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이른 봄기운에 날이 부쩍 포근한데 하늘이 뿌옇길래 물안개가 낀 줄로만 알았어요. 여기와 저기 혹은 이전과 이후의 온도 변화가 급격할 때 안개가 낀다고 하잖아요.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요. 당신에게 물었다면 무슨무슨 과학 법칙을 들어가며 내게 설명해 주었겠죠.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일정하게 침착한 어조로. 알다시피 나는 안개를 좋아하니까 들뜬 마음으로 뿌연 허공을 들이쉬고 내쉬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미세먼지였더군요. 이걸 적고 있는 지금은 아주 깊은 밤이에요. 목은 칼칼하고요.
그런 날이 있잖아요. 다 미운 날. 딱히 하고픈 것도, 흥미가 생기는 것도 없이 축축 처지기만 하는 날. 사람들은 내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거들떠도 보지 않고 제 할 말들만 하는 것 같고요. 조용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고 고심해서 고른 카페는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사람들로 시장통을 이루고, 종업원들은 앉을자리를 서성이는 나를 알은 체도 안 해요. 가려던 식당은 만석인데 더 이상 거리를 헤맬 기운이 없는 나는 아무 데나 들어가서 김밥을 한 줄 시켜 먹어요. 사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다 홧김에 설탕이 가득 든 도넛을 하나 사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요. 달콤한 것만큼 확실하게 기쁨을 주는 것도 없으니까. 사실 평소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하루인데 다 아니꼽게 보이는 거예요. 뭐 하나도 좋게 봐주기 싫은 거죠. 아무래도 요 며칠간은 세상이 내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로 꼬투리를 잡아왔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알다시피 내 성격이 좀, 그렇잖아요.
요즘 내내 그런 날들을 보냈어요. 좋아하던 것들도, 해야 하는 일들도 다 집어치우고 한적한 곳으로 야반도주하고 싶은 마음으로. 분명 마음은 그러한데, 자도 자도 피로가 가시지 않고, 조금 걷다가도 지쳐서 숨을 몰아쉬기도 하는데, 할 일들은 다 해내고 있더군요. 변명하지 않고, 툴툴대지 않고, 원래 하던 것처럼 열심히. 관성처럼요. 그러고 보니, 나 좀 어른이 됐나 봐요. 이제 제법 불쾌한 기색을 숨길 줄도 안답니다.
날씨나 기분, 그날 먹은 것들, 만난 사람들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들로 편지를 시작해 봐요. 당신과 이런 얘기를 매일매일, 지겹도록 하던 때가 생각나요. 내가 지금처럼 어른이 되기 전 (지금도 몹시 부족하지만), 천방지축에 유아독존 그 자체였던 때, 온 신경이 곤두서 있던 때 말이에요. 수화기 너머로 내가 쏟아내는 그 많은 불평불만과 변덕, 자기 연민으로 범벅된 푸념들을 당신은 어떻게 견디었나요? 지금 생각하면 그건 끔찍한 폭력이었어요. 퇴근 후 꿀 같은 당신의 자유시간을 나는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네요, 무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주는 대로 받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몰랐던 시절에 만난 당신. 아쉬운 마음은 없어요. 연락해 볼 생각도 해본 적 없고요. 그런 마음과 생각마저도 내겐 염치 없는 일이라서 그래요. 가끔 추억해 볼 수는 있어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일은 언감생심이죠. 지극히 미안한 마음으로 불편하게, 하지만 속속들이 따스하게 당신을 기억해 볼 따름입니다.
최대치의 사랑. 당신이 내게 준 것은 내 부모도 준 적 없던 무엇이었지요.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원하고 열망함과 동시에, 아이 다루듯 어르고 예뻐하고 기꺼이 자신을 다 내어줄 수가 있더군요. 그것도 한결같이. 마치 책의 결말을 이미 읽고 온 사람처럼,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될 운명이라고 확신했지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의심이 많은 내게는 기상천외한 일이었기에 더 부정하려 애썼는지 모릅니다. 안정을 주는 관계에서 되려 불안을 느끼는 바보들이 세상엔 꽤 많거든요.
본 적 없고, 받아본 적 없는 사랑에 괴로웠다는 말은 거짓일까요 역설일까요. 복에 겨웠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누가 물으면 나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내가 함께 하기에 당신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같은 연애서에 나올 법한 말들로 우리의 끝을 갈무리해요. 그 밖의 다른 말은 엄두도 안 나니까. 이건 미련이나 후회와는 거리가 먼 감정 같아요. 어쩌면 당신과 함께였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통째로 봉인해 두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준 커다랗고 둥글둥글한 마음을 내 멋대로 재단하고 모욕하고 뿌리쳤지요. 당신의 명랑함을, 그 반짝거리는 것을 가슴속 깊이 질투하는 동시에 멸시했지요. 내가 갖지 못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때 당신을 향해 지었던 표정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에요. 어쩜 그랬을까, 당신은 또 어떻게 그걸 다 감내했을까.
심리학에 그런 얘기가 있대요. 주워들은 건데, 자기 파괴적인 선택만 골라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를 벌주고 있는 거래요. 당신과 헤어지고서 나도 그랬던 것 같아요. 형편없는 사람을 만나서 참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참아보고, 무조건적으로 상대에 맞춰주려 노력하고, 세상 지고지순한 척 말이에요. 뺨은 당신이 맞았는데, 왜 엄한 놈들한테 사과를 하며 살았는지 몰라요. 그렇게라도, 멋대로 하는 나를 억누르고, 상처받게 두면서, 벌주면서 부끄러운 과거의 나에게서 도망가고 싶었나 보죠. 괴로운 나날들이었지만 잘 견뎠고, 다행히 망가져버리진 않았어요. 오랜 수감생활 후 출소하는 이의 마음으로 나름 개운할 따름이라고 한다면 누군가는 여전히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나의 양심이란 녀석이.
그간 벌만 받으면서 산 건 아녜요. 당신한테서 배운 대로, 당신이 느끼게 해 준 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해요. 사실 내가 하는 사랑과 친절의 말들은 전부 당신에게서 배운 거니까. 당신이 줬던 최대치의 사랑을 되새김질하면서, 곱씹으면서 나는 아주 잘 살고 있어요. 결핍 없이, 악의 없이, 순수하게.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면서. 꼭 당신처럼 말이에요.
사랑에 거듭 실패하면서도 나름대로 명랑할 수 있는 것도 당신 덕분이지요. 세상에 그런 커다란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경험했으니까. 재는 일 없이, 냉소 없이, 100%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가능성이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 몰라요. 그게 더 잔인한 고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꿈은 크게 꿔야지요. 사랑처럼 최대치로.
나의 여름방학이고, 새해전야의 폭죽이었던 당신. 당신에게 쓰는 편지는 아마도 이게 마지막이겠지요. 부치지 않을 테니 당신이 읽을 일도 없겠지만. 내 이야기에서 당신을 빠뜨린다면 전부 허무맹랑한 것이 되어 버릴 테니, 염치를 불구하고 적어봅니다. 누구나 부치지 못한 편지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지 않겠어요?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의 젊은 날, 인연이 되어준 당신에게 감사하며. 런던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제주 바다에서 오데사 모래사장까지 구석구석 따스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사랑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