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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젤 May 07. 2022

1. 같은 종교를 믿었으면 좋겠다

종교전쟁은 역사로만 끝내자

 세상에는 다양한 이상형의 기준이 있다. 이상형이 뭐야?라는 질문에 보통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대답이 그 사람이 가장 중시하는 이상형의 조건일 것이다. 가령, 수려한 외모를 제일 먼저 이상형의 조건으로 얘기한 사람은 외모를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직업이나 경제적인 능력을 1순위로 이야기한 사람은 경제적인 능력을 최고로 중시하는 사람이겠지.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30 미혼 남녀들의 배우자 선정 중요 기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였다. 바로 성격, 외모, 직업(소득)이다. 성별에 따라 약간 순서는 다르지만 2030 미혼남녀들은 이 세 가지를 이상형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1순위 기준은 무엇인가. 비록 평범한 대한민국 2030 미혼 남녀의 기준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바로 '종교'다.


 정치, 종교, 젠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이 주제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친구관계의 파탄은 물론 영원한 손절로 끝난다는 3대 대화 금지 주제. 이 무시무시한 금기 주제 중 하나를 이상형의 조건으로 들고 온 데에는 여러 배경 사연이 존재한다.


 우리 아버지는 뼛속까지 뿌리 깊은 유교 집안 사람이었다. 강한 남존여비 사상을 갖고 계신 탓에 딸들에게는 교육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던 할아버지 아래에서, 아버지는 2남 7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장남처럼 키워졌다. 덕분에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하며 집안을 이끌어가는 기둥 노릇을 하셨다. 그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 역시도 할아버지를 따라 조금 비틀린 유교 사상을 가지게 됐다.


 반면 우리 어머니는 소녀 같은 면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2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언니,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치이며 자존심이 세고 원하는 건 반드시 이루는 당찬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다. 원래 무교이던 어머니가 종교에 발을 들여놓은 건 고등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였다. 비록 대학을 합격한 후 삶의 분주함에 잠시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심적으로 힘들었던 어머니는 그때 기독교 신자가 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조금 비틀린 사상의) 유교남과 (신자라고 하기엔 교회를 잘 나가지 않던) 기독교녀. 전혀 접점이 없었던 두 분이 만나게 된 건 친구의 소개 덕분이었다. 첫 만남부터 "저희 아버지 모실 수 있어요?"라고 묻던 소개팅남의 다정한 면모에 끌려 어머니는 교제를 결심했고, 부모님을 모실 수 있냐는 질문에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던 소개팅녀의 예쁜 외모에 끌려 아버지는 교제를 결심했다. 그렇게 깨 볶던 연애 시절을 보낸 두 분은 결혼에 골인했고, 짧은 신혼의 끝을 고하며 1990년대의 어느 날 내가 태어났다.


 첫 아이, 그러니까 나를 낳으며 우리 어머니는 문득 고민에 빠지게 됐다. 과연 내가 이 애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나도 부족한데, 어떻게 이 아이를 키워야 잘 키울 수 있지? 그 고민의 끝에 어머니가 찾았던 해답은 잠시 멀리했던 종교였다. 어머니는 그 길로 다시 교회로 발을 돌렸다.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며 자연스레 나 역시도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육아의 힘듦과 맞벌이에서 오는 정서적인 고통을 위로받았고, 어머니의 삶에서 어느새 교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부분이 됐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종교 전쟁이 서막을 알렸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교회를 가는 이유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쉬는 날인 일요일날 집에 있으면서 애들 좀 돌보고 살림이나 하지 왜 굳이 교회를 가는지, 그리고 갈 거면 혼자 가지 뭐하러 애들을 데리고 가느냐며 아버지는 화를 냈다. 아버지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해준 게 뭐가 있기에 그렇게 교회에 미쳐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어머니는 그러한 탄압에도 꿋꿋이 나와 내 동생들을 데리고 교회를 갔다. 나 역시도 싸움터나 다름없는 집보다는 교회가 편했기에 매 주일마다 교회에 갔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면 아버지는 항상 화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우리들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방으로 피신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가출을 시도한 21살 즈음까지, 우리 집에서는 그게 일상이었다.


