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해진 날씨 덕분에 완고하게 굳어있던 길이 말랑말랑해져 늘어진 고무줄처럼 헐거워졌습니다. 신발에는 흙길의 흔적이 묻어있습니다. 산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보리밭을 밟아야겠다’고 넉살을 부렸습니다. 밟을 보리밭이라도 가까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훈 작가는 그의 <자전거 여행>에서, “경작지에서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대화처럼,
그는 “겨울을 밭에서 지낸 보리는 이 초봄 흙들의 난만한 들뜸이 질색이다. 한창 자라날 무렵에 헐거워진 흙들이 뿌리를 꽉 껴안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흙을 이해하는 농부는 봄볕이 두터워지면 식구들을 모두 보리밭으로 데리고 나와서 흙을 밟아준다.”라고 적었군요.
햇살의 간지럼에 기지개를 켜는 나무의 촉수들이 수런거리고, 성급한 여인 몇 분이 발밑을 주시하면서 냉이를 캐려는가 봅니다. 경계선이 모호한 하늘의 구름도 노곤해 보입니다. 어느 해보다 마음이 더 긴장되고 추웠던 이 겨울도 이젠 가는가 봅니다. 어제 오후의 혼란은 어서 빨리 봄이 와야 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수거’된 대상들과 남아 있는 자들의 비명이 하늘을 뒤덮을 수도 있었던 그 겨울이 빨리 가고 우리는 봄의 제전을 맞이해야겠지요.
마침내 겨울은 힘을 잃었다
여자는 겨울의 머리에서
왕관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제 길고 지리한 겨울과의 싸움은 지나갔다
북벽으로 이어진 낭하를 지나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진 차가운 방에
얼음 침대에
겨울은 유폐되었다
여자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왕관은 숲 속에 버려졌다
겨울은 벌써 잊혔다
오직 신생만을 얻기 바랐던
재투성이 여자는
봄이 오는 숲과 들판을 지나
다시 아궁이 앞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 부엌과 정원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오직 그것만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송찬호, 『분홍 나막신』, 2016, 문학과지성사 중에서
송찬호의 시 <봄의 제전>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는 과정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작품입니다. 시 속에서 겨울은 힘을 잃고, 왕관이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 마치 왕좌에서 밀려난 존재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반면, 시의 화자는 봄의 도래를 침착하게 지켜보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송찬호(宋燦浩, 1959년~) 시인은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기의 꿈은 일찍이 버리고, 동해안에서 군대 생활을 하면서 김춘수 시집을 읽고 숨을 쉬듯 시를 쓰다가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금호강」 「변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김수영문학상과 동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지요. 그동안 동시집 『저녁별』 『초록 토끼를 만났다』와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분홍 나막신』 등을 출간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의 직장 생활을 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꾼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마음속은 단단한 사람으로 아내의 소망대로 고향에 4년 반에 걸쳐 한옥을 짓고 산다고 합니다.
“요즘 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리와 운율의 미학이 특별한 수준에서 성취되어 있어” “매력적”이라는 것이라는 평과 함께 “동화적이고 신비스러운 마법적 상상력을 풀어내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대고 조곤조곤 말하는 시인의 작품이 어린 시절에 보았던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잉크의 늪”을 보여주고 있다는 출판사의 리뷰도 있습니다.
그의 시 세계는 자연과 인간, 신화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며 독창적인 시적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한국 현대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요. 송찬호 시인은 전통적인 시적 형식에서 벗어나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언어를 다루며, 시를 통해 존재와 시간, 자연의 의미를 탐구해 왔습니다.
어찌 감히 시인들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랴마는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현존 시인 가운데 시를 가장 잘 쓰는 사람 다섯을 꼽으라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송찬호 시인을 그 다섯 손가락 안에 넣는다고도 합니다.
이 시의 첫 부분을 읽으면 마치 장엄한 전환점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겨울이 힘을 잃고, 왕관이 떨어지는 장면은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권력의 교체나 운명의 전환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변화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 앞에서도 담담해져야 하며, 그 순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이 시는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진행형이지만 그 겨울이 혹독했기에 이 시의 첫 연에 깊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이 시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이 지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인간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재투성이 여자’라는 표현은 과거의 고난과 시련을 견뎌낸 존재를 떠올리게 하며, 이는 봄이라는 희망과 연결됩니다.
겨울이 잊히고, 버려진 왕관을 뒤로한 채, 여자는 부엌과 정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군요. 이 장면은 겨울이 가져온 얼어붙은 시간에서 벗어나, 따뜻한 계절 속에서 삶을 다시 가꾸어나가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재투성이 여자’라는 표현에서 신데렐라가 떠오르기도 하고, 오랜 인고 끝에 마침내 자기 삶을 되찾은 한 인물이 보이기도 합니다. 봄이라는 계절이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현상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힘과 희망을 주는 존재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에도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오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지요............
