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분 안에 5km를 뛰어야 한다. 걷는 건 안 된다. 쉬지 않고 쭉 달려야 한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어디서 좋다고 들은 것도 아니지만 내가 그러기로 했다. 살기 위해서다. 장시간 앉아 일하고 바쁠 땐 밥도 앉아서, 잠도 앉아서. 다리보다 머리랑 손가락을 더 많이 쓰는 글쟁이는 24시간/7일 쉴 틈 없는 뇌의 열기를 꺼뜨릴 다른 에너지 시스템 가동이 필요하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관계로 단시간에 심장을 펌핑하고 땀을 쫙 뺄 수 있도록 내가 임의로 설정한 기준이다.
10km/h 한 시간에 10km를 가는 속도
삼십 분이면 5km를 가는 속도
발목을 잘 풀어주고 러닝머신 위에 선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속도를 10km/h로 설정한다.
30분을 10개의 Stage [3분/ 6분/ 9분/ 12분/ 15분/ 18분/ 21분/ 24분/ 27분/ 30분]로 단계를 나눠 생각한다.
일단 첫 Stage를 뛰자는 생각으로 3분을 뛴다. 큰일 났다. 힘들다. 벌써 내리고 싶다.
두 번째 Stage, 머신 위 1초씩 정직하게 흐르는 숫자를 보지 않으려 애쓰며 6분까지 뛴다. 슬쩍 봤는데 7분이라면? 개이득.
12분까지는 어찌어찌 뛰어진다. 이때부터 온갖 번뇌가 시작된다. 나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오늘은 그냥 걸을까? 하지만 안 된다 15분까지는 좀 참아보자. 숨은 꼭 코로 쉬도록 유의한다. 입은 벌리지 않는 편이 좋다.
18분에 가까워지면 10개의 단계는 모르겠고, 왜 아직도 20분이 넘지 않은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난 이렇게 숨이 차고 정신이 혼미한데. 그때쯤 뛴 거리를 보면 3km 언저리다. 속도를 살짝 올리고 일단 4km까지만 뛰어 보자 결심한다. 모든 걸 정각에 시작해야 직성이 풀리는, 미루기 대마왕의 ‘정각병’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본다. ‘포기할 때 하더라도 4km는 채우자!’
4km다. 시간을 보니 23분쯤 지나고 있다. 상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들숨과 날숨의 박자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노력한다. 정말 괴롭지만 이만큼 온 나 자신이 대견하다. 이쯤 되니 포기할 명분이 없다. 23분을 뛰었는데 7분을 못 뛰랴. 27분에서 28분. 이때가 내겐 진짜 나와의 싸움이다. 곧 끝난다는 안도감이 나를 살살 달래기도 하지만, 땀은 눈이랑 입에 주룩주룩 흘러 정신이 없고, 발목은 아프고, 심장박동은 관자놀이에까지 울리고, 폐는 찢어질 것 같다.
우스운 건, 그렇게 30분이 넘어가고 5km가 넘어가면 더 뛸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그게 진짜 어이없는 부분이다. 3분 뛸 때 이미 포기할까 싶었으면서 다 해내고 나니 더 할 수 있단다. 3분, 6분, … , 24분, 27분의 내가 30분의 나를 만든 거다. 좀 더 달릴 수 있을 만큼 강해진 나를. 감격스럽다. 오늘 30분을 잘 뛰었다고 내일은 좀 쉬워지거나 하면 좋으련만 매번 힘들다. 매분매초 나와의 전투는 언제나 치열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30분이 넘으면 만나게 될 나를 알고 있다는 거다. 30분을 달리고도 또 달릴 수 있다고 하는 나. 만나봤으니까. 믿을 건 나뿐이다. 나를 믿어주는 것도 나뿐이고. 그런 믿음은 웬만한 트레이너보다 강인하게 나를 이끌어주고 달래준다. 그리고 그건 오직 꾸준한 실천으로만 만날 수 있다. 운동의 의의는 체력 증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나를 믿는 힘을 기르는 일이며, 사는데 아주 필수적인 활동이다.
몸이 찌뿌둥하세요? 운동을 해보세요.
잡생각이 많다고요? 운동을 해보세요.
잠이 잘 안 오세요? 운동을 해보세요.
우울하세요? 운동을 해보세요.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받으세요? 운동을 해보세요.
피부가 거칠거칠하다고요? 땀나는 운동을 해보세요.
세상 일이 다 내 맘 같지 않지요? 운동을 해보세요.
운동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마음에 엥꼬 불이 들어왔을 때는 운동화를 신는 것에서부터 힘이 부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엔 운동만 한 것이 없다는 걸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혼자 하는 운동이든 같이 하는 운동이든, 결국 모든 운동은 나와 적극적으로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니까. 뭔가 변화가 필요한 당신, 운동을 시작해 보라. 단, 얼마간은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성실하게.
