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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틀 Dec 05. 2024

3장 복리로 받은 칭찬 스티커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찾아오고 불운은 준비하지 않았는데 현실을 만날 때 찾아온다." -엘리 골드렛


 첫아이를 임신했을 무렵 허름한 5층 빌라의 맨 꼭대기 층으로 분가하여 살림을 시작했다. 열네 평의 작은 빌라였는데 당연히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없었다.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면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의 가치를 증명해줄 ‘돈’을 벌고 싶었다.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강사라는 경력이 단절될까 불안하기도 했다. 혹시 올지 모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일 년 동안 접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첫아이를 낳고 50일쯤 흘렀다. 임신 전 잠깐 몸담고 있던 학원 여실장님께서 아이 출산 선물을 챙겨 오셨다. 어렵게 얻은 아기를 축복하기 위함도 있었으나 학원 소식을 전해주고 싶은 맘도 크셨던 모양이다. 실장님께선 능숙한 자세로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학원 소식을 전했다. 원장님께서 학원을 접으시고 근처에 ‘공부방’을 차리셨는데 오히려 유지비도 적게 들면서 월 오백만 원 정도의 안정된 수입이 발생한다는 이야기였다. ‘공부방’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가끔 나를 찾는 학부모가 있다고 언제쯤 학원계에 복귀할 것인지도 물으셨다.


[공부방은 학원과 같이 사교육업으로 분류되나 큰 차이점이 있다면 아파트와 같은 주거공간에서만 교습 허가가 나며 본인을 제외한 강사를 추가로 고용할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그 ‘공부방’이라는 걸 하고 싶어요. 실장님, 도와주세요.”


 매우 즉흥적이었으나 마치 오랫동안 찾던 걸 발견한 것처럼 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과외 문의하는 학생이 있으면 연결해주겠노라 약속하고 실장님은 돌아가셨다. 50일을 갓 넘긴 아기를 돌봐줄 사람부터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역시나 친정엄마였다. 일을 시작하고 싶노라고, 지금은 문의가 한 건도 없지만 잘 할 자신이 있으니 일하는 동안만 아기를 맡아달라 부탁드렸다. 엄마가 아기 봐주는 것이 결정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은행으로 달려가 적금 통장을 깨는 일이었다. ‘공부방’을 얻기 위한 보증금과 집기류 구매비, 엄마께 드릴 양육비가 필요했다. 엄마께 매달 수고비를 드리는 것으로 구두협약이 된 터라 수개월 안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도 안 될 것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육아 만랩인 엄마와 함께하며 실장님의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은 천국에 머무는 기분마저 들었다. 

불행의 주파수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공부하고 육아 인수인계 하며 일주일 정도 흘렀다. 실장님에게서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의 과외를 해달라는 거였는데, 학생에 대한 설명은 이러했다.


남학생으로 키가 180센티에 몸무게는 90킬로가 넘는 거구이며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탓에 학원에서 쫓겨난 전력이 있다.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의 느낌은 ‘생각보단 괜찮은데?’였다. 물론 과외 하는 한 시간 반 내내 끊임없이 움직였고 갑자기 바닥에 눕기도 했다. 한쪽 엉덩이를 들더니 우렁차게 방귀도 뀌어댔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에서 악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조심해야 할 행동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가르쳐주면 그만이었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는 학생이었다. 특별히 무엇을 더 가르칠 게 없었다. 우려와는 다르게 순하고 명석한 아이였다.      


 어느 날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예전에 다녔던 학원에서의 일을 들었어. 수업 시간에 창밖을 갑자기 왜 본 거야? 선생님은 네가 수업에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 너만 가르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네가 창밖을 내다보면 다른 애들도 그래도 되나보다 생각할 수 있어. 단체활동이라는 게 그래. 한 사람에게 허용하면 그게 모두에게로 확대되거든.”


 “창밖에 거미가 줄을 치고 있었어요. 바람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부니까 거미줄이 안으로 들어오잖아요. 그때 쌤이 칠판에 뭐를 적고 있었는데 거미줄이 쌤 등에 붙을 거 같아서. 예전에 쌤이 세상에서 벌레가 제일 무섭다 했었어요. 그래서 거미줄을 불어서 날려버리려고 그랬어요.”


 “억울했겠다. 그래도 선생님은 그런 일이 없었다면 너랑 나랑 못 만났을 거잖아. 오히려 고마운데? 선생님은 올해의 행운을 모두 다 쓴 기분이야. 너를 만나서.”


