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줄기차게 내리던 도쿄의 오후, 아티즌 미술관의 전시실은 고요했습니다. 고요 속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건, 조명을 정면에서 받는 한 점의 돌조각이었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그 조각은 마치 사랑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의 순간 같았습니다. 두 얼굴이 마주한 단순한 형상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을 빼앗는 가장 힘세고 위대한 도둑"이라고 키스를 말했다는 소크라테스가 생각났습니다. 또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키스는 더 이상 말이 불필요할 때 말을 멈추기 위해 본능적으로 고안된 사랑스러운 속임수"라고도 말했다지요. 그런 키스의 순간에 대해, 시인은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합니다.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미래가 빛나서
눈 밟는 소리에 개들은 심장이 커지고
그건 낯선 이가 오고 있는 간격이니까
대문은 집의 입술, 벨을 누를 때
세계는 온다 날갯짓을 대신하여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중에서, 문학동네, 2022
조각을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형태를 보는 일에서 더 나가, 마치 시간의 결을 다듬고 공간 속에 숨은 감정을 만지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손길과 의지, 직관과 고통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영겁의 시간을 견딜 듯한 물질성과 무게감은, 조각이 자연과 대화하며 만들어진 예술임을 알려줍니다. 단단한 돌에 새겨진 흔적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스며 있고, 그 결과는 ‘흔적’이 아닌 ‘실체’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됩니다. 조각은 결국, 시간과 마음을 붙잡아두는 가장 물질적인 시(詩)입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키스(Le Baiser), 1907, 아티즌미술관
정면을 향해 꼭 껴안은 두 인물, 서로의 눈과 입술이 겹쳐진 하나의 형상.
앞과 뒷면이 같은 형태로.
조각이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뜨겁고 진한 감정의 여울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껴안는 조각!
그것은 단순히 돌이나 금속, 나무를 깎고 쌓아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조각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물성을 지닌 형태를 통해 감정과 개념을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입니다. 회화가 평면의 색으로 말한다면, 조각은 질감과 부피로 말하며 공간 속에서 삼차원적인 입체 형상을 창조하지요. 그것은 실존하고, 손에 잡히며, 심지어 그림자조차 메시지가 됩니다. 조각의 특성은 영속성과 물질성에 있습니다. 단단한 돌이나 금속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과 닮았지요. 그 속에 깃든 작가의 의지와 고통, 직관은 흔적이 아니라 실체로 남게 되고요.
그래서일까요, 어떤 조각 앞에서는 말보다 먼저 마음이 반응합니다. 부피를 가진 감정, 온기를 품은 물질 앞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에 휘말리지요. 브랑쿠시의 <키스> 연작 중의 한 작품을 마주한 순간, 나는 하나의 돌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이 깎여 나왔는지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단단한 돌 속에 새겨진 감정의 무게는, 위대한 조각가들의 손길을 떠올리게 했지요. <피에타>, <다비드>등의 작품을 남긴, 살아생전에도 이미 신으로 불렸을 만큼 불멸의 작품을 남긴 조각가, 화가, 건축가 그리고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 대리석을 다루는 뛰어난 실력이 미켈란젤로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등은 모두 물성에 생명력을 불러 넣은 위대한 조각가이지요.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1876–1957)는 루마니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파리로 건너가 근대 조각의 새 지평을 연 인물입니다. 그는 오귀스트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 1840~1917)의 작업실에서 한때 수습생으로 일했으나, 곧 “위대한 나무(거목) 밑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또는 새잎이 자라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남기며 독립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말은 그가 예술가로서 얼마나 자기만의 길을 걷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언이기도 하지요. 브랑쿠시는 동유럽의 민속 예술과 전통적 조형감각을 서구의 추상 조각으로 번역해 낸 존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상의 정수를 추구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날카로운 디테일보다는 본질에 가까운, 간결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형태. 그의 대표작 <공간 속의 새(Bird in Space), 1923>, <잠자는 뮤즈>, <무한 기둥>에서도 이런 철학은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새>와 관련된 일화는 현대 미술의 정의를 재정립한 중요한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브랑쿠시는 날아다니는 새라는 주제에 집중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새의 신체적 특징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하기보다는 움직임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날개와 깃털을 생략하고, 몸통의 둥글게 부풀어 오른 부분을 길게 늘이고, 머리와 부리를 비스듬한 타원형으로 표현했습니다. 작은 원뿔형 받침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위로 솟아 날아오르려는 우아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구현했습니다. 그의 <새> 연작은 대리석과 청동으로 15개의 버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공간 속의 새>, 1923, Met
1926년 브랑쿠시는 자신의 작품 <새>를 뉴욕의 브루머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 출품하기 위해 파리에서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국 세관은 이 조각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한 금속 제품(실용적인 물건)으로 분류하여 40%의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당시 세관 규정은 조각을 "자연물을 모방한 형태"로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상적인 형태의 <새>는 예술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판정에 당황하고 분노한 브랑쿠시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에서는 예술의 정의와 조각의 범위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되었고, 여러 예술 전문가들이 증인으로 참여했습니다. 결국, 1928년 법원은 <새>를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며, 추상적인 형태도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현대 미술의 다양성과 추상 표현의 가치를 인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브랑쿠시의 예술적 철학( "실재감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핵심에 있다")과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이 단순한 형태 속에 담긴 깊은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를 잘 보여줍니다.
