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지고 싶었으나 이미 뒷모습은 벽이 되어 있었다"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종종 앞만 보고 걷다가, 어느 날 문득, 이유 없이 뒤를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뒷모습이 어떠할지 궁금해지곤 했었습니다.
도쿄역 근처에 있는 아티즌 미술관에서도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상파에 강렬한 영향을 주게 된 자포니즘(Japonism) ‘우키요에’ 선호에 대한 자긍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인들의 인상파 그림에 대한 추앙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우에노 공원에 있는 국립 서양미술관을 보고 난 후 전철로 도쿄역에 내렸는데, 도쿄역 지하는 그야말로 저의 지남력, 공간 지각을 시험하는 난해한 장소였습니다. 매일 100만여 명이 이곳을 거쳐간다고 하는데,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미로 같은 공간 속에 어찌 그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는지... 만일 길 안내를 돕는 도우미와 그녀가 제공해 준 지도를 받지 않았다면, 답답한 구글지도로 긴 시간을 헤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와 지하도 전체에 200여 개의 출구를 가지고 있는 도쿄역의 출구 하나를 나오면 바로 길 건너편 건물에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티즌 미술관은 타이어 회사인 브리지스톤의 창립자가 만든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2020년에 재개관을 하면서 미술관 이름도 새롭게 바꾸고 특별전과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ARTIZON”(아티즌)은 “ART”(아트)와 “HORIZON”(호라이즌: 지평)을 조합한 신조어로, 시대를 개척하는 예술의 지평을 많은 분께 전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고대미술, 인상파, 일본의 근대 미술, 일본의 근대 서양화, 20세기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정교하게 연결된 조명과 더불어 관람의 즐거움이 발길을 유도하는 곳이었습니다. 도쿄에서 꼭 둘러봐야 하는 미술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림이 제게 거는 말들 중에 베르트 모리조의 <발코니의 여자와 아이>를 보면서 정호승 시인의 <뒷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정호승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다고
이제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워졌으리라
뒤돌아보았으나
내 뒷모습은 이미 벽이 되어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높은 시멘트 담벼락
금이 가고 구멍이 나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제주 푸른 바닷가 돌담이나
예천 금당실마을 고샅길 돌담은 되지 못하고
개나 사람이나 오줌을 누고 가는
으슥한 골목길
담쟁이조차 자라다 죽은 낙서투성이 담벼락
폭우에 와르르 무너진다
순간 누군가
담벼락에 그려놓은 작은 새 한 마리
포르르 날개를 펼치고
골목 끝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나는 내 뒷모습에 가끔 새가 날아왔다고
맑은 새똥을 누고 갈 때가 있었다고
내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도 있었다고
--정호승, <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 2022 중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다고”
정호승 시인의 시 〈뒷모습〉은 말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아닌, 말이 아닌, 앞선 행동이 아닌, 뒤돌아선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고. 누군가를 떠날 때, 무언가를 끝낼 때, 돌아서야만 보이는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합니다. 그 말을 떠올리게 하는 두 개의 그림이 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의 《발코니의 여자와 아이》와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1848~1894)의 《창문 앞의 청년》.
두 인물 모두 정면이 아닌 옆이나 등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 대신 시선을 보내고, 표정 대신 어깨의 기울기나 단단한 뒷모습으로 사유를 전합니다.
