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이다. 토요일 저녁, 적당한 카페를 찾아 커피를 주문하고 나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운다.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와이파이를 연결한다.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는다. 의식을 치르듯 경건하게. 경건해야만 한다. 마감이 코 앞이기 때문에. 카페 화장실에 비치된 핸드워시가 이솝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내용물은 딴 것이었던 게 못내 아쉽지만 괜찮다. 내겐 핸드크림이 있다.
바쁘고 어지러운 한 주였다. 주초에 있었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뜻밖의 근심을 얻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한꺼번에 우수수 쏟아졌다. 머리통이 찜통 같아 열기를 달래며 틈틈이 몇 자 적어두기도 했다. 쓰다 보면 정리가 되고, 정리가 되면 재라도 남을 테니 의미 있는 무언가가 발견되길 기대했다. 웬걸, 열기는 식지 않았고 써두었던 것은 보관함에 처박혔다. 언제 꺼내질지 알 수 없는 다른 자투리 생각들과 함께. 한 주는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시간이지만 엉겨 붙은 감정의 실타래를 풀고 쓸 만한 뭔가를 뜨기까지 하기에는 턱없이 짧았다. 나는 그 정도 초인이 못된다. 뜨개질도 못할뿐더러.
그리하여 다시 마주한 백지. 존재자체로 무시무시한. 뭐든 될 수 있으나,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그 광활함에 숨이 턱 턱- 막혀 오는 공간. 매주 맞닥뜨리지만 매 순간 처절한 심정이다. 내가 하기로 한 거라, 이번 한 번만 봐달라고 할 사람도, 숨을 곳도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좀 전에 처박아뒀던 엉킨 실을 슬쩍 다시 들춰본다. 피하고 덮어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조금만 풀어볼까… 다 풀지는 못하겠지만’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종종, 느닷없이, 나만 유별나고, 나만 이방인이고, 외계인인 것 같은, 이상한 소외감 말이다. 남들과 촘촘히 얼겨설켜 푸근히 잘 살다가도 문득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내가 속한 무리의 분위기에서, 친밀한 이들과의 대화에서 나만 살짝 비켜갈 때. 그래서 등줄기에 서늘하게 땀이 맺힐 때. 익숙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실존을 위협하며 쳐들어온다. ‘나 뭔가 단. 단. 히. 잘못된 것 같다..!’ 사실 누가 잘못 됐다기 보단, 그저 서로 달라서 생기는 해프닝이겠지만.
최근 내가 모임에서 얻은 근심이란 것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나만 이상한 것 같은, 근데 그게 내 탓인 것 같은 불안을 동반한 소외감. 문제는 이거였다. 내가 (이런 말 쓰기 싫지만) 진지충이었다는 것. 언제나 그래왔으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날은 상황이 나를 더 유별나게 만들었다. 친구들은 가벼운 수다를 원하는데 나 혼자만 너무 진지했던 거다. 친구들이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면 나는 당최 집중을 못하고, 내가 좀 진지해지려 하면 친구들은 난색을 표하니까 나는 언젠가부턴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허공만 보고 앉아 있었다. 사실 좀 웃긴 광경이었는데, 차라리 가만히 있길 잘한 것 같다. 만약 내가 몰아붙였다면 나는 그 대화에서가 아니라 아예 친구 관계에서 배제됐을 수도 있다.