 그랬다. 그해의 모든 행운은 이 아이를 만나고 나서 시작되었다. 아이는 과외 한 달 차에 만점이라는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아왔다. 놀랍지는 않았다. 이미 그만한 실력을 갖춘 학생이었다. 산만한 아이라는 주변의 평판에 주눅이 들었던 어머니는 ‘나’의 강력한 홍보대사를 자처하셨다.      

 

 과외 한 달 차 여섯 명으로 불어난 학생들을 데리고 공부방을 차렸다. 나의 첫 학생은 개업 선물이라며 천 원짜리 가나 초콜릿을 사 왔는데 돈이 없어 한 개밖에 못 사 왔으니 나눠 먹자며 배시시 웃었다. 열세 평짜리 아파트엔 작은 냉장고 한 개, 책걸상 여섯 쌍, 화이트 보트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아이는 너무 멋진 곳이라며 축하해 주었다. 정확하게 반으로 나눈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조촐한 개업식을 마쳤다.


 공부방을 개원하면서 간절히 바랐던 건 당연하게도 학생 수 증가였다. 그런데 막연한 상상은 넓게 뻗어가지 못하고 막혀버렸다. 잠들기 전, “내일은 신입생이 들어오게 해주세요.” 빌면서 공부방이 학생들로 가득한 상상을 해보려 했지만 이내 코를 골고 잠들었다. 상상은 하기 싫은 숙제가 됐다. 책에선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미래가 아닌, 현재형의 문장으로 기록하라는데 빈 종이를 앞에 두면 밀린 독후감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감쪽같이 속임으로써 뇌가 그렇게 착각하도록 만들라고도 했다. 말이 쉽지 어떻게 뇌를 속인단 말인가.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상상을 하며 뇌를 속여보려 할수록 꿈꾸는 미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상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인 나부터 지독하게 공부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문구점에 들러 무제 노트를 열 권 샀다. 연필도 열 자루 샀다. 

 연필 끝을 칼로 도려내고 오늘 날짜를 썼다.

 무제 노트 맨 앞에는 원하는 바를 큼지막하게 적었다.

 주로 이런 식이었다.      


나는 매우 성실하고 능력 있는 선생이다.
나와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좋은 성적을 얻고 있다.
내가 실력이 좋다는 소문을 들은 학부모의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
하루하루 상담예약으로 정신이 없다.
그래도 감사할 일이다.
시크릿 뿅뿅.       


 학생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상황을 자연스레 상상하기 위해선 마땅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렇게 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확신도 필요했다. 그 확신을 위해선 성실해져야 했다. 당시 ‘공부하는 선생이어야 학생도 공부한다.’라는 신념이 있었는데 매일 공부한다는 증거로 무제 노트를 다 쓰면 번호 붙여 보관했다. 예를 들어, 공부한 노트가 열 권 쌓이면 학생 한 명이 추가된다. 라는 식이었다. 연필도 마찬가지였다. 연필이 닳을수록 선생의 실력은 늘 것이고 그 실력에 비례하여 학생은 들어온다고 프로그래밍했다. 다행인 건 노트가 몇십 권을 넘고 몽당연필이 산을 이루는 것과 정확하게 비례하여 상담 전화를 받느라 바빠졌다는 거다.


 그 후 노트에 썼던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 ‘상담예약’ 대신 더욱 확정의 단어를 썼다. 신입생 폭발적 증가. 그러다 또다시 수정했다. 신입생이 들어오는 족족 기존 학생이 나가면 안 될 노릇 아닌가. 그래서 최종 ‘공부방 전체 학원생의 증가’로 바꿨다. 열심히 한 만큼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했고 그제야 상상에도 힘이 실렸다.


신에게 칭찬스티커를 무더기로 받은 것 같았다.


*행운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는 걸까?

그렇다면 우연히 그것이 내 귀 옆을 빠르게 스쳐도 우연일 뿐이었으니 아쉬움은 접어두고

또다른 우연한 행운을 기다리면 될까. 

    

우리는 운이 좋아서 기회를 만나는 걸까? 아니면 기회 때문에 행운을 얻는 걸까?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다. 물론 내 답은 본문에 나와 있지만.

공부방 운영 초창기 일 년간 공부하며 모아둔 몽당 연필을 오랜만에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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