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적 생각이나 파괴적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은 긍정적 감정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 달라이 라마 -
Y는 30대 후반의 회사원입니다. 그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나와 같은 지역의 내실 있는 회사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근무를 했습니다. 연봉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디 가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고, 무엇보다 근무환경이 좋았습니다.
그의 회사는 규모가 작았지만 오랫동안 하나의 전문분야를 깊게 다루고 있어서 시스템이 잘 잡혀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유능했습니다. 다들 성격도 원만해서 지내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습니다. 근무시간도 일정하고 퇴근 이후에는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자는 분위기여서 편안하게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며 지냈습니다.
물론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작은 회사이다 보니 을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일정을 바꾸거나 계약을 변경하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었지만, 그런 일에 익숙한 선배들의 도움으로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Y는 회사에서 손꼽히는 유능한 사원이 되었습니다. 회사와 동료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으니 더욱 힘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Y에게 인생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Y를 눈여겨보던 서울의 대기업 임원이 그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한 것입니다. Y는 몹시 마음이 끌렸지만 10년 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민에 빠졌지요.
다니던 회사의 사장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동료들도 의견을 모아 Y를 추천한 상황이었고요. 고민에 빠진 Y에게 사장과 동료들은 걱정 말고 가서 꿈을 펼치라고 격려해 줍니다.
그렇게 Y는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 결혼한 아내가 가장 기뻐했고,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셨지요. 친구들도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마치 좋은 대학에 입학한 수험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들뜬 마음을 뒤로하고, Y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자신을 추천해 준 사장님과 동료들을 보아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습니다. 이전 회사는 작지만 시스템이 잘 잡혀 있어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 지금의 회사는 워낙 다양한 일을 하고 지속성도 낮아서 시스템 자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틀이 잘 잡혀 있어야 업무 효율이 오르는 성격인데, 이곳은 틀을 만들어 내야 하거나 혹은 틀 없이 즉흥적으로 처리해야 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업무 성과는 나빴습니다. 이름도 못 들어본 촌구석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고 아니꼽게 보던 동료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Y를 깔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대놓고 핀잔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친절하게 대했지요. 심지어 칭찬까지 했습니다. “업무를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역시 파악이 빠르시네요, 대단하십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지적을 해서 고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방관했습니다. Y는 점점 고립되는 것을 느꼈지요.
업무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습니다. 퇴근 이후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업무량도 정말 많았습니다.
언젠가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가 ‘돈을 많이 주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Y는 짜증이 늘어갔습니다.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감이 치밀어 하던 일을 멈춰야 했습니다. 술과 담배도 늘었습니다.
아내와 다투는 일도 빈번해졌습니다. 아내는 Y가 변했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서울에 오지 말 걸 그랬다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올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이 돌변하는 것을 보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Y는 생각합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내 삶이 어쩌다 이렇게 망가진 것일까? 옛날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자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Y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Y는 지방의 작은 회사를 다닐 때 고통을 적절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대기업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점점 감소했습니다. 중요한 과제를 지속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부적응적 완화행동이 늘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대기업에서의 생활은 그 자체로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수준이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일을 배우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으니 고통이 배가되었겠지요.
인간관계도 문제였습니다. 새로운 회사의 사람들은 Y가 못마땅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합니다. 서울의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열심히 인턴생활을 해도 정규직으로 들어가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 어려운 관문을 겨우 통과해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편안하게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셈이니 감정이 복잡할 겁니다. 그러니 좋은 태도로 대하기가 어려웠겠지요. 그 결과 Y는 직장에서의 대인관계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고통 수준 자체가 증가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고통 수준이 증가하면 고통을 견디는 행동에도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닙니다. Y의 삶에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없던 것이 생기기도 했지만, 있던 것이 사라지기도 했지요. 자 무엇일까요? Y의 인생에 있다가 사라진 것. 다음 시간에는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