억울하고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내가 들은 건 친구의 회사 파트장님이 어쨌고 저쨌고, 책임님은 이렇고 하는 이야기들 뿐이었고, 나는 정말 그 사람들이 안 궁금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대화는 관점을 나누는 것이니까!! 근데 또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머리 아프게 심각한 얘기하기보단 그냥 편하게 웃고 떠들고 싶은 마음이었을 테니. 서로에게 기대하는 대화의 감도가 다른 걸 어쩌나. 그냥 '그랬구나'하며 친구가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내게 두고 나는 적당한 때에 리액션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근데 그게 참 힘들었더랬다... 친구의 이야기에서 연결된 질문을 하고 내 관점을 이야기해봐도, 그마저도 이미 여기저기서 했던 말, 준비된 말들로 맥이 끊기는 것 같은 느낌?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해? 네 의견은 필요 없다, 넣어둬'하는 표정은 덤. 대화에 진전이라는 게 없었다. 녹음기 틀어놓은 듯 직장 에피소드를 줄줄 읊는, 내가 참여할 여지가 거의 없는 대화에서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피로는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괴로움은 온전히 진지충의 몫. 요즘은 정말 진지하게, 친구(도)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도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면서.
어쩌면 엄마 말처럼 정말 팔자라는 게 있는가 싶다. 태어난 연월일시를 꿰고 들어가지 않아도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는 지독스럽게 자기 안에 갇혀 사는 게 아닐까. 나는 그저, 타고난 대로 예민한 영혼에 머리끄덩이를 잡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해진 결말로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이 트랙, 저 트랙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면 좋으련만. 참으로 성실하게도 나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도 매번 내 트랙으로 돌아와 서있다. 나한테 주어진 운명이 외로운 섬이 되는 것이라면 뭐 어쩌겠는가. 와보고 싶도록 예쁘게 꾸며 놓고 관광 코스도 좀 짜고, 편히 오고 가라고 항구도 여럿 두고 해야겠지.
한편으로 재밌는 사실은, 영리한 친구들은 이런 나를 잘 이용해 먹는다는 거다.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 찾아 먹는 별미처럼. 어떤 사건이, 관계가, 괴로움이 커다란 웅덩이를 이룰 때, 이미 거기에 오래 고여있었을 때, 실은 마음 깊은 곳에선 빠져나오는 법을 아는데 두 귀로 직접 듣고 싶을 때, 나를 찾아온다. 나는, 지 일도 아닌데 한순간에 과몰입 해서는 대신 화내주고 열변을 토해주는 오지라퍼니까. '이렇게 함 생각해 볼래? 저런 건 어때? 요런 선택지도 있지롱~' 원맨쇼 전문이라 보는 재미도 있으니까. 그럼 한층 개운해진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 찾아온다. 놀랍게도 똑같은 문제,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그럼 난 또 생각한다. ‘진짜로, 정말로, 팔자라는 게 있는가 보다. 너는 참 지독하게 너고, 나도 참 지독하게 나다’ 그러고선 술잔을 맞대는 거다. 모르겠고, 어쨌든 다 잘 될 거라면서. 그렇게 몇 번이고 서로의 지겨운 꼴을 봐주는 게 친구니까.
사람들은 각자 특이하게 평범하다. 페소아의 말이었던가. 그는 그 사실이 안타깝다 했지만, 나는 흥미로울 따름이다. 내게는 특이하게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탐구대상이고 궁금하니까. 앞서 <소망은 족제비 같은 것>에서 밝혔듯 대화에 대한 나의 지향은 여전하다. 오직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고, 그런 순간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만 우정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는 것. 대화의 감도가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특유의 부유하는 기분을, 연결감으로 모든 게 홀가분해지는 그 짜릿한 기분을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이런 내가 부담스러운 친구들에게는 유감을 표한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계속 시도할테다.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걸 어쩌겠나. 친구들아, 지겨워도 견뎌주길 바란다!
참 좋아하는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했던 대사를 곱씹으며 한주동안 푹푹 쪘던 마음을 달래 본다. 그의 푸근한 얼굴과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아내는 내 작은 버릇들을 다 알고 있었지. 남들은 그걸 단점으로 보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장점이지. 인간은 불완전한 각자의 세계로 들일 사람을 선택하니까. 너도 완벽하진 않아. 기대를 망치게 돼서 미안하지만 네가 만났다던 그 여자애도 완벽하지는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가까운 관계란 바로 그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