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어마마마~ 오늘은 어디로 모실깝쇼?”
“인사동 구경 가고 싶은데...”
“거긴 너무 멀어. 휠체어로 못 가잖아.”
“몸뚱이가 이래 가지고 어디 여행도 못 가겠지?”
“건강 좀 괜찮아지면 바로 가자.”
“그런 날이 오려나 모르겠다...”
나는 왜 머뭇거렸을까?
그때 엄마를 모시고 인사동이라도 갔었어야 했다.
인사동이 멀면 얼마나 멀다고. 차에 휠체어 싣고 내리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비겁한 변명인 줄 알지만, 사실 겁이 났다.
항암 치료 이후 엄마의 호중구는 늘 500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당장 무균실에 입원한다고 해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엄마를 모시고 외출한다는 건 너무도 큰 모험이었다.
동네 산책과 병원은 어쩔 수 없이 간다 쳐도 그 외 지역은 정말이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엄마의 휠체어를 끌고 시내를 누비고 다닐 자신이 없어 머뭇거렸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엄마의 다리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다리 근육이 손실되면 영영 걸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일 같이 걷기 연습을 했다.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하듯 엄마도 열심히 걷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점점 기력이 쇠약해지고, 몇 번의 낙상을 경험한 이후 혼자 걷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딸내미의 지긋지긋한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걷는 시늉을 하곤 했지만 휠체어 없이는 그 어디도 가려하지 않았다. 유모차 없이는 나갈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되고 만 것이다.
백혈병은 여러 합병증을 동반하는데, 최근 엄마는 구내염이 심하게 찾아왔다.
잇몸 통증은 물론이거니와 물도 간신히 삼킬 정도로 입안이 너덜너덜 헐어버렸다.
혀도 반 이상이 검게 변해버린지 오래요, 혀 아래엔 허연 석회질 같은 것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까지 했으나 이렇다 할 원인을 찾지 못했다.
엄마는 입 안이 아파서 밥도 못 먹겠다며 고통을 호소하는데, 병원에서는 무책임하게 아무 처방도 내려주지 않았다.
손 놓고 있을 수 없기에 무작정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백혈병 때문에 먹고 있는 약들이 워낙 독해서 따로 약을 처방할 수가 없으니 매일 와서 치료받을 것을 권했다.
입병 치료라 해봤자 소독하고 약 바르는 정도가 다다.
그래도 안 갈 수가 없기에 매일 휠체어를 끌고 동네 치과를 갔다.
공원과 시장을 다니는 산책 코스에 치과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정성이 갸륵해서일까?
일주일 간 매일 치료를 받으니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났다.
흰 죽도 겨우 드시던 엄마가 부드러운 반찬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와우!
정말 은인을 만난 듯 다행이다 싶어 우린 한 달 이상을 매일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어 댔다.
문제는 병원 가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거~
58kg였던 엄마가 3개월 만에 53kg까지 살이 빠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휠체어는 여전히 무거웠다.
우리 집은 왜 하필 언덕배기에 있는 걸까.
오르막도 힘들지만 내리막도 만만치 않았다.
오르막은 숨도 안 쉬고 다다다다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에서 멈추면 자동으로 후진이 될 수 있기에 단숨에 올라가는 게 키포인트다.
내리막에선 절대 속도를 내선 안 된다.
휠체어 안전벨트는 기본이요, 브레이크는 필수다.
기운 없는 엄마가 앞으로 쏠리면 안 되기에 휠체어를 거꾸로 돌려 후진하듯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가 따로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간신히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통과하고 나면 이번엔 높고 낮은 둔덕들이 기다리고 있다.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 의외로 많았다.
경사로를 찾기 위해 위험천만한 자동차 도로를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건 인도를 점령하고 서 있는 불법 주차 차량들이다.
걸어 다닐 때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냥 살짝 피해 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휠체어가 지나다닐 공간이 없다.
그 길을 통과하기 위해선 도로로 내려가야 하는데, 위험한 걸 떠나 경사로가 없으니 내려갈 방도조차 없다.
차주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하면 끝?
천만의 말씀.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왜 동네 병원은 2,3층에 있는지.
계단을 오를 수 없으니 병원을 갈 수도 없다.
다행히 1층에 있는 병원을 찾는데 성공.
하지만 병원 입구가 작아서 휠체어가 통과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휠체어를 밖에 세워놓고 엄마를 부축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인도가 기울어져 있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손을 놓으면 휠체어가 도로로 굴러가기 일쑤.
자칫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휠체어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굴러가는 휠체어 잡으랴, 엄마 부축하랴 그야말로 사면초가가 따로 없다.
세상이라는 적에 둘러싸여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나약한 인간 조무래기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비참하고 서글픈 마음이 가득 찼다.
이런 불편함을 몸소 경험하다 보니 장애인들이 왜 그토록 억울해하며 시위를 하는지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들은 평생 그렇게 다녀야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의 휠체어를 끌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엄마의 휠체어를 끌고 다니듯 엄마도 내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겠지?
그때 엄마는 내 유모차를 끌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처럼 힘들다고 투덜거리진 않았을지.
당시 엄마는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였을 텐데...
우량아인 내 유모차 끌고 다니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하다는 내 너스레에 엄마가 피식 웃는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나이라고.
엄마도 마찬가지로 오늘이 가장 젊은 나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오늘이 가장 건강한 나이다.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루다 보면 남는 건 후회뿐.
후회는 언제나 죄책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자식들은 이기적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내가 지극정성 엄마를 간병하는 건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러니까 엄마...
날 위해... 조금 더 살아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