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시린 겨울을 녹여준 엉터리 왈츠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고 우연히 온벼리 작가의 글 한 편에 발걸음이 멈췄다.
그날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문장으로 나의 하루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지난 연재글의 첫 페이지로 거슬러 올라가, 그녀가 지나온 삶의 자취를 놓치지 않으려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읽어 내려갔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독서는 이내 마음을 흔드는 깊은 파동이 되었고, 어느덧 내 곁에서 조심스레 건네오는 위로의 속삭임이 되었다.
그녀의 글은 단순히 읽히는 문장이 아니었다.
내 깊은 곳에 파묻혀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밖으로 끌어올리는 서늘하고도 따뜻한 갈고리였다.
그 갈고리에 걸려 올라온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진짜 얼굴'이었다.
그녀가 내준 용기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줄씩 써 내려간 문장들은 평생 가슴 깊이 묻어두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응어리를 녹여내는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나에게 문장으로 다가와 위로와 용기를 건네준, 은인 같은 온벼리 작가가 드디어 첫 책을 출간했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긴 겨울을 지나온 당신에게 건네는 봄의 위로.
제목을 마주하는 순간 짧은 전율이 일었다.
이미 그녀의 글을 통해 넘치는 위로를 받았던 나였기에, 그 제목이 담고 있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단 한 번도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질고 어긋난 길들의 시작점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었다.
어린 시절엔 엄마의 사랑이 늘 고팠다.
어른이 되어 비로소 남편의 사랑 안에서 평범한 행복을 꿈꾸었으나, 삶은 그녀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큰 딸이 생후 한 달여 만에 뇌수막염이라는 사선에 선 것이다. 수 주간의 치열한 사투 끝에 아이는 기적처럼 돌아왔지만, 평생 ‘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스물아홉, 어린 나이에 그녀는 온몸과 마음을 으깨어 아이를 키워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그녀는 누구보다 강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단단해진 마음의 끝에서 그녀가 길어 올린 것은 날 선 강인함이 아닌, 세상을 온화하게 품어 안는 ‘다정함’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을 버텨내며 때로는 부러지기도 했던 그녀의 마음.
책은 그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마침내 온전한 삶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치열한 기록을 들려준다
"네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자신을 향해 끝없이 날아와 꽂히던 날카로운 자책의 화살들이 이 따뜻한 한마디에 소리 없이 녹아내린다.
얼어붙었던 그녀의 마음에도 비로소 볕이 들기 시작한다.
아이를 통해 깊어진 그녀의 마음은 이제 주변을 향해 흐른다.
원망으로 가득했던 엄마의 삶을 연민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해할 수 없던 남편의 행동 너머에 숨겨진 진심을 읽어낸다. 무엇보다,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진 채 홀대받던 자신의 내면에도 비로소 쉴 자리를 내어준다.
여름의 치열함을 지나 겨울의 시린 침묵을 견뎌낸 그녀가 마침내 건네는 '봄의 위로'.
책장을 덮으며 나는 깨달았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처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상처 입은 나를 온전히 껴안고 타인의 아픔에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한 어른이 아니라 끝내 서로를 향해 웃어주는 일일 테니...
죽을 만큼 힘겨운 어느 날, 머릿속에 문득 영화 속 왈츠 장면이 스친다. 그녀도 모르게 그 선율을 낮게 흥얼거리며 홀로 스텝을 밟아본다.
혼자 추기엔 왠지 더 적막해져, 곁에 있던 아이에게 슬쩍 손을 내밀어 본다.
"우리 같이 출까?"
서툴고 우스꽝스러운, 엉터리 왈츠.
엄마의 마음이 벼랑 끝 죽음을 향해 내달리던 그 찰나,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큰 소리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그 맑은 웃음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살기로 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저 서로를 향해 웃어주기 위해서.
그녀의 이야기에 나의 삶을 겹쳐 보며, 나 역시 내 안의 시린 겨울을 보낼 용기를 얻는다.
아직 추운 계절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혹은 스스로에게조차 다정하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온벼리 작가님,
당신의 다정함이 세상에 닿아 누군가의 마음에 꽃을 피울 준비를 마쳤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두고두고 꺼내어 읽을 온기 가득한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