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추천 있음)
소유냐 존재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어느 쪽이냐 묻거든 둘 다라고 답하리라. 제대로 소유하기도 존재하기도 어려운, 청년은 청년이라서 괴로워 죽고 노인은 노인이라서 힘에 부쳐 죽는 작금의 세태에 감히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 보리라. 행복은 소유와 존재 사이를 자유자재로 거닐 줄 아는 능력에서 오는 것이라고, 오직 그 자유를 통해서야 제대로 인생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천명하듯 말하리라. 사이비 교리처럼, 약장수의 속임수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모든 확신에 찬 말들은 언제까지나 믿거나 말거나이니 모쪼록 가려듣길 바란다.
인생의 행복이 소유와 존재 사이를 자유로이 거닐 줄 아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면 일단 잘 소유하고 잘 존재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리라. 잘 소유하고, 잘 존재하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무얼 원하고 좋아하는가. 그것을 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늘어난 기대수명으로 인해 80~100년가량의 넉넉한 시간이 있다. 그 넘치는 시간 동안에 찾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다음엔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원하는 대로 존재하면 된다. 그럼 끝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언제나 문제를 단순화하고 획일화하는 말들 역시 주의하길 바란다. 끄덕임과 동시에 각종다양한 예외들과 ‘단,…’으로 시작하는 조건들이 무수히, 끈질기게 따라붙을 테니까.
소유와 존재는 사실 연결된 것.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내 영혼의 부름대로 무언가를 원하고 그것을 가지면 그게 다시 내 영혼을 채우든 갉아먹든 할 테니까. 다시 말하자면,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욕망-소유-존재의 삼각형에서. 지겨운 줄 모르고 같은 놀이를 계속하는 아이처럼. 원하기-가지기-되기-원하기-가지기-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죽을 날이 올 거다. 지레 끝내려 들지 않아도.
가지기. 무얼 가질 것인가. 어떻게 가질 것인가. 진짜 가진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 보면 짜증은 좀 나도 우울이 깃들 틈이 없다. 정말 정말 바쁘고 부지런해져야 할 테니까. 내가 원하는 것의 내용을 얼추 알았다면 그때부터는 하루하루가 연습의 시간이다.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을 Dreams come true의 시간으로 채우는, 자기 확신과 성실성이 빛을 발하는 때다. 그렇게 만나게 될 성취는 쇼핑하듯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을 구매함으로써 단박에 얻어지는 일회용의 기쁨과는 다르다. 쫀쫀하고 묵직한 기쁨. 매일이 기회고 연습이다. 인생은 실전이라고들 말하지만 그렇다기엔 우리의 매일이, 그렇게 매일매일 거창하진 않다. 그냥 연습하듯 사는 거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날이 올 때까지.
남의 불행까지 시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역경을 딛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만한 성공을 이룬 이들을 가리키면서, 자기의 안온한 삶을 탓했다. 특출 나게(?) 가난하지도 않고 주변에 이렇다 할 만큼 괴롭히는 사람도 없이 편안하기만 해서 뭔가를 딛고 일어날 계기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혼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겐 남의 불행까지도 한없이 부러운 것이 된다. 역시 인간은 어떤 지점에서 참 나약하구나. 하는 것에 비해 바라는 것의 내용이 길고 구차하다. 배부른 소리는 맞지만 그게 못난 것이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어떤 답답함이 서려있는 것인지 잘 알겠어서. 하지만 그 역시 뚫고 나와야 하는 숙제다. 주어진 것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알뜰히 이용해 먹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아니, 그러니까 답은 이미 있는 것일지도. 그 답은 대단한 걸 이룬 사람을 부러워하는 힘으로부터 도출되기도 하니까 맘껏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동안은 끈질기게 자기를 믿어주는 수밖엔 없다. 아무래도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짤이 극약처방이리라.
