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어떤 강도로 얼마나 집요하게 싫어하는지에 대해 들으면 당신은 아마 놀랄 것이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다면 ‘나도 너 별로’ 하며 토라지려나. 싫은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면 좀 달리 느껴지려나. 쓰려고 보니 위축되는 마음. 어쩌겠나, 이미 써버린 걸.
내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히, 구체적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내게 하나, 당신들에게 하나.
내게 있는 하나는 내가 너무 쉽게 실망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들이 너무 쉽게 나를 실망시킨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기대를 저버렸는지 그 무참한 사건들을 하나씩 곱씹다 보면 인생이 꼭 실망의 연대기 같다. 한 사람을 제대로 싫어하고 나니, 세상엔 꼬투리 잡을 사람 천지다. 쟨 너무 말이 많아, 쟨 자기밖에 몰라, 쟨 기회주의자, 쟨 게을러, 쟨 허접해, 쟨, 그리고 쟨… 쏘아붙이는 눈에는 튀어나온 것만 보인다. 망치를 든 자에겐 못만 보이듯이. 나는 그렇게 당신들의 못난 부분만 골라 보고선 혼자 토라진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뭉뚱그려 싫어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면면히- 공들여 싫어한다. (이 악담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궁금해질 거다)
당신은 실격이라고.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그리고 때때로 인간으로서 실격이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내게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내 심경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받아내는 동안 얼마나 오래 멈춰있어야 했는지, 당신은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 울지 않게 되기까지 덤덤해지기까지, 내 선의를, 내 순수를 더럽히고 씻기는 일을 혼자서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했다는 것을, 당신은 말해줘도 모르리라. 증오로 꾹꾹 눌러쓴 지난날의 일기장은 펼쳐진 적이 없다. 읽는 것만으로도 아린 기억이 살갗에 묻어나니까.
어찌 됐든 이젠 울지 않게 되었고 그건 잘된 일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상처 줄 수 없다고, 주면 주는 대로 갚아줄 거라고 악에 받쳐 외치지 않고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있게 됐다. 상처받지 않고, 누가 상처 주면 착실히 갚아주면서. 기대했던 마음이 무너지더라도, 실망하더라도 그때그때 털어내니 남는 찌꺼기가 없다. 다만 잦은 빈도로 사람을 싫어하게 됐을 뿐이다. 혐오의 베네핏은 그것이다.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 퉁명스러워지는 것. 애착이 끊어지면 다른 감정들도 줄줄이 차단된다. 나의 이 퉁명스러운 혐오는 미필적 고의의 방어기제. 알레르기 같은 것. 더 큰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틈틈이 싫어하고 본다. 일단 싫은 것부터 눈에 잘 띄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다 보니 싫은 것도 생기고, 미워죽겠다가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람 아닌가.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 위에 싫어하는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 위에 좋아하는 마음이 덕지덕지 덧칠된 사람들이 곁을 이룬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에 서툴렀던 때에는 오히려 관계를 단칼에 끊어내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 싫어하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라 그런 기미가 보이면 바로바로 손절해 버리곤 했달까. 그것도 썩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계속 그렇게 살면 너무 외로울 테고, 그리 현명한 처사도 아니니까. 나이가 들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내겐 당신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했던 거다. 내가 부족하고 미완인 인간이듯 당신도 그러할 테니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할, 말 그대로의 극기훈련.