 종교 전쟁은 어떤 날에는 빙하처럼 싸늘했고 어떤 날에는 용암처럼 뜨거웠다. 자세한 이야길 풀면 부모님 욕을 하는 것 같고 나 역시도 글자들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으니 굳이 적진 않겠다. 아무튼 나는 매일, 매주마다 반복되는 부모님의 고함 소리와 차가운 눈치싸움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무척이나 힘들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하던가. 부부싸움에서 어떻게던 살아남으려 애쓰며 나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아, 내가 진짜 뭣 같아서 나중에 결혼하면 무조건 종교 똑같은 사람 만난다.

 아님 결혼을 안 하던가.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자와 종교 하나만큼은 반드시 통합을 이루리라, 하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성장하게 됐다. 하지만 삶이란 게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내가 경험을 해야 비로소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도 사람은 많이 만나 봐야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대학생이 되면 연애 안 하냐는 말과 함께 꼭 따라붙는 저 말.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자기처럼 기독교인만 만나겠다고 다짐하던 초등학생은 저 말에 혹해 대학생이 되어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박애주의자가 된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종교가 뭐던 일단 내가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들과 연애를 했다. 윗 문단에서 박애주의자라고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내 전 남자 친구들의 종교는 세 개가 끝이다. 무교, 가톨릭, 기독교. 종교가 기독교인 사람을 두 명 만났고, 가톨릭인 사람을 한 명, 무교인 사람을 한 명 만났다. 교회, 소개팅, 직장, 여행지. 만난 장소도 각양각색인 그들과 연애를 겪으며 내 기분은 천장을 찍기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솔로로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젠 진짜 크리스천-기독교인-만 만나야겠다. 너무 힘들다.


 결국, 배우자에 관해서는 나는 연어마냥 초등학생 때 했던 다짐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앞으로는 종교가 똑같은 기독교인만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냐,라고 물으신다면, 있었다. 그것도 좀 많이.


 지난 연애들은 물론 정말 재밌었다. 재미가 없었다면 애초에 전 남자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독특했고 나와 다른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하지만 연애에서 종교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연애를 하면서 알았다. 대표적으로 혼전 순결 문제가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혼전 순결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나 역시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기독교가 아닌 남자 친구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거부 의사를 밝히면 노골적으로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소극적으로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 역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얘는 나랑 자려고 만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던간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는 건 내 입장에서도 영 미안한 일이었으니까.


 이 외에도 안 그래도 3교대로 데이트하기 어려운데 일요일에 굳이 교회를 나가냐, 뭐하러 그렇게 재미없게 사냐는 등,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마음에 상처를 받는 건 물론이고 종교의 유무가 그리고 어떤 종교를 믿느냐가 한 사람의 가치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달았다. 종교가 동일하다는 건 적어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뜻임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마지막 연애가 끝난 후, 앞으로는 무조건 기독교인을 만나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을 만났었을 때 무조건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애초에 연애가 행복하다면 왜 헤어졌겠는가. 종교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은 다르다. 나처럼 일요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면 마음에 가시가 돋아 일주일 내내 삶을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고, 한 주 정도는 쉬어도 괜찮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랑은 다르게 일요일날 데이트 한 번쯤은 해줄 수 있겠지.


 어쨌던간 나에게는 종교가 아예 다른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종교가 같은 사람을 만나야 그나마 연애가 수월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성격부터 시작해 모든 게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게 연애인데, 안 맞는 거 하나라도 줄여야 난이도가 쉬워지지 않을까.


 이런 여러 삶의 요인들로 인해, 내 이상형의 조건으로는 무조건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 들어가게 됐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내가 신실한 기독교인인 탓에 상대도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굳이 내가 기독교적 가치관을 이해시키기 위해 논쟁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 같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 서로 목사님의 설교 중 어떤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얘기할 수 있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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