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권
쇠뿔에 고삐 감아 산에다 풀어놓고 나는 골짜기 돌이나 뒤지며 가재나 잡던 것이었는데요 그때쯤이면 앞뒷산 능선들이 앞서거니 옴팡골 밖으로 풀어져나가는 것이었는데요 워낭 소리가 희미해지다가 드디어 가뭇없어지는 데쯤에서 나는 소를 찾아 나서는 것인데요 잡았던 가재 도로 물에다 풀어놓고 주근깨 송송 박힌 산나리꽃을 쥐어뜯으며 네미 네미 소를 불렀던 것인데요 어둑발 내리는 산골짜기를 허위허위 오르노라니 소는 어디로 갔는지 당최 코빼기도 볼 수 없던 것인데요 희미하니 들리는 워낭 소리를 따라 껑충한 원추리꽃 분지르며 넘어갔을 적엔 퍽이나 커다란 산초나무를 만났던 것인데요 웬 놈의 호랑나비떼가 산초나무에 그리 빼곡하니 앉았는지 더러는 훨훨 날아다니는 놈도 있고 더러는 앉아서 교접하기도 하며 산초나무가 이룬 한세상 꽃밭에다 죄다 입을 박고 꿀을 빠는 것인데 하 그런 장관이 없어서요 나는 소를 찾을 걱정도 다 잊어버리고 신령한 뭔가를 보듯 황홀하게 산초나무를 우러르며 주저앉았던 거였는데요
---안희연, 황인찬 엮음,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2024,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 중에서
동시도 쓰고 성인시도 쓰는 송진권(1970 ~ )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2004년 창비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고향의 말과 풍속을 시적 언어로 되살려내며 “우리 시대 백석 시인의 현현(顯現)”(천상병시문학상 심사평)이라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원근법 배우는 시간』외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이 있습니다. 천상병시문학상과 고양행주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시는 “쓸쓸히 잊혀가는 고향 마을의 애틋한 풍경과 그 안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농익은 서정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충청도 사투리의 능청스럽고 구수한 가락과 삶의 내밀함을 담아낸 정밀한 비유가 돋보이는 단정한 시편들이 훈훈한 감동을 자아내는 동시에, 회색 도시의 음울한 그늘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속에 잔잔히 스며들며 그윽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백석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에 대해 "맹렬한 모더니즘의 습격을 뚫고 성취된 수작"이라면서 "시인은 '현대성'이 무엇인지를 되물으며 시를 관념의 세계에서 끄집어내 사람이 살아가는 곳으로 데려왔다"면서 “능수능란한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을 통해 얻어진 감각적 이미지들은 놀라운 감칠맛으로 시에 생기를 부여한다. 시간으로부터 간신히 건져낸 향토적 정서를 살아 있는 현재로 만드는 성취”라고 평가했습니다. 현직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시인은 “제가 느린 사람이라 글 쓰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더니, 저처럼 쓰는 사람이 귀해졌다”면서 “수상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왜 나한테 이상을 주나’했죠”라고 인터뷰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던 당시의 심정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송진권 시인의 "내가 처음 본 아름다움"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감각적으로 펼쳐 보이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쇠뿔에 고삐를 감아 산에 풀어놓고 소를 찾으러 나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서술하며, 그 과정에서 마주한 자연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냈지요. 단순한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그것이 시인의 시선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절절히 전하고 있습니다. 추억이 가득한 아련한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를 둘러싼 외부 상황의 난분분한 소음을 잠재울 수 있겠지요.
이 시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감각적인 묘사와 리드미컬한 문장의 흐름이겠습니다. “워낭 소리가 희미해지다가 드디어 가뭇없어지는 데쯤에서”라는 구절에서는 소리를 통해 거리감을 표현하며, “네미 네미 소를 불렀던 것인데요”라는 반복적인 구조는 어린아이가 소를 찾으며 느꼈을 조바심과 애타는 마음을 실감 나게 전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문체적 특성이 시인이 겪었던 감각을 직접 체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장면을 한번 그려보세요.
