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엄마,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뭐.”
“그럼 날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가 안 태어났으면 나도 없었을 거 아니야.”
“부족한 엄마한테 태어나 네가 고생 많다.”
“아냐.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앞으로 더 잘할게. 그러니까 오래 살아.”
“아픈 몸뚱이로 오래 살아 뭐해. 난 죽는 거 하나도 안 무서워.”
“내가 무서워서 안 돼. 엄마 죽으면... 나 어떡하라고...”
엄마의 76번째 생신이 돌아왔다.
보통 엄마 생일땐 좋은 식당에 가서 외식을 했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어 집에서 식사를 차려야 했다.
뭐 맛있는 걸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평소 엄마가 좋아하는 항정살을 구입하면서 한우도 함께 샀다.
소고기는 부드러워서 씹기가 더 좋을 거 같아서 샀는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소고기는 덜 구워야 부드럽다는 사실.
엄마는 완전히 익은 것만 드실 수 있기에 바싹 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질겨져서 엄마가 씹질 못하신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한우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다 먹었... 하하하.
만회를 위해 생일 선물을 꺼냈다.
선물을 고르는데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다.
평소 같으면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사드리던가 아니면 함께 쇼핑을 갔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선택의 폭이 좁았다.
지금 엄마에게 옷이나 화장품 같은 선물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럴 땐 현금이 최고다.
물론 엄마가 어디 나가서 돈을 쓰고 다닐 형편은 아니지만 기분이나 내자 싶어 돈 케이크를 주문했다.
인터넷을 보면 돈을 감싸 만든 꽃다발이나 돈이 줄줄이 따라 나오는 케이크에 대한 영상들이 즐비하다.
그걸 보며 나도 언젠가 한 번 써먹어야지 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다.
근데 돈은 얼마를 넣어야 할지...
백만 원?
이번이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금액을 더 올려야 하는데, 난 오히려 반을 깎아 오십만 원을 준비했다.
이번이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내년 생일도 챙겨드려야 하니까 오십만 원은 남겨두자며 나 자신과 타협했다.
그래. 내년도 있으니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생일 선물을 두고 계산기 두드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엄마는 날 위해 뭐든 다 퍼줬는데, 난 엄마 생일날 이딴 계산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은행에 가서 50만 원을 모두 신권으로 바꿨다.
오만 원권 6장과 만 원권 20장.
드디어 개봉 박두.
케이크를 들고 나왔을 때는 별 감흥 없었던 엄마가 축하 카드를 따라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나오는 돈을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 어머머머... 생전 이런 건 또 처음 받아보네.
이렇게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면 진작 해드릴 걸...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 이게 다 얼마야? 이렇게 큰돈은 처음 받아보네.
아끼지 말고 더 넣을 걸...
줄줄이 딸려 나오는 만 원짜리 지폐들을 보자 또다시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왜 오만 원짜리로 가득 채우지 못했을까.
쪼잔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년에는 꼭 더 크고 알찬 선물을 해드리겠다며 속으로 다짐했다.
생일상도 오늘보다 더 풍성하고 영양만점인 것들로만 차려드릴 생각이다.
벽에 알록달록 풍선들도 달고 진짜 파티다운 파티로 꾸며 볼 생각이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어디 여행을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내년 엄마 생일에 생일상을 차려 드릴 수 있을지.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던 일상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모르고 살았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지금, 모든 게 다 불안하기만 하다.
생각 말고 무조건 행동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난 왜 바보처럼 생각만 하고 있는 걸까.
생일 축하 노래가 오늘처럼 슬픈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냥 슬퍼할 순 없었다.
오늘을 감사하게 되는 날이 언젠간 올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차일피일 미루다가 영영 아무 것도 못해 드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생각만 하지 말고 당장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거꾸로 가는 엄마의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