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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by 윤재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Spring cannot be Cancelled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거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물론 네 말은

옳다, 너무 옳아서

말하는 것이

도리어 성가시다.

언덕으로 들어가,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우리가 들을 것이다,

듣고,

네가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




울라브 하우게는 1908년 노르웨이 서부지역 울빅(Ulvik)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94년까지 과수원 농부로 평생을 일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국립도서관의 사서와 친구로 지내며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독학으로 학습했다고 합니다. 그의 시어(詩語)는 단단하고 간명하고 분별력이 있습니다. 그는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소금 한 알같이"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평이한 시어로 천천히 스며드는 그의 생각들은 위안이 되기도 하고 당부가 되기도 합니다. 태어나고 자란 울빅에서, 1994년 자신의 의자 위에 앉아 삶을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농부 시인이 있습니다. 일상을 자연의 언어로 소박하게 전달하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우리의 농부 시인들.


동지가 오래전에 지났으니 봄도 저 멀리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겠지요.

자신의 시간으로 온 대지와 우리들을 물들이려고요.


농부 시인, 정원사 시인, 자연과 삶을 경작하는 시인을 만나면서 여기 자연 속에서 희망을 얘기하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떠오릅니다.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이 책은 시대와 함께 숨 쉬는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가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png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립되고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과 마주했을 때 80세가 넘은 이 고령의 예술가가 택한 주제는 ‘봄’이었다. 인간의 고통스러운 상황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봄은 오기 마련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 마을에서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하루하루 변해 가는 자연을 기록한 그의 그림들은 신기하게도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어쨌든 시간은 지나고 봄은 올 것이며, 우리의 어려운 상황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그때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 호크니와 그의 그림들이 가진 힘이 아닐까 한다. “고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원이 있는 그랑드 쿠르라는 곳에서 집을 얻고,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집처럼 호크니는 이곳에서 소박하고 평안한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조용히 은둔자처럼, ‘여행을 다니지 않는 시간’을 갖으며 새로운 곳에서 반려견 루비를 옆에 두고 드로잉을 했습니다. 시선 가는 벚나무, 사과나무, 배나무가 차례로 꽃을 피우면 그는 스무 살은 더 젊어진 것 같은 활기를 느끼곤 했답니다. 그런데 전 세계적인 재앙이었던 코로나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동료이자 친구인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와 함께 세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삶과 예술에 대한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

영국 출신의 실력파 화가!

생존 화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의 예술가!

수영장의 화가!

....

그를 수식하는 많은 단어들이 많습니다.

”90을 넘은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아이패드 같은 디지털 기기를 쓰면서

창작을 거듭하고 있는 작업 태도에서도 모범이 될 뿐만 아니라

작업량이나 작업 세계에 있어서 가장 높은 경지를 쌓아 올렸다고

평가되는 세계적인 거장 화가”라는 긴 수식어도 있습니다.



황량하고 흐리고 비바람이 많은 날씨를 보여주는 영국 북부 요크셔의 브래드퍼드에서 1937년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배급받으며 자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였답니다.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재학하던 시기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무명 기간 없이 바로 핫 아이콘이 되었지요. 피카소의 전시를 보면서 작가란 무엇이든 원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독자적인 방식을 추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피카소를 좋아하고 존경했답니다.





젊은 시절의 호크니.jpg

젊은 시절의 데이비드 호크니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볼까요,

p.7, 호크니를 안 지 어느덧 25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항상 그래 왔듯 현재 각자 다른 곳에 살고 있다. 이 상황은 우리의 우정에 특정한 리듬을 부여한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멀리 떨어져서 이메일과 전화 통화, 또 가끔씩은 소포 꾸러미로, 그리고 거의 매일 나의 메일함에 꾸준히 도착하는 그림을 통해 우정을 나누고 있다.



p. 116,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 몇 점을 BBC 방송국으로 보냈고, 이 작품들은 바로 <타임스>, <가디언> 등 몇몇 신문의 제1면에 실렸다.....(중략)...

호크니는 그 드로잉들에 동반된 몇 가지 생각을 덧붙였다.