베르트 모리조, <발코니의 여자와 아이, woman and child on the balcony>, 1872,
아티즌미술관
‘일상의 서정을 그린’ 베르트 모리조는 인상파 화가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여성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에 모델로 많이 등장했기에 '마네의 뮤즈' 혹은 '마네의 제비꽃 여인' 등으로 불리기도 했던 모리조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며, 두 명의 언니와 함께 풍경화로 유명한 화가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 Baptiste Camille Corot)에게 미술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인 외젠(Eugène Manet)과 결혼했고, 남편인 외젠은 그녀의 그림 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기에 그녀가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도 하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예술계에서 베르트는 가족, 인물, 풍경 등을 소재로 섬세한 붓터치와 밝은 색감으로 표현하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남겼습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은 그림으로 전달할 수 없는 포근함과 환상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을 그린 그녀의 그림은 남성의 관점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섬세함과 절제된 여성적 감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은 낮은 햇빛 아래 고요합니다. 여성과 아이는 발코니에 서서 바깥세상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어렴풋한 정적이 얼굴도 없이 그림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오랜 기다림과 기도 같은 일상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말없이도 느껴지는 감정. 그것은 시인의 말처럼 제주 바닷가의 돌담처럼 단단하고, 금당실마을 고샅길처럼 오래된 안온함입니다. 담쟁이는 자라지 않지만, 손을 얹으면 체온이 느껴질 듯한 따뜻한 뒷모습이지요.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습니다만 아이와 함께 바라보는 그 풍경 속에서, 그녀의 삶의 결이 느껴집니다. 누군가 그들의 뒷모습에 작은 새 한 마리 그려두었다면, 어느 날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날갯짓은 조용한 다짐처럼, 혹은 오래된 희망처럼 발코니 위를 스쳐 지나가겠지요.
<발코니의 여자와 아이>는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 중 하나로, 배경은 파리 서부 지역 중 하나인 샤요 궁 근처 벤자민 프랭클린 거리에 있는 모리조의 집입니다. 잘 차려입은 여인과 아이가 발코니에서 파리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붓놀림은 빠르고 역동적이지만, 모든 디테일이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배경은 비교적 간략하지만, 오른쪽 상단 화분에 심어진 붉은 꽃, 여인의 우아한 검정드레스, 아이의 의상과 파란색 리본은 섬세하게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이 여성은 베르트의 언니 중 한 명으로 추정되며, 아이는 그들의 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은 인상주의의 자유로운 붓질과 빛의 표현을 따르면서도, 여성의 내밀한 시선과 감성적인 거리감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 여성 작가로서 제약이 많았지만, 예술성과 진정성으로, ‘인상주의 주요 화가로 재조명되며, 여성 미술사의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발코니와 베란다를 혼용해 쓰기도 하면서 명확한 구별이나 차이를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내와 실외, 안과 밖을 연결하거나 구분하기도 하는 발코니나 베란다는 심리적 완충 역할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실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공간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안전하게 호기심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시선을 주면서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있는 여성과 달리 안정적인 자세로 발을 벌리고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단단하고 다부져 보이는 자세의 한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 창문 앞의 청년 Jeune homme à sa fenêtre>, 1876, 게티미술관
창문 난간의 장식들은 화려하면서 굵고 두꺼워 더 안전해 보입니다.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잘 정비된 도로와 함께 부와 정돈된 상태를 보여줍니다. 빨간색의 팔걸이가 있는 의자와 바닥의 카펫이 부유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으며, 거리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과시와 오만함이 어쩌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지배적인 전경의 인물, 강조된 원근법적 대각선, 그리고 그 너머의 상세한 거리 풍경 사이에 긴장감 넘치는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그림 속 주인공의 시선이나 생각을 알 수 없어 호기심과 더불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그의 뒷모습은 단단합니다. 도시 거리를 마주하고 있지만, 바라볼 뿐 쉽게 나아가지 않으려는 듯합니다. 창은 열려 있지만 거리와의 간극은 큽니다. 그의 등은 시인의 말처럼 철조망이 쳐진 시멘트 담벼락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금이 간 채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위에, 시에서 말한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려앉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거리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쩌면 그 새가 물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젊은이는 대답하지 않지만, 그 묵묵한 등은 어딘가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창문 앞의 청년'은 초창기 카유보트가 실내의 직계 가족을 묘사한 3가지 작품 중 하나로, 근대 도시인의 고독과 침묵을 정적으로 포착한 작품입니다.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사이의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 카유보트는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원래는 법학과 공학을 공부했었습니다. 경제적 여유 덕분에 그림 활동 외에도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비 오는 날, 파리 거리》는 도시 속 인간과 공간을 냉정하면서도 정교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뒷모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합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여성은 삶의 안쪽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청년은 세상의 바깥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두 인물 모두 말없이 등을 보이며, 시인의 시처럼, 때로는 낙서투성이 담벼락처럼 낡고, 때로는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갯짓처럼 찬란하겠지요.