왜 이렇게 교조적인 이야기만 한바탕 하고 말았을까. 사람들은 이런 얘기 싫어하는데. 잘 알면서도 이번 글은 이렇게 돼버렸다. 아무래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인 것 같다. 못살겠다는 사람에게도, 정말 못살고 죽어버리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에게도 질려버려서. 걱정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다가 이젠 다 지겨워져 버려서. '그냥 쉬었음' 청년이 50만을 육박하는 시대다. 그저 쉬기만 하지 않았겠지만 서도, 그럴 수밖에 없이 만드는 현실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는 동안 꼭 행복해야 하나? 그렇진 않다고 본다. 못살겠어서 죽는 것도, 정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괴로운 일을 맞닥뜨리고 그 안에 천착하다 보면 세상이 작아지고,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으니까. 나는 누구도 구할 수 없고 오직 나만 구할 수 있을 뿐이니까. 나는 그저, 내가 나를 어떻게 구했는지 몇 자 적어볼 따름이다. 그마저도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별 일 없이 사는 것 같아도 다 저마다의 괴로움을 안고 살지 않나. 작은 일에 또는 시시한 사람에게 질질 끌려다니면서 아등바등, 이렇다 할 꿈도 고민도 없이 어영부영, 산다. 그러다가도 좀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얼마간 의욕적으로, 산다. 그렇게 살기만 하는 것도 대단히 피로한 일이지만, 우리 좀 더 자기에게 솔직해지도록 하자.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운동하는 수밖엔 없는 것처럼, 잘 살려면 자기에게 솔직해지는 수밖에 없다.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있나? 원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나? 시도는 해봤나? 최선이었나? 진짜로? 나는 이런 고민들까지도 즐거운 일이 됐으면 한다. 자기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고 실행하는 힘으로 작용했으면 한다. 그렇게 주체적으로 딱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면, 천날 만날도 살 수 있다. 진짜 원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잘 소유하고, 잘 존재하며 자유롭게.
<타키카와 미상지 이야기> 카페에서 글을 쓰다 화장실에 갔더니 이런 글이 붙어있었다. 이제껏 장황하게 늘어놓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한 페이지에 담은 정갈한 글. 정말로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몰입해서 살다 보면 고민 중인 문제의 답안지를 볼일을 보다가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은 해도 해도 여전히 기묘하고 놀랍다. 겹치는 단어와 표현들. 근데 내 문장보다 더 간결하고 나아 보여서 마음을 헤집어 놓는 질투심. 하지만 그마저도 좋다. 좋은 글은 가장 확실한 도파민이다. 아무튼. 썼던 글을 모조리 지우고 이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지만 수고한 나 자신을 생각해서라도 쓸데없이 엄격해지지 않기로 했다. 오늘, 이 쓰기의 경험 또한 수많은 날의 연습 중 하나이니까. 대신 훈련의 차원에서 한 자 한 자 타이핑해 공유하려고 한다. 드르륵 긁어 복사 Ctrl+C 붙여 넣기 Ctrl+V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타키카와 미상지 이야기 - 타키카와 미상지>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나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스스로에게 방해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에게 원하는 일을 취미로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원치 않는 것에는 열심히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성실하고 보편적인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무어라고 속삭이든 무시하고서 저는 저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건강이 무너졌을 때, 그간 억지를 부리며 살아온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저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새 이름을 짓자. 다른 이름을 지으면 과거의 나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 저는 저에게 ‘미상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름을 새로 짓는 것은 여벌의 옷을 사는 일처럼 쉬웠으나 그 이상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만들기 시작했던 무언가를 더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처음 하는 창작이었습니다. 새 이름을 가지자 손이 날아다녔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두 손을 빌려 무언가를 무작정 계속 만들었습니다. 자신에게 협조하였습니다. 종이를 오리고 합하고 붙였습니다. 다 만들고도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좋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만든 것이야. 이걸 만들 때 나는 진짜야. 얼마나 좋았던지 겨드랑이가 간지러웠습니다. 저는 그것이 기뻐서 날개가 돋으려 했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만큼 기뻤습니다. 만든 것들을 가지고 마켓이란 곳에 나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제가 만든 것과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저는 ‘미상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곳을 찾아온 지인이 말했습니다. ‘네 얼굴에서 본 적 없는 빛이 나.’ 얼굴의 빛은 우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빛은 이제는 없습니다. 겨드랑이의 날개도 끝내 돋아나지 않았습니다. 쓰고 그리는 일은 그날 이후로 쉬고 있습니다. 저는 일상을 애틋하게 사랑하지만 때론 그 사랑을 멈추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많으니까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저는 언제고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스스로를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새 이름을 지어서라도 말이지요. 언젠가 마음이 약해졌을 때 미상지라는 이름 앞에 ‘타키카와’라는 성을 붙여주었습니다. 타키카와는 ‘급류’라는 뜻입니다. 저는 용감해지고 싶었습니다. 그 후 그림을 그렸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그러나 나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더 시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그저 카페지기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자유롭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타키카와 미상지로서 창작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의외로 그저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필요한 일은 스스로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백 개의 이름을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이것이 미상지, 타키카와 미상지가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