“ 나는 작업을 계속할 작정이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나는 내 작업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유리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일이죠. 우리는 자연과 별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 상황은 때가 되면 끝날 겁니다. 그다음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나는 거의 여든세 살에 가깝고 언젠가는 죽게 될 겁니다. 죽음의 원인은 탄생이죠. 삶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음식과 사랑입니다. 내 강아지 루비에게 그렇듯이 바로 그 순서대로입니다. 나는 이 점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예술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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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No. 180>, 아이패드 드로잉,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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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No. 241>, 아이패드 드로잉,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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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가 보낸 봄 그림에 대해 <Guardian> 지는 2020년 4월 2일 기사에서,

평생 밝은 면을 바라보며 살아온 데이비드 호크니는 봄을 우리 질병의 치료제로 추천합니다. 82세의 예술가는 노르망디에 피어난 수선화와 과일나무를 집중적으로 관찰한 최신 아이패드 그림을 공개했습니다. 한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폐쇄된 세상에서도 “그들은 봄을 취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하략)라고 썼습니다.



호크니는 “어떤 회화 작품이든 내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바로 물감 자체입니다. 그런 다음 형상 등을 보겠죠. 하지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표면입니다” “그것이 수영장 그림을 그린 이유입니다. 정말이에요.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수영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물과 투명성이었죠. 나는 춤을 추는 그 선들이 수면 아래가 아니라 수면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연못에서 수면과 그 아래의 깊은 부분을 봅니다”... p.196



그의 그림 <더 큰 첨벙>, 1967은 직접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화창한 날씨, 이국적인 야자수와 수영장,

누군가가 물로 첨벙 뛰어든 듯한 묘사에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물이 튀어 오르는 장면을 묘사하고자 2 주간 공을 들여 관찰했다고 합니다.




더 큰 첨벙.jpg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 런던 테이트 미술관



“2초 동안 지속되는 이 순간을 그리는데 2주가 걸렸다. 물보라는 시간이 지나도 멈출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사진을 찍는 데는 1초 이하가 걸리지만 그림은 사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므로

보는 사람에게 다른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 부재한 이 그림에 시간과 장소와 청각 그리고 시선이 함께 합니다.

참으로 경쾌하며 오묘하고 놀랍습니다.



더 큰 첨벙 물 표현.png



이 그림을 보면, 오규원 시인의 <빗방울>이 생각납니다. 장석주 시인은 귀 밝은 시인 덕분에 들을 수 없는 비의 노래를 듣는다고, 이 시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빗방울>....

오규원(1942~ 2007)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가만히 이 시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불러보면, 현재진행형의 영상처럼 빗방울들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나요?



호크니의 그림 <더 큰 첨벙>을 보고 있으면, 첨벙 소리가 반복 재생되어 들리는 듯합니다.



호크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물을 그리는 보다 일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그 방법을 찾았다.

물을 표현하고 묘사하는 것은 주제와 별개로 흥미로운 형식적 문제다.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수영장을 사진으로만 찍는다면, 드로잉 할 때만큼 수영장을 유심히 보지 않을 것이다”


“수영장 물이 다른 어느 물보다도 변화무쌍하다. 그 색깔은(바닥 페인트색 등으로) 인공적일 수 있고 그 춤추는 리듬은 하늘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투명함 때문에 물의 깊이도 변영한다. 수면이 거의 잠잠하고 햇빛이 강할 때는, 색깔 스펙트럼이 있는 율동적인 선들이 어디든 나타난다.”


각 순간에 따라 일렁이기도 하고 햇빛에 반사돼 빛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본다는 건, 새로운 방법으로 느끼는 것이다” New ways of seeing mean new ways of feeling



자세히 보고, 오래 관찰하고

그러기엔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시간이 없다고 느끼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바쁘다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마음과 기억으로 보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우리에게 전하는 Spring cannot be Cancelled!

그는 말합니다.

"나는 항상 이 세계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늘 그렇게 말해 왔죠.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더한층 미쳐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청년들이 이주해 들어올 수 없게 되면 도시는 죽습니다.

훌륭한 미술가는 말년에 이르렀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새로운 작업을 하죠."



p.269,

전에도 말했듯이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흐름 속에 있습니다.

사실상 봉쇄를 제외한 모든 것이 흐르고 있죠.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그 흐름을 드로잉으로 그릴 수 있고 그림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흐르는 것임에

울라브 하우게의 말처럼,


그대여

말하는 것이 성가시니

그저

언덕으로 들어가,

대장간을 짓고 쇠를 달구며 망치질하길......



안소영작가는 <책만 보는 바보>에서, 책을 들여다보면 신기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고. 책 속을 누비고 다니느라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때론 가슴 벅차기도 하고, 때론 숨 가쁘기도 하고, 때론 실제로 돌아다닌 것처럼 다리가 뻐근하기도 했다 “고요.



우리의 봄이 진정 치료제가 되길 저도 함께 희망합니다.



오늘 저는

오늘 해야 할 할당된 운동량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잠시 쉬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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