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많으면 진짜로 착하게 살 수 있는데

by 모모

넷플릭스 시리즈 '캐셔로'를 봤다.

주인공은 본인 수중에 있는 현금만큼, 초능력을 발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가 초능력을 쓰는 순간,

피 같은 그 돈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인 그에게,

초능력을 써서 남을 도와야 하는 일은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르는 고통이 된다.

돈을 쓰지 않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애써 외면해야만 하는 그가 내뱉는 독백이,

내 가슴에 꽂혔다.


나도 돈이 아주 아~주 많았으면,
아~주 착하게 살았을 거다, 돈만 많았으면.


그 소심한 고백이 꼭 내 마음 같았다.


난 성인이 된 후,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적이 별로 없었다. 늘 돈이 궁했다.


고등학생 때 아빠가 큰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고, 오랜 자취 생활로 나갈 돈은 늘 쌓여 있었다.

결혼 두 번의 시련이 겹치며 우리는 꽤 오랫동안 돈에 눌려 살았다.


하지만 내가 늘 돈에 쪼들리는 이유를 이런 환경 탓으로 돌리기엔 양심이 너무 찔린다. 아주 많이.


빠는 가진 재산을 잃고, 다시 자리 잡기까지 오래도록 힘든 시간을 보내셨.

그럼에도 내 학비, 하숙비 그리고 용돈까지.. 부족하게 보내주신 적이 없었다.

훗날 언니가 아빠에게 “몇 살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아빠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너무 지쳤어”라고 답하셨단다.

그 어려움 속에도 내가 결핍을 느끼지 못했던 건, 아빠의 뼈를 갈아 넣은 희생 덕분이었던 거다.


남편도 그랬다.

연애시절, 대책없이 회사를 관두고 공무원 준비를 하게 된 내게 본인 카드를 주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몰래 내 지갑에 현금을 넣어주곤했다.


결혼 초 사업에 실패한 뒤 다시 회사로 돌아간 그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참 열심이었다.

그 덕에 살림이 나아졌고, 다시 야무지게 준비를 고 야심 차게 두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하필 한 달도 안 되어 코로나가 터졌다.

그는 또다시 돈에 대한 압박, 우리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본인을 위한 돈은 지독하게 아끼면서, 나와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다 해주려 늘 애썼다.


나는 이번에도 그의 희생 뒤에 숨어, 내 몫의 결핍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나이에도 돈이 늘 궁한 건, 결국 내 탓이다.


무계획적인 소비 습관,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우습게 여겼던 나의 태도.


맞다. 난 돈이 우스웠다.

돈의 힘을 가벼이 여겼고, 돈을 모으고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경시했다.


어릴 적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을 보며,

부유한 주인집보다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순돌이네’가 더 행복해 보였다.

가난해도 정이 가득한 그 집처럼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란 것이, 사람 목을 얼마나 조 수 있는지를 어린 나는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이제 와선 '입이 방정이었다'라고, 가끔 생각한다.


평생 자본주의 세상에 살았으면서, 마흔이 훨씬 넘어서야 알았다.


돈이 없으면,

가족을 지키는 것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도,

작은 정성을 베푸는 것도,

참 눈물 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어린아이도 알 법한 세상이치를 이제야 깨닫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까놓고 보면 사람의 인생이 꼬이는 건,
다 돈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캐셔로> 중


나도 돈 때문에 내 인생이 꼬이고 나서야.

그제 돈의 위력에 기가 눌렸고,

돈을 우습게 보지 않게 되었다.

아니, 무서워졌다.


그쯤 되니, 원하든 원치 않든 신을 차려야 했고, 경제관념을 바로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경제적 여유를 달라고.

내 부모와 자식을 지킬 힘을,

고마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여유를 달라고 말이다.


마지막엔 꼭 덧붙인다.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우리 모두 말하지.
돈이 많았으면 효도도 많이 할 거고,
걱정도 없을 거고, 기부도 많이 할 거라고.
-넷플릭스 시리즈 <캐셔로> 중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이제야 겨우 돈의 위력을 배운 초보 자본주의자로서,

새해에는 내 지갑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결핍을 기꺼이 메워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함께 벌 수 있기를 기도한다.


조금 더 적게 일하고, 훨씬 더 많이 버는 행운이 우리 모두에게 깃들기를.

그래서 돈 때문에 착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새해이길 바라본다.


돈만 많으면, 진짜 누구보다 착하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진짜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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