정호승 시인의 시가 그러했듯, 모리조와 카유보트의 그림도 말하지 않는 순간들이 얼마나 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지 조용히, 깊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뒷모습 그림으로 강력하게 다가오는 그림 중 하나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가 되겠지요. 프리드리히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포함해 형제자매 여러 명을 잃는 비극을 겪으며 일찍부터 죽음, 고독, 신앙 같은 주제에 민감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깊은 감정은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코펜하겐 왕립 아카데미에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고, 이후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며 자연을 단순한 풍경이 아닌 인간 내면의 반영이자 영적 체험의 장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에는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았지만, 20세기 이후 다시 조명되며 오늘날은 독일 낭만주의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한 남성이 바위 언덕 위에서 안개 자욱하게 낀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인물을 정면이 아닌 등 뒤에서 보여줌으로써 관람자가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화려한 풍경보다는 고요하고 숭고한 자연, 그리고 그 앞에 선 인간의 고독한 뒷모습을 자주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철학적이며 영적인 사색을 담고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속에 스스로를 투영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함부르크미술관
이 그림은 단순히 웅장한 풍경을 묘사한 것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미미함과 혼돈,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존재의 숭고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물이 서 있는 위치는 불안정해 보이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자연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안개로 뒤덮인 광활한 자연 앞에 선 한 인간의 뒷모습은, 어쩌면 시대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외로움과 숭고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은 단순하지만 전달되고 느껴지는 에너지는 강렬합니다. 실재하는 자연이라기보다 마음의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마치 인생의 불확실성과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한 인간의 결연한 자세와 의지를 암시하는 듯하고요...
프리드리히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거울이며 내면의 풍경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개는 보이지 않는 미래, 혹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을 상징하며, 그 위에 서 있는 인물은 그 미지의 세계를 마주한 존재로 읽힙니다.
그가 아내를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도 역시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창가의 여인>, 1822, 베를린 알테국립미술관
이 작품은 엘베 강이 내려다보이는 드레스덴의 집에서 프리드리히의 아내인 카롤린 봄머를 모델로 한 그림이다. 앞서 언급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이 그림에서도 인물은 등을 돌린 채, 우리가 그녀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실내와 창 밖의 풍경은 열린 창문을 통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전작보다 훨씬 사적이고 섬세한 정서를 품고 있습니다. 여인의 모습은 단정하고 조용하며,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밝고 평화롭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일상의 순간이면서도, 동시에 존재와 시간, 거리와 상실을 암시하는 묘한 감정을 줍니다. 프리드리히는 이 작품을 통해 내면의 사색이라는 낭만주의의 주제를 좀 더 친밀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여인의 시선은 바깥을 향하고 있지만, 그림 전체는 오히려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녀가 보는 세계는 어쩌면 실제 창밖이 아닌, 자신의 내면 혹은 그리움의 대상일 수도 있겠지요.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여성의 자세는 오른쪽으로 보이는 수직의 돛대와 더불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가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바라보고 있는지를 평온한 마음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뒷모습〉은 말없이 걸어가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통해, 살아온 시간과 그 속의 아픔, 인내, 그리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지요. 앞모습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뒷모습. 그것은 우리가 흔히 지나쳐버리는 삶의 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릅니다. 정해진 알람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고, 해야 할 일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느낄 때 저 자신이 무채색의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평온한 삶의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을 놓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목적지는 있지만 방향은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제자리인 듯한 느낌. 그러다 문득, 정지된 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마치 분주한 시장 한가운데에서 고요한 음악이 흐르는 골목을 발견한 것처럼.
삶은 결국 뒷모습으로 완성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앞을 향해 가는 시간만큼, 뒤를 돌아보는 조용한 시선이 필요한 지금입니다.
뒷모습마저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