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목욕탕 가도 돼?”
“안 돼.
“생김치 먹고 싶은데.”
“안 돼.”
“친구들 놀러 오라고 해도 돼?”
“안 돼.”
“뭘 다 안 된대?”
“병원에서 안 된다잖아.”
“조심하라고 했지, 안 된다고는 안 했어.”
“못 들었어? 감염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
“백혈병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에 먼저 죽겠다!”
어릴 때 가장 많이 듣고 자란 말이 ‘안 돼!’가 아닐까 싶다.
드넓은 세상에 ‘하면 안 되는 것’들보다 ‘해도 되는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안 되는 것부터 가르치곤 한다. 위험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되는 건 천천히 알아가도 되지만 안 되는 건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엄마도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세상엔 온통 안 되는 것들 천지였다.
뛰면 안 돼. 불량식품 먹으면 안 돼. 아무거나 만지면 안 돼. 장난치면 안 돼. 친구랑 싸우면 안 돼.
떠들면 안 돼. 말대꾸하면 안 돼. 아무나 따라가면 안 돼. 울면 안 돼. 화내면 안 돼. 포기하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내가 성인이 되면서 이런 잔소리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해도 괜찮다는 걸 알아버린 탓이다.
뛰어도 되고, 불량 식품을 먹어도 된다. 친구가 시비를 걸면 싸워도 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말고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울어도 되고, 화를 내도 된다. 그리고 너무 힘들면 포기해도 괜찮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해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단,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내 인생 내가 책임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해도 된다.
난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 상태의 엄마를 보니 그게 인생의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일곱 살 애도 아니고 일흔도 훌쩍 넘긴 나이에 자식에게 안 된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요즘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안 돼!’다.
그 옛날 엄마가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따라다니며 ‘안 돼!’를 외쳤듯, 이젠 내가 엄마를 따라다니며 안 된다는 잔소리를 반복한다.
현재 엄마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호중구 수치가 낮아서 공기 중에 떠도는 세균만으로도 감염될 위험이 크다. 그러다 보니 금기해야 할 음식도 많고, 일상의 제한도 많다.
동식물의 접촉은 물론, 사람과의 접촉도 위험할 수 있으니 최대한 피하라는 게 병원의 방침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창살 없는 감옥이라며 한탄하는 엄마에게 난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다 늙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 얼마나 답답할까.
뭐 거창한 걸 원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김치 겉절이 먹고 싶다는 건데,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친구들 집으로 오라고 해서 얼굴 좀 보고 싶다는 건데,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 좀 푹 담그고 싶다는 건데,
야속한 딸은 그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으니.
충분히 삐질만하다.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거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되는 걸 된다고 허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마의 생명과 직결해 있기에 그 어떤 타협도 양보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삐지는 횟수는 점차 늘어갔고, 급기야 입을 닫아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삐졌을 땐 입 닫고, 문 닫고, 귀 닫고, 마음까지 닫곤 했었다.
내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적도 많았다.
심지어 단식투쟁 비슷한 걸 감행한 적도 있었다.
내가 몹시 삐져 있다는 걸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해 쫄쫄 굶는 걸 선택한 것이다.
- 나 밥 안 먹어!!!
의기양양하게 선언했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쪼그라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빵이라도 숨겨놓을 걸.
밥 먹으라고 부르면 몇 번 튕기다가 못 이기는 척 먹어줄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야속하게도 밥 먹으러 나오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대신 집 안에 불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곤 했다.
‘굶어봤자 지 손해지~’
옛 어른의 말씀이 맞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시기만을 기다렸다.
밖이 조용해지면 화장실 가는 척 주방으로 가 냄비 뚜껑을 열어 불고기를 손으로 집어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찌나 맛있던지.
오늘은 아무래도 엄마를 위해 불고기 반찬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