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이 말을 떼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그럴듯하게 내뱉는 단어는 아무래도 ‘엄마’ ‘아빠’ 이려나. ‘맘마’ ‘까까’ ‘아니’ 같은 말들이려나. 키워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 작고 연한 입술에 힘을 빡 주고 어렵사리 ‘(음)마’ ‘(읍)빠’ 하는 아기들을 본 적이 있다. 다 자란 인간들이 내는 소리와 입술의 모양을 유심히 듣고, 보고, 흉내 내려 애쓰는 모습. 기특한 모습.
나는 무얼 먼저 내뱉었을까. 무얼 호명했을까. 엄마였을까, 아빠였을까, 맘마, 까까, 아니였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처음 내뱉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한 때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마트에서였나. 장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나. 엄마는 내게,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고 나는 그날부터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되물음도 의심도 없이. 그러니까 아빠가 아직 아빠가 아니던 시절에. 네 살 인생에 들이닥친 낯선 남자 어른에 불과하던 시절에.
그렇게 아버지가 됐다. 내가 아빠라고 부르니 아빠는 내게 와 아빠가 되었다. 관계는 호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어린 나는 알았을까? 알아서, 아빠를 아빠라 부르는 것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였을까? 그저 생존본능에 가까운 것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눈치가 빠른 아이였음은 틀림없다. 혹은 그때가 눈치를 탑재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아빠는 아빠. 한참을 요란하게 싸우고 미워하고 차갑게 돌아섰을 때에도 내게 아빠는 아빠였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별로 아빠다웠던 적이 없다. 고백하건대 아빠는 유년시절 내내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다. 아빠는 좀처럼 내가 ‘나’ 이도록 놔두지 않았다. 사사건건 지적하고 문제 삼았다. 벌도 받고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그럴 때면 아빠는 내게 꼭 반성문을 쓰게 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사기도 당해본 탓일까, 아빠는 뭐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익숙했고 아빠 딸인 나에게까지 매번 확실한 내용증명을 요구했다.
반성문: 저는 이러이러한 잘못을 했습니다. 다시는 이러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0000년 00월 00일 누구누구.
사인도 했다. 다 쓰고 나면 꼭 소리 내서 읽으라고도 했다. 나중에 비슷한 잘못을 하면 반성문을 꺼내와 내 얼굴에 들이밀며 다시 소리 내서 읽으라고 했다. 읽고 나면 새로운 A4 종이과 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러기로 약속했는데 왜 그 약속을 어겼는지, 또 이런 잘못을 저질렀을 시엔 어떡할 건지 등의 내용을 추가해서 다른 반성문을 써야 했다. 계약을 갱신하듯 반성에도 갱신이 필요했다. 꼼꼼히, 조목조목. 그렇게 반성문을 써댄 덕분일까. 나는 반성이 특기이자 취미인 사람이 됐다. 나름대로 좋은 일이다.
아빠는 자기 몸무게를 그람 단위로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아빠는 매일 하루에도 세네 번씩 체중계에 올라간다. 살을 좀 찌워야겠다 싶으면 찌우고, 빼야겠다 싶으면 딱 목표한 만큼 뺀다. 독하다. 약은 또 얼마나 잘 챙겨 먹는지. 어디에 좋다는 영양제는 종류별로 사서 꾸준히 먹는다. 꾸준히 먹으란 대로 먹었기 때문에 아빠는 어디 가서 그 영양제들의 효능 효과에 대해 논할 수 있다. 꽂히는 운동이 생기면 매일 한다. 실력이 늘지 않으면 코치를 붙잡고 늘어진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틈틈이 연습한다. 집요하다. 디스크에 걸렸을 때는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제일 실력 있다는 디스크 계의 명의를 골라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에는 그 명의가 하라는 대로 재활에 임했다. 이런 스트레칭을 하루에 몇 번 하세요- 같은, 까먹고 지나치고 어기기 쉬운 숙제들을 아빠는 곧이곧대로 따랐다. 하루에 네 번 하라면 네 번, 수시로 하라면 수시로 했다. 이제 아빠는 콜레스테롤까지 조절한다. 우리가 흔히 ‘혈당을 조절한다’고 할 때의 멀멀한 의미가 아니다. 아빠는 고지혈증을 진단받은 지 단 몇 개월 만에 먹는 걸로, 걷기 운동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의사를 놀라게 한다. 병원에서 이제 약 먹을 필요 없겠다고 했단다. 웬만한 의사들은 다 기특해하는, 고칠 맛 나는 환자다.