이 시를 읽으면서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그림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남정 박노수(1927~2013) 화백의 그림이 다가옵니다.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는 충남 연기군(세종시)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익히고 서예를 배운 후, 청전 이상범, 근원 김용준, 월전 장우성을 사사하였으며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습니다. 1953년 대한민국 국무총리상, 1955년 대통령상을 수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5.16 민족상, 3.1 문화상, 대한민국 문화훈장(은관) 등을 수훈하였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新 화풍을 구축하여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 낸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1년 와병 중에도 사회 환원에 뜻을 가지고 종로구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설립을 위한 기증협약을 맺었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애석하게도 미술관 설립 준비 중인 2013년 2월에 타계하였으며 같은 해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대표적인 친일 인물인 윤덕영이 자신의 딸과 사위를 위해 1937년에 지은 주택으로 한식과 양식 건축기법이 절충되어 지어진 건물로 중국식, 일본식 건축기법도 혼합되어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합니다. 1972년에 박노수 화백이 인수한 이 주택은 오랜 세월에 거쳐 증축, 수리되었지만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등록되었습니다.
박노수 미술관 (사진출처: 박노수미술관)
남정 박노수, <고사> 작품제작 연도 미상, (사진 출처: 박노수미술관)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롭게 활용된 그림 같습니다. 중앙 상단에 등을 보이며 살짝 옆으로 기울어진 자세의 인물 표현과 간명하고 대담한 구도가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고고하고 기개 높은 선비의 자존이 드러나며 그의 자세는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자연과 피리를 불며 소통하고 있는 듯합니다. 붉은 바위와 올라오기 시작하는 푸른 색채가 부드럽게 연결되며 빠른 선조가 높은 화격을 보여줍니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선과 투명성을 지닌 채색이 자유롭고 주관적입니다.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는 색상과 여백의 미가 고요함과 여유를 주는 그림입니다.
저 언덕에서 피리를 부는 선비의 낭만이 노랗고 둥근 해와 더불어 따스함을 전해줍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피리를 불까요, 둥글게 넘어가는 하루를 수고한 해에게 주는 감사의 선율일까요, 아님 주변의 자연물에게 주는 선율이 될까요, 고결한 선비가 주는 선물이 고마운 그림입니다.
대학시절 선배와 '짧은 퉁소'라는 이름을 가진 단소를 일주일 배운 적이 있습니다. 단소는 맑고 청아한 음색을 낼 수 있고, 독주악기로도 사용됩니다. 여름 방학 때 재능기부 강좌가 있어 땀 뻘뻘 흘리면서 구불구불한 종로와 동대문 근처의 어느 골목길로 찾아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단소도 우리의 전통 관악기 중의 하나이지요. 아리랑도, 영산회상도 잘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단소는 일단 처음 부는 것도 상당히 연습해야 하는데, 그러느라 입 주변 근육도 상당히 아픕니다. 다소간 개인차는 있지만 2~4주 동안 부는 연습만 온전히 해야 한다는데 고작 일주일이니 뭐가 되긴 한참 멀었었지요. 당시 강사들이 들려주는 단소 소리에 마음이 저리고 뭉클해서 눈가엔 한 두 방울 눈물도 맺혔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단소 배우기는 제게 남은 미완의 과제입니다.
송찬호의 <봄의 제전>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통과의례(rite of passage)처럼 그려냅니다. 이는 인간이 겪는 고난과 극복,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박노수 화백의 그림과, 또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혹은 밝고 경쾌한 선율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봄의 시작을 재잘거리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La Primavera)’ 음악을 함께 감상하면, 시가 품고 있는 깊은 의미와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은 원시적이며 강렬한 리듬과 독창적인 선율로 봄의 도래를 강렬하게 표현하지요. 비록 시의 분위기와 다소 거친 대비를 이루는 - 음악사에 혁명을 일으킨 도발적인 음악이지만, 봄이 단순히 따뜻하고 온화한 계절이 아니라, 변화와 격동을 동반하는 힘찬 시작임을 생각하면 어울리는 선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주세페 베르디의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도 봄을 맞이하는 좋은 곡입니다. 겨우내 어미 곁을 떠나지 못했던 망아지가 들판에 뛰노는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산책길에 만나는 새들의 노래가 설렘과 기대로 가볍게 떨리고 있는 듯 들리고 딱따구리가 따다 따닥 열심히 나무 둥지를 쪼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새들의 부지런한 노래와 그들의 활동이 송찬호 시인의 <구두>를 불러오는군요.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은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 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보는 것이다
--송찬호, 『10년 동안의 빈 의자』, 1999, 문학과지성사 중에서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우주가 인간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중 하나가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했다지요. 상담자로의 수련 과정에서 지도 선생님이 자주 하셨던 말씀이 '좋은 질문을 내담자에게 하라'는 것이었지요. 질문은 생각하고 상상하는 창조의 힘이 있을 뿐 아니라 내 안의 잊히거나 억압된 욕구를 만나게 하는 힘이 있지요 질문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질문을 통해 성장하기도 합니다. “왜”라는 질문에는 “어떻게”라는 답이 있고요.
왜 사냐고요?
어떻게 살고 싶은데요...
왜 그는 그럴까요?
어떻게 해야 그런 그를 다시 만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인지...
“왜”와 “어떻게”를 연결하는 질문과 방향성을 찾는 시간이 종종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억압된 시간과 일상의 안일함을 벗어던지고
새처럼 비상하는, 자유와 이상을 향한 의지가 발현되는 오늘
그리고
그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봄이 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