기억력이 나빠 다 까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이 한 나쁜 말들은 웬만해선 다 기억한다.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말들.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들. 가볍게 또는 지나치게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만 위하는 비겁한 말들. 부정적인 말들엔 특유의 톤이 깃들어서 아주 효과적으로 기억된다. 당신이 상사 욕을 한바탕 늘어놓고 내게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 할수록 내 마음은 당신의 상사를 두둔하게 되는 것 왜일까. 당신이 당신의 애인을 탓할수록, 당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것들에 대해 나열할수록 당신 애인이 안쓰럽게 여겨지는 것은 또 왜일까. 난 그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들보다 당신을 더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데. 당신이 가십에 대해 떠들 때, 유명인의 행실을 평가하고 꼭 한 마디씩 거들 때, 내가 당신의 논리적, 윤리적 흠결에 대해 쏘아붙이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무진장 애쓰고 있다는 걸 눈치채주면 좋으련만. 타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덧붙이는 말이 길어질수록, 자기는 아니라고 결백하다고, 묻지도 않은 말에 구태여 하는 변명처럼 들린다는 걸 알아차리면 좋으련만. 당신은 맞고 그들은 틀렸다는 확신에 찬 어조가, 내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바라는 눈빛이 나를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상처받은 채로 확신에 찬 사람들이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거북함이 있다. 너무 확신하니 좀 얄밉달까. 그럴 때에도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요즘이다.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는 노력. 그래야 미움받지 않는다고 배웠다. 내겐 남몰래 당신을 싫어할 용기는 있어도 대놓고 미움받을 용기는 없다.
그 외에도 내가 실망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당신이 약속 시간에 자꾸 늦을 때, 필요할 때만 연락할 때, 어딜 가서 뭘 먹을지와 같은 작은 수고가 필요한 결정들을 남들에게만 미룰 때, 그러곤 고마운 줄 모를 때, 자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 은근히 아랫사람을 부릴 때, 은근히 모든 걸 애교로 퉁칠 때, 실수한 걸 알고도 사과하지 않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빼먹지 않고 당신이 참 싫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때때로 하는 사소한 실수들. 근데 꼭 한 번 저지른 사람이 두 번, 세 번 저지르고야 만다. 그럼 이제부턴 실수가 아니라 '존중 없음'의 문제다. 괘씸한 마음이 들면 거슬리기 시작한다. 난 당신이 참 별로라고, 이런 점에서 정말 싫다고 생각하지만 미워하기는 더 싫다. 그럼 나만 괴로워지니까.
그래서 잘 기억해두고 있다가 나름대로 갚아준다. 노골적이지 않게, 알아채지 못하게. 나 혼자서 하는 미미한 복수다. 어떻게 해내는지 구체적인 건 적지 않겠다. 이건 들켜선 안 되는 영업비밀이다. 작은 복수를 게을리하지 않고 그때그때 해내면 괜히 혼자 꽁해져 당신을 미워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 좋다. 나름의 재미가 있기도 하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도 당신을, 당신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몇 번이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결같이 불성실하고 염치없고 자기 연민으로 꽉 들어찬 만행이 계속될 땐 그제야 그 사람을 끊어낸다. 그래도 좋다고, 끝까지 애쓴 나 자신에게 마침내 손절을 허락한다. 요란을 떨 것도 없이 서서히 멀어지면 그만이다. 그 사람에게도 그런 편이 낫다. 굳이 두 사람 이상의 시간을 써가며 못난 꼴을 보이게 둘 필요 없으니 내 딴엔 마지막 배려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잘못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 잘 살아갈 거다. 곁에 두고 보고 싶진 않을 뿐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게 죄는 아니지 않나(사.싫.죄.아). 싫으면서 좋은 척하는 게 더 견디기 어렵다. 어쩌면 당신의 싫은 부분을 잘 들여다보는 게 내가 당신을 잘 좋아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니래도, 억지래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내 마음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듯 당신 마음에도 거슬리는 나의 나쁜 버릇이 있을 테다. 당신도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견뎌주고 있을 테다. 그리고 언젠가, 서로 모든 걸 다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더 잘했네 잘못했네, 잘났네 못났네 따져보는 건 그때 가서 해보도록 하자. 아이들을 방청객으로 앉혀놓고 시트콤처럼.
별안간 당신이 싫다는 소리만 왕창 들었으니 당혹스럽고 불쾌할 수도 있겠다. 내가 조금은 싫어졌을 수도 있고. 그래도 끝까지 읽어준 걸 보니 손절은 면한 듯하다. 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