단순한 형태,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한 그의 조각 <키스>는 많은 이들이 '현대 추상 조각의 시작'이라 부르는 작품입니다. 두 인물의 얼굴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결합되어 있으며, 눈은 단순한 홈, 입술은 곡선 하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인물들은 두 팔을 둘러 감싸 서로 껴안고 있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밀착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 즉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상태’를 두려워하듯 이토록 단순하게 표현한 예가 또 있을까요?
이 조각은 거대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습니다. 마치 고대 석기처럼 거칠지만, 어딘가 투박하고 유아적인 단순함이 친근하기도 합니다. 조각 전체에서 드러나는 것은 육체적 열정보다는 정적인 영혼의 일체감으로 보입니다. 브랑쿠시는 사랑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하나의 돌덩이로 정제해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키스>는 아니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질박한 선언이자 질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브랑쿠시의 <키스>는 오전에 들려 보았던 로댕의 <키스>와 비교가 됩니다.
오귀스트 로댕, <키스>, 1903,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사랑을 조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그 감정은 무형이며, 순간적이고, 때로는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각자의 방식으로 '키스'를 조각했습니다. 두 작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루지만, 표현 방식과 전달하는 감정은 상반됩니다.
로댕의 <키스>는 19세기말의 낭만주의적 열정을 담고 있습니다. 두 남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입술을 맞추며, 육체적 사랑의 절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손가락의 미세한 역동, 근육의 긴장감, 피부의 부드러움, 머리카락의 흐름까지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줍니다. 이 작품은 사랑의 열정과 육체적 결합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브랑쿠시의 <키스>는 형태의 단순화와 본질의 탐구를 통해 사랑을 표현합니다. 두 인물은 하나의 돌덩이로 결합되어 있으며, 눈과 입술은 간단한 선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랑의 정신적 결합과 일체감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브랑쿠시는 외형적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본질을 강조하며, 사랑의 깊이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댕의 <키스>가 사랑의 열정과 육체적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면, 브랑쿠시의 <키스>는 사랑의 본질과 정신적 결합을 묵상하는 것이겠지요. 하나는 감각의 폭발이고, 다른 하나는 침묵 속의 일체감입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철학을 반영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감정의 깊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학에서도 '키스'는 사랑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지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키스가 운명적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로 그려진다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로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서는 키스가 사랑의 깊이와 열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키스는 예술 전반에서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상징하는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두 조각가의 '키스'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감정의 깊이와 다양성을 탐구해 보게 하였습니다. 하나는 열정의 순간을, 다른 하나는 본질의 일체감을 표현하며,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칭송되는 브랑쿠시 이후 조각은 더욱 자유로워졌지요. 헨리 무어는 인간의 형상을 자연의 곡선과 결합시켰고, 루이스 부르주아는 조각을 통해 무의식과 감정을 드러냈으며, 이니시 카푸어는 물리적 공간을 왜곡하며 인식 자체를 조각했습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적 접근으로 그만의 독자적인 형태를 전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브랑쿠시의 단순화된 형태, 조각의 본질에 대한 탐구 위에 같이 서 있습니다.
브랑쿠시의 조각은 말하고 있습니다. 조각이란 감정의 무게를 돌에 새기는 일이며, 진실은 오히려 덜어냄 속에서 드러난다고.....