문제가 있으면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면 그만인 사람. 시간은 분 단위로, 몸무게는 그람 단위로 쪼개서 관리하는 사람. 중요한 건 꼭 기록으로 남겨두는 사람. 몸이 아플 땐 의사에게, 일이 꼬였을 땐 변호사에게, 운동 실력이 늘지 않을 땐 코치에게, 전문가들을 항상 곁에 두고 십분 활용하는 사람. 그들의 가이드는 따르되 판단은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하는 사람. 그렇게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똑 부러지고 꼼꼼하며, 무엇보다 성실한 사람. 얄짤없는 사람. 나는 아빠의 그런 점들을 아주 존경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의 딸로 사는 게, 솔직히 말해서 쉽지는 않았다. 어떠한 핑계나 변명도 통하질 않으니까. 덕분에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지만 다소 강박적이 된 것도 사실이다. 뭐, 모든 것은 양면적이니까 장단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학생 때였던가, 몸에 이런저런 변화들이 생기고 감정이 요동치는 시기에 막 접어들었을 무렵, 아빠는 “사춘기, 그런 거는 없어. 그런 건 (나한테) 안 통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춘기라고 예민하게 굴어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유언의 압박. 노골적인 가스라이팅. 지금 생각해도 진짜 웃기는 아빠다. 뭘 또 그렇게까지. 딸 키우는 아빠라고 해서 꼭 섬세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나에 대한 아빠의 애착은 딸을 둔 아빠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들 둔 아빠 같지도 않았고. 아무튼 좀 특이했달까. 사춘기 같은 건 없다고 윽박지를 만큼 무심하지만, 내 일정을 꿰뚫고 직접 성적을 관리할 만큼 아주 열정적이었으니까.
아침마다 내 방문을 뻥뻥 열고 들어와 궁댕이를 찰싹 때리며 깨우던 아빠. (보통, 딸은 이렇게 안 깨우지 않나?) 학교 정문까지, 학원 입구까지 차로 모시듯 했지만, 그렇게 통학 시간을 아낀 만큼 시간을 쪼개 써라- 성적을 더 잘 받아와라- 잔소리를 잊지 않던 아빠. (보통, 이런 건 엄마들이 도맡아 하지 않나?) 몰래 사귀던 남자친구와 길을 걷다가 마주쳤을 때 그 애 앞에서 들고 있던 서류 꾸러미로 주저 없이 내 머리통을 갈기던 아빠. (보통, 남자 애를 혼내지 않나?) 그때 아빠 손에 다른 무시무시한 게 들려 있었다면 난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내가 학원을 빼먹고 하루 종일 서점에 죽치고 앉아있었던 날, 혹시 그 남자애랑 놀러 가놓고 거짓말하는 건 아닌지 서점 CCTV까지 확인하던 아빠. (보통, 그런가 보다- 믿고 넘어가지 않나? 뭘 확인까지…) 보통이 아니다. 가히 딸 천재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금이야 옥이야 하는 딸 바보들이 찬양받는 세상에 딸 천재의 등장이라.