그러나 이 시의 백미는 소를 찾아 나서는 과정 속에서 발견한 ‘산초나무’와 ‘호랑나비 떼’가 이루는 장관입니다. “웬 놈의 호랑나비 떼가 산초나무에 그리 빼곡하니 앉았는지”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은 놀라움과 감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네요. 날아다니는 나비, 교접하는 나비, 꿀을 빠는 나비들이 가득한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시인은 소를 찾는 것을 잊고 이 경이로운 장면에 넋을 놓았지요.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순간 앞에서 우리는 삶의 고단함과 목적의식을 내려놓고 순수한 감각으로 존재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인간이 자연과 조우할 때 느끼는 근원적인 감동을 환기시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아름다움’을 마주하지만,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시인은 유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처음 본 아름다움’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는가?
송진권 시인의 이 시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숨겨진 감수성을 깨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다시금 정화하는 힘을 돌아보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소를 찾으러 가는 길목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집 앞 산속에 있는 사찰의 벽에는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 목우도牧牛圖)가 그려져 있습니다. 첫 장면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지요. 잃어버린 마음의 소(진짜 자기)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의문을 품고 공부하고자 하는 출발인 것이지요. “아득히 펼쳐진 수풀 헤치고 소를 찾아 나서니/ 물 넓고 산 먼데 길을 더욱 깊구나/ 힘 빠지고 마음 피로해 찾을 길 없는데/ 단지 들리는 건 늦가을 단풍나무의 매미 소리뿐”... 곽암의 <십우도송 (十牛圖頌)> 중에서
십우도 중 심우尋牛, (사진 출처: 불광미디어)
만해 한용운 님이 만년(1933~1944)을 보낸 사저의 이름이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하지요. 심우장은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 님은 터를 남향으로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집을 북향으로 지었답니다.
“잃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쏘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만해 한용운, <신불교 제9집>, 1937년 12월호에서
송진권 시인의 <내가 처음 본 아름다움>을 읽으면서 이 시의 감각적 경험과 맞닿아 있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끝없이 펼쳐지는 산세와 그 속에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8.5m에 가까운 가로로 긴 종이 위에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과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린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이상향을 간절히 찾는 조선 사람들의 내면을 반영한 그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강과 산이 이어지며 시선을 유영하게 하는 이 그림은, 송진권의 시가 그려내는 능선과 골짜기, 그리고 자연 속에서 길을 잃고 발견하는 아름다움의 순간과 닮아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존재로 그려지며, 시인의 유년 시절 속 산과 들판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경이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인문, <강산무진도> 중 일부
강산무진도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인문, <강산무진도>,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진경산수화가로, 스승 심사정(1707~1769)의 영향을 받아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신위(申緯, 1769~1847)는 “왕을 모시던 화사 중 뛰어난 이로 이인문과 김홍도(金弘道, 1745~?)가 있었는데, 덧없이 김홍도는 세상을 떠났고 이인문만 남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를 통해 18세기 중후반경 김홍도와 이인문이 궁중화가 가운데에서는 손꼽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인문과 김홍도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화가로, 비슷하게 궁중의 도화서 화원이 되어 나란히 두각을 나타냈으며 서로 간의 친분도 매우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홍도와 이인문 모두 산수화면 산수화, 인물화면 인물화,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소화해 냈지만, 김홍도는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생활이나 정서를 주제로 한 풍속화를 선구적으로 그렸던 데에 반해, 이인문은 필묵의 기량을 바탕으로 한 관념적 산수화에 원숙한 역량을 발휘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인문은 중국식 이상향을 그리던 기존의 화풍에서 벗어나, 조선의 자연을 사실적이면서도 장엄하게 담아내는 화풍을 발전시켰습니다. <강산무진도>는 그의 대표작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무한한 공간감을 표현하며, 우리로 하여금 자연 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그의 그림 세계는 송진권의 시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가 자연이 지닌 신비로움과 경이감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송진권의 시가 전하는 <처음 본 아름다움>은 단순한 경치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경이로운 감각의 순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예술 속에서도 계속해서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시간으로부터 간신히 건져낸 향토적 정서를 살아 있는 현재로 만드는 성취”를 보여주는 송진권 시인의 시어들은 우리가 여전히 --- 그러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또 다시 처음 본 아름다움의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