사가 나와 재가 신청을 도와줬다.

지역 간호사도 방문해 엄마의 상태를 체크해주셨다.

전문 기업에서 집안 소독도 해주고, 요양 보호사도 배정해주셨다.

요양보호사는 월, 수, 금 하루에 2시간씩 방문하고 화, 목은 도시락도 배달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솔직히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엄마 백혈병 진단 후 너무 숨 가쁘게 살다 보니 누구의 도움을 받을 생각조차 못하고 헉헉거리며 살았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완수해야 하는 임무에 급급해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근데 이런 내 상황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공단에서 자가 방문을 해주셨고, 그로 인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힘든 날 위해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가 분명했다.


아쉽게도 주민 센터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기간이 짧았다.

그렇기에 공단에 노인장기 요양 등급을 따로 신청해야 했다.

신청 후 공단에서 장기요양인정조사가 엄마 집을 방문했다.

등급을 잘 받아야 혜택이 높아진다는 말에 잔뜩 긴장이 됐다.

조사원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엄마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백혈병 환자는 어두운 밤에 검정 옷을 입고 고속도로를 걷는 것과 같다는 의사의 말이 계속해서 날 짓누르고 있었던 탓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조사원은 그런 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말이 아닌 눈빛만으로도 커다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씩씩하게 버텨왔던 내가 난생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다니, 실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표현은 안 했지만 난 늘 두렵고 불안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이 엄마를 집어삼킬까 봐


하지만 세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뜻하지 않았던 공단의 방문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운이 났다.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사람을 살게 하는 희망이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희망...

희망...

희망...


우리 엄마에게도 희망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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