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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필 Feb 24. 2023

나를 절망에서 구원해준 가르시아의 모가지

프라에코(Praeco) : 광고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3. 첫걸음


2014년, 갤럭시 S5의 언팩 행사 영상이었다.

음악이 이슈가 되어 표류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패럴 윌리엄즈의 ‘Happy’를 레퍼런스 삼아 경쾌한 곡을 만들어야 했다.


음악이 별로라서 그런 거겠지, 두려움 없이 편집본에 담긴 제작곡을 들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당시의 나로서는 도달하기 힘든 세련된 사운드와 편곡에 절망했다.

선배 음악감독님들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절망의 크기 이상으로 반지하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 멋져 보이는 녹음실 건물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듣고 또 들었다.


기존의 음악은 영상과 하나가 되어 완벽한 호흡과 편집감 그리고 기승전결을 들려주었다.

내가 무슨 수를 써도 이 음악보다 좋게 만들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작전을 바꿨다.

보고 또 보았다.


음악을 끄고 영상을 계속 보았더니 어느 순간인가 키치 한 색감과 폰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즈음 샘 페킨파의 영화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의 마지막 축제 장면의 색채감이 떠올랐다.

세련되게만 표현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삼성과 갤럭시라는 이미지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에 드러난 키치함을 살리는 방향으로 초점을 잡았다.


영화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의 한 장면


유머러스한 멕시코의 포크 이미지,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그러면서도 오소독스 한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게 트렌디함이 느껴지도록 연출해야만 한다.




레퍼런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리듬을 메인으로 중남미 스타일의 베이스와 건반 리프를 구성했다.

내 기억컨대 야마하 PCM신디사이저 MOX6의 사운드를 Motu192 HD로 녹음했다.

너무 복잡한 리듬은 지양하여 펑키함은 유지하되 지역적 색채가 드러나도록 클라베 등의 퍼커션을 이용했다.


키치 하면서도 훅이 느껴지는 악기나 사운드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로직의 내장 샘플루프에서 정말 독특한 사운드를 찾았다.

그 샘플을 메인 보컬 삼아 곡을 완성시켰다.


지금 돌이켜보면 많이 부족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으로 선택한 도박의 패는 정말 운이 좋게도 맞아떨어졌고,

그것이 나의 첫걸음이 되었다.


이 곡에 담긴 클랩 사운드는 나의 것이 아닐 것이다.


https://youtu.be/BZhdE5oxC4Y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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