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을 민감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까. 물론 반으로 쪼개듯 딱 나눠 지지야 않겠지만 나는 양쪽 두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똑같은 강도로 좋아한다. 민감한 사람은 둔감하지 않아서, 둔감한 사람은 민감하지 않아서 각각의 이유로 좋다. 근데 문제는, 또 같은 이유로 두쪽 다 싫기도 하다는 것.
이건 내가 변덕스러워서라기 보단 세상 모든 것이 양면적이라서다. 하나의 퀄리티는 사실 정반대의 두 가지 퀄리티를 함께 품고 있다. 예컨대 친절함이라는 재능은 배려와 존중의 제스처로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친절은 그 자체로 부담스럽고 보답해야 할 것만 같은 인상을 주니까.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들은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마냥 좋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호불호의 표현을 단정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유의한다. 누군가 확실한 의견을 묻지 않는 이상, 너무 쉽게 무언가를 싫다 좋다 밝힐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한 트위터리안이 촌철살인했듯, 의견이란 똥꼬 같은 것이라서 누구나 가지고 있고 우리는 서로의 똥꼬가 궁금하지 않다.
다시 민감과 둔감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민감함을 잘 발휘해서 ‘알잘딱깔센’이 된 사람을 종종 만난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는 사람. 일도 노는 것도 막힘없이 잘 해내니 웬만해선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퀄리티다. 일일이 알려주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뭔가를 잘 해내는 능력은 대단히 대단한(나는 이렇게 연속해서 말하며 대단함을 강조하고 싶다)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있을 때, 모든 것이 척척 진행되고 수월해지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전율한다.
이해력도 응용력도 뛰어나니 어딜 가서 무얼 하든, 누구와 어울리든 금세 자기 자리를 잡는다. 쭈뼛쭈뼛 가장자리를 맴도는 법이 없다. 아마 그래서 실증도 쉽게 낼 테다. 다 해봤고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대략 눈치 껐만 해도 중간은 가는 사람들.
때론 그런 센스가 그 사람들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자꾸만 넘겨짚고 흘려듣는 건, 눈치가 빠르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영특한 인간의 숙명이다. 몇 마디 말로 듣고 이해하고 약간의 체험을 했다고 해서 어떤 걸 제대로 경험했다고 할 순 없다. 사실 완전한 경험이라는 것은 되려 쭈뼛거림에서 시작되는 것. 그래서 뭐든 스무스하게 쉽게 해내는 건 한편으론 저주다. 어떤 경험을 다소 쩔쩔 매더라도 꼭꼭 씹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타이밍을 박탈당한 것이니까. 알잘딱깔센이라는 재능은 그렇게 불능으로 추락한다.
한 사람의 재능이라는 것. 장점과 강점이라는 것. 그중에서도 돈이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권력이나 명예를 가져다주는 것들에 대해서도.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사업가가 되고, 창작가가 되고, 운동선수가 되고, 연예인이 되도록 받쳐주는 능력들. 사람들이 그런 재능들로 큰돈을 벌어먹고사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값을 매길 수 있는 것이 되고 ‘돈이 되는 것’들은 결국 돈이 되니까. 그 재능들이 나라 경제에, 사회 전반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것들이 돈을 위해서만 이용되고 소비되고 소진되니까 세상이 천박해지는 것이다. 돈이 되니까 하고, 돈이 많으니까 사고, 그럴 ‘능력’이 되니까 하고 (돈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쓸데없는 짓을 참 많이 한다). 만연한 능력주의의 온상들. 구토를 유발하는 방종한 인간들이 거기에서 탄생한다. 그럼 그들의 재능이란 것이 결국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의 명석함, 창의력, 인내력 같은 것들이 이제 반짝이는 달란트가 아니라 냄새나는 피 주머니로 전락한다. 돈이라는 흡혈귀에게 쪽쪽 빨리고 탕진되는 피 주머니.
어쩔 수가 없다. 무엇이 어쩔 수가 없느냐면, 세상이 돈을 좇고 돈 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고 사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재능이 돈이 되고 피 주머니가 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지겨워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일로 마냥 누군가를 비난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가 “너는 그렇게 못 버니까, 능력 없으니까, 배알이 꼴려서 괜히 그러는 거 아니냐”하는 소리도 지겹게 들었으니 일상에서 구태여 그런 문제를 꼬집고 들지도 않는다. 다만 그렇게 돈을 위해 재능을 탕진하는 이들을, 나는 속으로 조금 업신여기게 됐다. 다른 건 몰라도 졸라 멋이 없으니까.
