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전 인사동 미술관, 캠코더를 든 여대생이 배운것
나는 숨겨진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
고등학생 시절, 국어시간이나 한문시간,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작품이나 인물의 뒷이야기들이 너무 재밌어서, 좀 더 이야기해 달라고 조르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 나는.
대학시절에도 그런 수업이라면 혼자 맨 앞자리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곤 했다.
역사와 관련 있거나, 내게 미지의 영역에 대한 서사를 다룬 과목들이 그랬다.
세계사, 낯선 나라의 이야기 그리고 미술사 수업 같은.
대학교 2학년 2학기, 미술사 수업을 들었다.
조별 과제를 해야 하는데, 마침 성향도 비슷한 친한 후배가 있어 우린 함께 하기로 했다.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대고 과제를 구상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린 인사동에 있는 작은 미술관들을 돌며 큐레이터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이 과제의 첫 단계였다.
꽤나 진지하고 신중하게 질문지를 만들었다.
당시엔 우리의 부족함을 메워줄 ai도 없었으니,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다음날 다시 보면 내놓기 부끄러운 내용일 뿐이었다.
날씨가 추웠던 11월 어느 날, 후배가 누군가에게 빌린 캠코더를 들고, 드디어 우린 인사동으로 향했다.
스무 살, 스무한 살의 어린 두학생이 낯선 미술관의 문을 열고 이름도 생소한 큐레이터를 찾아 질문을 건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래도 내가 언니니까, 먼저 들어가겠다고 호기롭게 말을 꺼냈으나, 심장은 쿵쾅 거리기만 했다.
심호흡 크게 하고 용기 내어 들어갔지만, 첫마디를 꺼내기가 무섭게 우린 대차게 까였다.
처음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지, 몇 번을 그렇게 까이니 더 이상 얼굴이 빨갛게 되지도, 당황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정중하고도 담담하게 인사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들리지도 않게 겨우 인사하고 도망치듯 달려 나왔는데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를 깐 그분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거나 원망을 했던 건 아니다.
우리도 알았다.
우리의 질문이 그들이 보기에 얼마나 허접하고 대책 없는 것이었는지, 그리고 바쁜 그들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미술사 수업을 들었던 이유도, 미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 보단 미술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었으니-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무지한 우리들이 쥐어짜 낸 질문지의 수준이 어땠을지는... 애써 기억해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귀찮고 성가셨을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분들도 있었다.
질문 하나하나를 정성껏 들어주고,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는 분들.
따뜻한 미소까지 띠면서 말이다.
연신 죄송하다 말하며 위축되어 있는 우리를 오히려 응원하며, 미술에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며 따뜻한 인사를 해주시던 분들.
추위에 얼굴과 손이 다 얼어있던 우리에게 따뜻한 차와 간식도 쥐어주시고 말이다.
그때 알았다.
다정함이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세심하게 지켜봐 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거절의 순간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에는 다정함이 묻어난다.
그 따뜻한 차 한 잔에는
우리를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아닌, '미술을 사랑하는 어린 학생'으로 대접해 준 정성이 담겨 있었다.
다정한 사람이 좋다.
그 어떤 가르침보다 나를 자극하는 건 그런 태도들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와 정성스러운 태도.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잘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27년 전 그분들이 내게 준 여운이 지금까지 남은 것처럼 말이다.
아마 그분들은 모르겠지.
어린 학생에게 건넨 그 짧은 다정함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아 있다는 걸.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오랜 여운을 남기는 다정하고 정성스러운 사람이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방이 많아지고,
그 방들이 해를 거듭하며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삶 구석구석 애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