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꽃이 피었습니다

-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by 정희리


“엄마, 내가 누군지 알겠어?”

“딸.”

“엄마 추워?”

“아니.”

“더워?”

“귀찮게 왜 자꾸 물어?”

“열이 너무 높아서. 응급실 가야 할 거 같은데...”

“깨우지 마. 엄마 잔다.”



엄마 열이 오를 때마다 내 긴장도도 따라 올라간다.

열이 38도 넘으면 바로 응급실로 오라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코웃음만 쳤다.

오래 전 갔던 술집에서 이런 시를 본 기억이 있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입나, 술 사먹지.


지금 엄마도 그 술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열아, 네가 아무리 올라봐라.

내가 병원을 가나, 집에서 죽지.


그렇게 열이 오르락내리락 널을 뛰더니 결국 39도를 찍고 말았다.

난 조용히 응급실에 갈 준비를 하면서 엄마에게 식사를 챙겨 드렸다.

응급실 가면 기본 서너 시간 대기에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수 없기에 뭐든 드시게 해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몇 술 뜨지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입맛 돋우게 하는 처방약도 고열 앞에서는 맥을 못추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몇 술 드셔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입원 시 필요한 짐을 바리바리 싸고 엄마를 챙기기 위해 안방에 갔더니 그새 잠이 드셨다.

곤히 주무시는 모습을 보니 선뜻 깨울 수가 없었다.

앞으로 병원 데려가지 말라며 치료 포기 선언을 했던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마음이 어지럽고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어떤 게 엄마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열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고, 상태는 악화되었다.

엄마의 의견은 충분히 존중하지만 응급 상황에선 보호자인 내 판단이 우선이다.


엄마를 깨워 억지로 휠체어에 앉히려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엄마의 상태가 평소와 달랐다.

거동이 안 될 정도로 축 쳐져 있었고, 비몽사몽 눈에 초점도 흐릿했다.

인지 능력이 저하되었는지 내 질문에 제대로 답도 못하고 계속 횡설수설했다.

난생처음 보는 엄마 모습에 난 크게 당황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남편의 발 빠른 대처로 엄마는 무사히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마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고, 의식도 몽롱했다.

약 부작용으로 엄마의 몸을 뒤덮고 있던 붉은 반점들이 더 선명하게 내 눈을 찌르듯 다가왔다.

엄마 말대로 항암을 하지 말 걸...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휘집고 다녔다.

엄마의 열이 40도를 넘었다.

이상하다 싶었을 때 바로 응급실로 달려올 걸... 자책이 내 심장을 쪼아댔다.

보호자 열 체크를 하는데 37.5도가 나와버렸다.

응급실로 오는 차 안에서 너무 울었더니 몸이 뜨거워진 모양이다.

엄마는 급히 응급실로 들어가시고, 밖에 남은 나는 응급으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초조하게 밖을 서성이다보니 또 주책없이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무리 코로나 검사 음성이 나와도 계속 열이 높으면 격이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해열제를 사먹었다.

혹시나 열이 높다고 쫓겨나면 낯선 곳에서 엄마 혼자 버텨야 하니까.


다행이 코로나는 음성으로 나왔지만, 다저녁이 되어서야 엄마와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다.

솔직히 엄마를 다신 못 보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멀쩡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순 없었다.

해열제를 투약하긴 했지만 엄마의 열은 여전히 38도를 넘었고, 수시로 39도를 넘나들었다.

엄마 몸에 뭔가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역시나 염증 수치가 비정상으로 높게 나오더니 폐렴이 진단되었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며 중환자실로 갈 경우 연명 치료를 할 건지 다른 가족들과 의논하라고 한다.

뭐...라는 건지...

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항암제를 신약으로 바꾸네 마네를 논하던 의사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응급실에 가게 되면 다신 집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엄마는 예감하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한사코 응급실 가기 싫다고 하셨던 걸까?

근데... 우리 엄마, 진짜 집으로 못 돌아가게 되면 어쩌지?


별의별 불길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더니 내 심장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엄마와의 이별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엄마 없는 엄마 집에 혼자 돌아 갈 자신이 없었다.

이 세상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 사라진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었다.

밀폐된 어둠 속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괜찮아. 이겨낼 수 있어. 다 잘 될 거야.'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심호흡을 했다.

아픈 엄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응급실로 가니 잠에서 깬 엄마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계셨다.

그 평범한 모습이 왜 그리 울컥하던지.


난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간호사가 준 1인실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입원 신청을 하면서 다인실을 선택했지만 기다림은 오래되었다.

언제까지 불편한 응급실에 엄마를 방치할 순 없다며 항변했다.

그러자 병원 측에서 내민 대안이 1인실이었다.

응급실에서 다인실 병동 기다리는 것보다 1인실에 갔다가 다인실 나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빠르다는 설명이다.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45만 원 하는 1인실 신청서를 써야 했다.

뭐 쓰는 거냐고 묻는 엄마에게 큰소리쳤다.

“엄마, 우리 1인실 가자. 내가 쿨하게 쏠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 취소!

불길한 예감은 틀렸다.

예감은 그냥 예감일 뿐이다.

이튿날 우리 엄마는 중환자실이 아닌 1인실 병실로 옮겼다.

그리고 연명치료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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