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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Aug 16. 2024

11. 도망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1822년 미국 메릴랜드 지역의 농가에서 한 소녀가 태어납니다. 이 소녀의 부모는 노예였지요. 노예의 딸로 태어났으니 소녀의 신분 또한 노예였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지요. 


소녀는 노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지요. 하라는 일을 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일은 몹시 고되었습니다. 농가 주인의 학대도 매우 심했지요. 처음에는 그저 참고 견뎠습니다. 부모님도 그랬으니까요. 그저 그렇게 참고 견디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어느덧 20대에 접어들었지요. 성인이 된 소녀는 고된 일과 학대가 자신을 점점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병들어가고 있었지요.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막막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가, 하고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요. 


20대 후반에 접어든 그녀는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자신을 옭아매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는 농가에서 도망치기로 한 것이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실패하면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냅니다. 이대로 사느니 차라리 모험을 하겠다고 결정했지요. 그렇게 27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20년이 넘도록 살았던 농장에서 탈출합니다.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이후 지하세계에서 노예해방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동료 노예들을 탈출시키는 일에 가담했지요.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고, 결국 70여 명의 노예를 구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북부군에 소속되어 요리사와 간호사, 정찰병, 스파이 등으로 활동하면서 700명이 넘은 노예들의 해방을 돕기도 했지요. 


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운동가이자 군인의 역할을 마감한 이후에는 여성의 선거권 확보를 위해 활동하게 됩니다. 한때 ‘노예들의 모세’라 불리었던 그녀의 이름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입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기준은 인간다움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이 여러분의 인간다움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면 그 고통을 꼭 피해야 합니다. 


도망치십시오. 돈을 얼마를 주든, 부모님이 뭐라 하든, 일단 도망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일단 도망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혼자 휴식을 취해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다녀와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의 조건이 만족되는 공간과 상황 속에 충분히 머무십시오. 


그렇게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천천히 점검하는 겁니다. 




인생의 길은 정말 다양합니다. 하나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하지요.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생에 정답은 없으나 최선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나름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최선의 길을 찾아 열심히 달립니다. 마치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질주하지요. 그러다 길이 막히면 몹시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최선의 길'은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마치 다른 길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지요. 그렇게 우리는 지금 걷는 길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니 도망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최선의 길도 여러 길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지 최선의 길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목표에 다다를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재정비의 시간 동안 그 길을 찾으면 됩니다. 조금 늦어질 수 있겠지만, 아예 걷기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조금 천천히 간다고 우리가 원하는 삶이 도망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하는 삶이란 것도 고정된 상태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요. 막상 도착하고 보니 예상과 다를 수도 있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목표를 설정하더라도 그 목표에 너무 목을 매지는 않는 것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유연해지면 삶의 길도 더욱 다양해지겠지요. 


최선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다양성은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인식하고 즐길 때 비로소 우리는 치열한 경쟁과 비교의 덫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다움을 갉아먹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도 조금은 덜 두렵게 느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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