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엄마 말이 무서워졌다.
언젠가 ‘글로 마음을 치유하기’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이, 치유의 첫 번째 과정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엄마의 대답은 늘 같았다.
“엄만 별로 오래 살고 싶지 않아. 한 50살까지만 살고 싶어.”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엄마는,
지금도 누군가의 부고를 들으면 이렇게 말한다.
“좋겠다...”
그렇다고 엄마가 우울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유쾌했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웃음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나에게 그 말은, 한동안 생각을 멈추게 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재밌는데,
왜 엄마는 오래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서워졌다.
엄마가 빨리 죽을까 봐.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엄마에게는 지겹고 힘들기만 한 걸까 봐.
“재미가 사라지면, 삶도 같이 사라질 수 있다.”
그때부터 난 머릿속에 이 생각이 깊게 박혀버린 것 같다.
나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아마도 삶이 재미없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아무 기대도, 설렘도 없이
하루를 ‘그냥’ 보내게 되는 상태.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살아보니 이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까이 다가가 비극처럼 보이는 날에도,
분명, 아주 작을지라도-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빛이 하나쯤은 남아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작은 빛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흩어져 있는 행복의 조각을, 일부러라도 줍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절대 쉽게 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제 난, 그때는 몰랐던 마음을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이쯤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