딸 인생은 아무래도 아빠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그것은 동서양을 불문한다. 여자 인생에서 이슈 중에 이슈는 역시 대디이슈 Daddy Issue가 아닌가. 딸에게 있어 아빠와의 정서적 유대는 사는 데 든든한 코어가 되어 준다. 그래서인지 가정적이고 상냥한 아빠를 둔 딸들은 테가 다르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남자를 만날 때,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등등의 상황에서 왠지 편안해 보이고 자연스럽달까. 든든히 믿는 구석이 있기에 웬만해선 자신감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다정한 아빠’라는 복을 타고난 여자친구들은 내게 언제나 질투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딸 천재의 딸인 것이 싫으냐고 물으면 또 그건 아니다. 얄짤없는 아빠와 싹수없는 딸의 조합도 나쁘지 않다. 다 크고 나니까 그렇다. 우리는 아무래도 아빠와 딸보다는 친구 같다. 나는 아빠가 가부장적으로 굴 때마다, 무례한 중년 남성처럼 굴 때마다 멋이 없다고 꼽을 주고 놀린다. 아빠는 주말 저녁마다 전화해서는 왜 남자랑 데이트하고 있지 않느냐고, 혹시 외모적으로 좀 밀리는 거 아니냐고 꼽을 주고 놀린다. 바빠서 연애가 어려우면 결혼 정보 회사에 등록해 줄 테니 말만 하란다. “아빠! 아빠 딸 몸에 타투 있어! 마이너스 50점이야~”
누가 봐도 나는 아빠 딸이다. 매사에 부지런을 떨고 대충 하는 법이 없으니까. 아빠의 꼼꼼하고 집요한 데를 나는 닮았다. 닮게 됐다. 얼른 결혼했으면 싶어하다가도 바쁘게 시간을 쪼개 사는 나를 보며 아빠는 무척이나 기특해한다. 아빠는 내가 하는 일 얘기, 만나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 웃는다. 흥미롭다는 식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웃는다. 얼마 전엔 그렇게 한참을 귀 기울여 듣더니 “그래서 네가 하는 일이 뭐라고?” 했다. 역시 딸 천재답다. “아빠!! 아빠 딸 카피라이터 5년 차야~ 이제 좀 알 때도 되지 않았냐고~” 다시 말하지만 아빠의 애착은 구조가 참 특이하다. 촘촘한 듯 벙벙한 그의 관심. 애정.
훌륭한 딸 천재의 슬하에서 십여 년을 살아낸 나다. 아빠와의 치열했던 주도권 싸움을, 그 지긋지긋했던 순간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이해나 공감 같은 것에 기대기보다는 나를, 나의 정당함을 증명하고 확인받으려 애쓰던 나날들. 많이 울고 외로웠던 어린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안쓰럽고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회해야 하는 숙제. 지난날의 나를 보듬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아는 대로 행하면 그만이다. 아빠한테 배운 대로 착실히 해나가면 될 일이다.
아빠의 통제를 벗어나려 인생의 반을 발버둥 쳤지만, 그렇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아빠와 친구가 되었다. 미워하다가 닮게 되었다. 세상에, 아니, 한국에 이런 가족 드라마가 있었던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누가 안 만들거든 내가 만들고 싶다. TV에서 누가 나와 이런 얘기를 했다. 부모가 친구 같으면 안 된다고, 친구는 밖에서 얼마든지 사귈 수 있지만 부모의 자리는 오직 부모만 채울 수 있으니 부모는 부모다워야 한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근데 부모답다는 게 뭔지는 끝없는 시련 속에 놓여있는 질문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줄지보다는 결국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은 이미 훌륭하고 알아서 잘 자랄 테니까. 부모는 자기대로 잘 사는 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선방한 거라고 생각한다. 구태여 뭐가 되려고 하다가 애를 망쳐 놓는 스토리는 이제 뻔하니까.
그렇다. 아이들은 이미 훌륭하고 알아서 잘 자랄 테다. 나만 봐도 그렇다. 나는 가끔 안 죽고 잘 자라준 내가 기특하고 예쁘다.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 어른으로 이런저런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것만으로 참 대견스럽다.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던, 철딱서니 없던 나와는 애저녁에 이별했다. 좋은 어른이 돼야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아빠가 내 궁댕이를 찰싹 때려 깨우던 아침처럼. 그럼 별 수 없다,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수밖에. “아빠, 미안~! 아빠 딸 열심히 사느라 남자 만날 시간이 없어~!!!”
그럼 딸 천재는 이렇게 말하리라. “딸아, 그 또한 너의 능력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