꾸준히 성실하게 한 것만이 내 것이 된다. 운동도 그렇다. ‘체득’이라는 말 그대로 몸에 익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내게 꼭 맞는 운동은 없다. 내게 꼭 맞는 사람이 없듯이. 맞고 안 맞고는 여러 시도를 해본 뒤 판단해도 늦지 않다. 스포츠는 실패와 한계에 맞서는 훈련. 처음부터 수월하고 재밌기만 하다면 스포츠로선 탈락이다. 그건 놀이에 가깝다. 스스로를 좌절시키고 의심하게 하는, 그럼에도 끈질기게 시도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이 스포츠가 가져야 하는 덕목이다.
부상의 위험 때문에 관두는 것이 아니라 부상을 예방하는 쪽으로 몸을 단련해야 한다. 곁에 코치가 있다면 그의 말에 귀 기울이되 계속적인 연습으로 내게 더 맞는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몸의 감각을 의식하며 지침을 따를 때 부상을 줄이면서 운동과 친해질 수 있다. 그렇게 체득해 내는 것이다. 이거 맞나? 다 의심하고 의식하면서.
폼Form과 리듬Rythm. 모든 운동에는 나름의 폼과 리듬이 있다.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직 익지 않았을 땐 잘하는 선수나 코치의 폼과 리듬을 따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들의 능숙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따라 해보기. 내가 겪는 어려움들을 이미 다 거치고 훌륭히 극복해 낸 결과물이기에 겉모양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익힐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테크닉Technique. 정교화의 시간이다. 몸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 어느 정도 가늠을 할 줄 알게 되면, 여러 기술들을 맛보는 또 다른 탐구가 시작된다. 스포츠마다 다르겠지만 장비빨을 세우는 것이 즐거워지는 때이기도 하다. 더 잘 해내기 위해서, 기록을 만들기 위해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의식하고 또 의식한다. 그럼 몸에 익었던 폼과 리듬이 무너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고장 난 장난감처럼, 이전엔 어떻게 했었는지 다시금 헷갈리고 실력은 정체된 것 같은 슬럼프 단계. 열심히 한 사람들에게만 찾아드는 삐걱거림. 좋은 시그널이다. 좌절할 필요 없다. 몸은 머리보다 영리해서 그간의 훈련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 거다. 의식이 무의식을 깨우고, 무의식이 의식에 협조적이 어지는 날이 올 때까지 촘촘히, 몸에 기억을 세기는 거다.
내가 원하고, 내 몸에도 맞는 폼과 리듬으로 여러 테크닉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유자재의 단계, 동물적인 감각과 지적인 고민이 골고루 잘 섞일 때의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값지다. 물론 아주 쉬워지는 때는 잘 오지 않는다. 쉽게 하려는 게 운동의 목적도 아닐뿐더러. 실패를 거듭하면서, 변화를 온몸 세포 하나 하나로 느끼면서, 가끔의 성취를 달게 맛보면서 하나의 스포츠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꾸준한 시도와 조율을 통해서.
내게는 그런 스포츠가 요가였고, 요즘에는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볼 요량으로 러닝 머신 위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는 중이다. 매번 힘들고, 포기하고 싶고, 아무래도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고, 매 순간 불편한 고통을 맞닥뜨리지만 언제나 보상의 시간은 온다. 더디게라도 온다. 운동으로 단단하고 쫀쫀해지는 건 근육뿐만이 아니다. 스스로와의 관계 역시 단단하고 쫀쫀해진다. 나의 유약함부터 강인함까지 속속들이, 허물없이 이해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동고동락하며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거다.
‘어려운 길로 가라. 그게 가장 빠른 길이다’ 추성훈의 아버지가 추성훈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삶을 대충 봐도 아버지 말씀대로 잘 산 것 같다.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맞서면서. 그래서인지 그는 매사에 거침이 없다. 거리낌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자기가 자기인 것에 거리낌이 없이 편안한 사람. 그래서 맘껏 유쾌할 수 있는 사람.
훌륭한 운동선수들이 풍기는 그러한 의연함과 여유로움은 그들이 세운 어떤 기록보다도 큰 귀감이 된다. 그런 여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부서지고 깨지면서 길어 올린 승리는 왠지 겸손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배워야 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기록을 깨고 남을 이기는 데 혈안이 되기보단,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고쳐가면서 매일의 작은 승리를 이끌어내는 긍지 같은 것. 종국엔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것. 단단하고 쫀쫀해진 근육으로 말이다.
운동은 나랑 하는 화해. 나에게 건네는 신뢰의 제스처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비겁해지는 때에도 훌륭하고, 강인하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불어넣는 용기다. 뭐든 시작하기 좋은 계절, 원래 하던 혹은 새로운 운동으로 자기와 더욱 친해져 보시길. 각자에게 꼭 맞는 폼과 리듬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뽐내봐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