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와의 동거
'할 거야. 나 할 거야.'
악에 받친 듯 소리치며 원망하는 듯한 아이의 목소리,
아이는 악마를 원망하는 것일까.
엄마를 원망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것일까.
모두를 원망하는 것일까.
어린 얼굴에 어린 눈망울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 마라 하지 마, 다시는 하지 마 공부하지 마'
악마는 이 말이 대단한 무기인 양 꺼내든다.
아이의 눈은 하기 싫다. 엄마 밉다. 의 눈에서
슬픈 눈으로 바뀐다.
아이의 눈이 슬픈 눈으로 바뀌면 아이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다.
아이가 원망해야 하는 것은 악마일 뿐인데.
악마는 속삭인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마라, 너 하고 싶은데로 대충 풀고 숫자도 대충 적고
문제도 대충 읽고, 그래 너 알아서 해라. 그래서 나중에 그때 더 할 걸 이라고 후회해 봤자 너 인생이다'
악마는 아이에게서 공부의 자립을 주는 것이 아이의 삶을 망가 뜨리는 일이라고 자만하였다.
아이를 앉혀 악마가 되어 공부를 가르치는 건 대단한 희생이라 자만하였다.
그 자만 속에서 악마가 가고 덩그러니 엄마와 아이만 남게 되면
엄마와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만 남았다.
아이가 잠든 밤부터 다음날까지 하루 종일 자책하고
아이를 위한 일인데 왜 이렇게 상처와 싸움만 남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길일까.
엄마가 나서야 했다.
엄마가 악마를 이겨야만 했다.
'오늘부터 하고 싶은 사람만 하고 싶은 만큼만 책상에 앉아서 하는 거야. 우리 집은 모든 공부가 자유야!'
그래 한번 해보자. 악마를 보내는 대대적인 개편을 시작해 보자.
악마가 말하는 그 무기가 무기가 아닐 수도 있어.
"엥? 그래도 돼? 엄마 화났어?"
"아니야. 엄마 화난 거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너랑 자꾸 싸우기 싫어 우리 공부시간만 아니면 언제나 행복하잖아. 공부시간도 행복해야지. 네가 하는 일인데. 그렇지? 엄마가 노력해 보는 거야. 엄마 잘 못이니까"
"알았어"
그렇게 공부하지 않는 첫날이 지나갔다.
아이는 정말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악마가 조금씩 엄마에게 속삭였다.
'하지 마라고 한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네, 그래도 돼? 저러다 큰일 나겠어'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지켜보자. 더 늦기 전에 아이에게 공부가 눈물이 되어선 안 돼'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았다.
문득 올라오는 악마의 속삭임에 조금은 겁이 난 엄마는
'학생으로서 해야 되는 일 딱하다는 공부란다'
이 말은 놓칠 수 없었다.
5일째 놀던 아이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 내일부터는 공부해야겠다"
아이는 내일이 되어서도 공부는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빠가 나섰다.
"너네들 그래도 뭐 해야 될 일들은 하고 놀아야 하지 않니?"
"응"
아이가 책상 위에 앉았다.
혼자 앉아서 조용히 문제집을 풀었다.
악마도 엄마도 없는 곳에서 혼자.
"틀리면 어떡하지 엄마?"
"괜찮아 백번 천 번 틀리면 백 한번 천한번 다시 풀어보는 거야. 엄마는 채점만 해줄게. 너의 몫이고 그게 공부야."
"응"
퇴근하고 매일 저녁 '오늘 공부는 어떻게 다 하지' 라며
내가 하는 공부도 아닌데 아이들을 앉혀 공부할 생각에
퇴근을 하여도 저녁을 먹어도 덜 끝난 것 같았던 마음 한편의 나도 편안해졌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나고
저녁마다 공부시간만 끝나면 원수가 따로 없던 아이와 나의 사이에
"잘 자 사랑해"
"엄마 사랑해"
"우리 아가 사랑해"
공부는 더 이상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었다.
아이가 웃고 아이가 달려오고 아이가 슬픈 눈으로 엄마 밉다며 문을 닫지 않았다.
그깟 공부 그게 뭐라고
내가 뭐라고 아이에게 가르칠게 얼마나 많은데
그깟 공부 그걸 가르치려고
아이가 얼마나 스스로 잘하는데
오늘 저녁에도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를 보며
그 긴 시간 아이는 악마가 얼마나 미웠을지.
악마를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원망하며 얼마나 주눅 들었을지.
아직도 틀린 문제에 하늘이 꺼지도록 낙담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되지 못하고 악마가 되었던 지난날의 나를 채찍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