그에 반해 내가 추앙하는 이들은 자기가 가진 재능을 삶을 사는 데에 쓰는 이들이다. 거기에는 돈이 되는 일들도 포함되겠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닌 듯싶다. 재능을 재능으로 쓰고, 착실히 갈고닦는 사람들. 축제를 벌이듯 자기 재능으로 놀고먹고 마실 줄 아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참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자기 뜻을 펼칠 줄 아는 것이니까. 세상의 잣대와 상관없이 말이다.
비싸고 좋은 옷들로 치장한 사람도 그런대로 멋있을 수 있겠다만 옷을 다려 입고 고쳐 입는 사람들보다 멋있을 순 없다. 옷을 대하는 단정하고 다정한 손길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옷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런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재능을 귀하게 쓰는 사람들에게 경탄하는 일이 있고 나면 그 밖의 사람들은 다 시시해 보인다. 제아무리 대단하고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도 예외가 없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는 그 누구의 앞에서도 주눅 들 필요가 없다. 그 이유가 돈이라면 더더욱.
도무지 셈에 능할 것 같지 않고 여기저기서 손해 보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무르디 무른 사람도 사업을 하더랬다. 철저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은 좋아서인지 주변인들이 다 달라붙어 그가 하는 일을 도왔다. 부족하니까, 근데 자기가 부족한 것에 부끄러움이 없고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니까, 그리고 도움을 받고 나서는 꼭꼭 제대로 고마움의 표현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인복도 생기는 거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런 게 재능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무능력이 능력으로서 역전을 이루는 순간. 결핍 됐기 때문에 채워지는 것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 나 스스로도 그런 역전을, 전회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고 싶고.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좋아서 하는 아이처럼. 이렇게나 양면적이고도 잘 변질되며 무너지기 쉬운 재능이라는 것을 우리는 문자 그대로 열심히 갈고닦아야만 한다. 타고나거나 살면서 얻어지는 자질을, 무기를 잘 쓰고 또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 천박해지지 않으려면. 시시해지지 않으려면.
그제는 단체 회식 자리에서 좋은 직장에 키도 훤칠한 이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가 돈을 잘 버는데 키도 크다는 건 세상을 다 가진 것과 진배없다.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닌 그가 수다스러워지던 때는 자기 아내 자랑, 자식 자랑을 할 때뿐이었다. 그조차도 아내가 자기보다 7살이 어리다는 둥, 자기 아들이 또래보다 키가 크고 외모가 출중해서 키즈 모델을 시키고 싶다는 둥, 자기는 가부장적이라서 다른 건 다 해도 부엌일은 절대 안 한다는 둥, 하던 대화의 맥락과 관계없이 뱉고 보는 말들. 하고 싶으니까, 할 수 있으니까 입으로 싸는 똥들. 아, 뻔하다 뻔해. 그럼 난 또 짜게 식는 것이다. 왜 다 가지고서도 저렇게 밖에 못 사느냔 말이다(그가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빠, 훌륭한 사회인 일 수는 있겠으나 멋있는 사람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가 자기 스마트폰에 저장된 아들 사진을 한참을 자랑하는 동안 나는 하품을 참느라 혼났다. 애는 귀여웠다만.
어제는 친구와 테이블 네다섯 개 정도의 동네 호프집엘 갔다. 근사하진 않지만 정감 가고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는 치킨집이었다. 그곳의 단골인 친구가, 호프집 사장님이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종종 함께 정치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우리 테이블에 양배추 샐러드와 치킨 무, 앞접시, 한 사람당 포크 2개를 놔주시는 사장님의 손길을 구경했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정말로 구경을 했다. 일사불란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몸짓. 식기들은 차렷 한 군인들처럼 자기 자리에 섰다. 그의 상차림을 구경하고선 그의 차림을 구경했다. 구레나룻과 뒷머리는 착 붙어 잘 정리돼 있었고, 가르마는 반듯했다. 게다가 하얀 셔츠에 양복바지, 검정 구두. 치킨집 사장님이라기에 너무 잘 갖춰 입은. 그게 참 좋아 보였다. 나는 그가 정치 얘기를 하기 좋아하고 민주당원이라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어떤 남편이고 어떤 아빠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가 그런 치킨집 사장님인 게 좋았다. 무얼 하든 자기 뜻에 맞게, 자기 스타일 대로 해내는 사람. 멋지지 않은가?
앞의 두 사람을 관찰하고 이러쿵저러쿵 떠들다 보니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시시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지도 않은 사람이고 싶은데. 재미도 좀 있었으면 싶고, 겸손한 태도는 기본이고, 열정은 있되 자제할 줄 알며, 자기는 성실해도 남을 닦달하지는 않아야 하고, 솔직하되 노골적이진 않아야 하고, 항시 주변 정리정돈을 잘하고, 나름의 확고한 취향도 있고, 음 그리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