정치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덜어냄이 아니라 추가와 변형과 왜곡의 언어들을 덧붙임으로써 그들의 욕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들은 말(言)이 많습니다. 진실을 향한 길은 때로 화려한 수사나 과잉된 설명이 아니라, 본질만을 남기는 침묵과 절제 속에서 열린다는 것을 조각은 말해줍니다. 말의 무게를 진심으로 감당하는 이라면, 말의 수를 줄이는 대신 그 깊이를 더할 것입니다. 정치인의 언어 또한 꾸밈보다 사실 위에 서야 하며, 순간의 이익을 좇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책임 있는 발언으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덜어냄의 미학은 조각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공적 언어에도 닿아야 하지 않을까요. 브랑쿠시의 조각이 전하는 언어와 의미를 그들도 겸허히 수용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단 바람도 가져봅니다.
브랑쿠시의 작품을 보면서, ‘조각이란, 결국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구나.’ 강박적으로 붙잡기보다, 부드럽게 껴안으며, 서로의 본질을 알아보려는 행위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브랑쿠시의 <키스>는 바로 그런 사랑의 조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미술관을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로는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의 실체를, 누군가 깎아낸 돌의 표면에서 발견하기 위해.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했는가, 덜어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동생은 한때 안정적인 직업의 문턱에 들어설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는 그 길을 뒤로하고, 조각을 하겠다고 했었지요. 돌을 깎고, 먼지를 마시고, 손끝의 굳은살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말.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누군가는 그 선택을 무모하다 했고, 그것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인지 알고 있던 사람은 만류도 했었습니다.
동생의 조각은 늘 조용했습니다.
과장된 형태도, 요란한 개념도 없었습니다.
창작활동과 전시회에 참여하며 자신의 작업들을 선보이는 과정을 반복했었지요.
단단한 물질 안에 부드러운 마음을 새겨 넣으려는 어떤 의지,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손의 온기.
가끔 동생의 작업실 한편에 놓인 돌들을 보며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요히 쌓아 올렸는지를 가늠했었습니다. 그런 동생이 조각가의 길을 접고 지금은 농부가 되어, 배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땅을 바라보고, 햇빛을 계산하며, 비의 흐름을 기억합니다. 매일 흙을 만지고, 벌레를 막고, 가지를 다듬으며 한 해 한 해를 자연과 함께 살아갑니다. ‘배’가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백 번의 손길이 들어간다 해서 ‘배’가 되었다는
풍자도 있지만...
동생의 작업을 떠올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는 여전히 ‘조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지금은 돌이 아닌, 계절과 햇살, 비와 흙으로. 형태가 아니라 시간과 생명을 돌보고 다듬으며, 자연물 속에 또렷이 자신의 마음을 새겨넣고 있는 건 아닐런지요.
동생의 집 한편에는, 아직도 그의 손때가 묻은 조각들이 여러 점 놓여 있습니다. 나는 그 앞에 설 때마다, 그 시절 동생이 흘린 땀과 숨, 망설임과 확신의 시간을 기억하곤 합니다. 단단한 돌 속에서 생명을 꺼내려했던 그 시간들, 그 수고는 결코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그가 키우는 배꽃 한 송이, 가지 하나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겠지요. 어쩌면 예술이란,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묵묵히 깎고, 기다리고, 돌보는 일.
그리고 사랑하는 것.
나는 그런 동생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참 고맙습니다.
그런 동생을 생각하며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조 한 수 , 지금도 기억하는 시조를 되새겨봅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조년(李兆年, 1268~1342)의 작품으로, 후대에 「다정가(多情歌)」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조를 배울 때 즈음이었을까요, 맑고 은은한 달빛이 고고히 비치는 어느 봄날 집 화단에 심어져 있던 배나무의 꽃을 보았었습니다. 당시 봄밤의 고요를 깨는 두견새의 울음은 듣지 못했지만, 그때 알았습니다.
‘달빛 아래 작은 배꽃’의 사무치도록 고고한 그 아름다움을.
사진 출처: 국제신문
그리고,
이다음에 아이를 낳게 되면 배꽃 梨(리)가 들어가는 이름을 지어야겠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배꽃의 꽃말이 ‘온화한 애정’, ‘위로’, ‘위안’이라니 참으로 따뜻하고 정답습니다.
봄철 어떤 시간에는 아이의 이름을 '이현'이라고 속으로, 가만히, 살짝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그 애의 실제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달빛 아래에서는
그렇게 불러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