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와 계시

by SEEYOUHERE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희박한 일인지 더 얘기하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으니 자제하겠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지금까지 해온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실망을 겪어야 함. 타협하고 마음을 추스르며 좋아하는 것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켜내야 함을 곱씹다 보면 다 포기하고 싶어 지니까.


내가 매사에 이렇게 진지할 때, 다 짚고 넘어가려 하고 일상적 감정들에까지 이유와 자격을 따져 물을 때, 오래 괴로워하고 멈춰있을 때, 나는 당신들과의 대화가 절실해진다. 내 바깥에 있으면서 내 안을 들여봐 주는 당신들.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때때로 답답하다는 듯 사뭇 질려버린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이해해 주는 고마운 당신들. 내 여자친구들. ‘쟤 왜 또 저래. 쟨 원래 저래’ 하며 같이 웃어주고 넋두리할 수 있는 당신들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맘 놓고 생긴 대로 이상한 대로 산다.


함께 나이 들며 같은 시대를 겪다 보니 우리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 것을 느낀다. 생애주기라는, 진부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생의 굴레에서 비슷한 시기, 비슷한 단계를 지나는 중이니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그 굴레 밖으로 벗어나긴 어려울 테다.


부쩍 잦은 빈도로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주제가 우리의 대화를 잠식하고 있음을 느꼈을 때, 뻔해지는 것 같아 도망치고 싶었지만 받아들이게 됐다. 중요한 문제이니까. 여자의 인생을 통째로 쥐고 흔드는, 꺾고 비틀고, 들어 올렸다가도 내리쳐버리는 게 결혼, 출산, 육아라는 것들이니까. 남들 다 하는 별 것 아닌 일 같다가도, 할 거면 제대로 잘하고 싶고, 그게 아니라면 피할 수 있을 때까진 피하고 싶은, 하지만 조바심 나는, 그러나 무시무시한, 그래도 하면 좋겠다 싶다가도 안 해서 다행이다 싶은. (진짜 내 마음은 뭘까?) 고민한다고 뭐가 나아지지도, 바뀌지도 않는 것이지만 유령처럼 매 순간 등장해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물렀거라-!’ 퇴마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말, 말, 말 뿐이다. 우리의 대화는 어쩌면 퇴마 의식일지도 모른다. 30대 여자들끼리 둘러앉아 결혼, 출산, 육아에서 비롯된 실체 없는 두려움을 소환하고 물리치는.


근래에 있었던 퇴마 의식 중 몇몇은 꽤나 성공적이었으므로 기록해두려고 한다. 적어두고 염불처럼 외우고 싶을 만큼, 쓸데없는 걱정으로부터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화였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퇴마록이고, 계시록이다.


퇴마록 1장. 친구와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이는 갖고 싶은데 결혼은 잘 모르겠다고, 결혼 없이 아이를 낳는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다고. 친구의 대답은 그 가능성을 닫으라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도, 생각도 갖지 말고 그런 말을 하지도 말라고 말하는 그 어조가 아주 단호했다. "그 마음, 그 가능성 닫아."


육아 분담 시스템만 가능하다면, 상대가 나와 부부가 아닌 채로, 내 아이의 아빠 역할을 잘 해내고 양육의 부담을 함께 짊어지는 데에 동의한다면 정상가족이 아닌 그런 형태로도 엄마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가 첫 번째 가능성이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내가 경제적, 시간적 능력만 된다면 연예인 사유리처럼 유전자를 고르고 골라 정자를 기증받아서 아빠 없이 혼자 키우는 것이었다. 친구와의 대화 이후 두 가능성 모두 잘 접어서 잘 봉해두었다. 다시 활개 치지 않도록. 그건 친구의 어조가 매우 단호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많은 부분 동의가 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대한민국 가임기 여성 중 ‘비혼모’로서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보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다. 꽤 많은 여성들이 아이는 갖고 싶지만 결혼에는 비관적이어서 곤란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른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어!’ 각자의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의 상실에 대응하는 차선책으로서 저 두 가지 가능성은 나름 합리적 이어 보인다.


문제는 차선책의 현실가능성이, 사랑하는 상대와 단란한 가정을 이뤄 아이를 갖는 최선책만큼이나 희박하다는 것이다. 실현된다 한들, 그 이후의 삶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비혼모로서의 삶, 아이의 삶. 잘 그려지지 않을뿐더러 생각만으로도 불안이 소용돌이친다.


친구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최선을 꿈꾸며 살라는 것. 그것이 어렵다고 해서 더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것.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준비해도 모자란 시간에 더 불확실한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현명한 배팅은 아니니까, 동의가 됐다. 역시, 뭔가를 바라는 마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것을 꿈꿀 땐 두려워지기 십상이니까. 뒷걸음질 치지 않고 최선의 선택으로 직진하는 데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니까.


알맞은 상대와 아이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최선의 삶(아이를 갖고 싶은 이들에 한에서의 최선 말이다)’. 그 희박한 가능성을 바라보기로 했다. ‘과연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일단은 최선을 목표로 두기. 바라는 것을 바라기. 매주 로또를 사는 마음으로, 터무니없음 안에서 꿈꾸기.


계시록 1장. 꿈은 구체적일수록 실현가능성이 높은 법. 신통방통하게도, 어떤 친구와의 대화는 내게 미래를 보여줬다. 마치 계시처럼. ‘너는 몇 날 몇 시에 누구를 만나 이러이러한 삶을 살 것이다’ 하는 예언처럼. 대화 끝엔 불확실하던 미래가 친숙해졌달까.


시작은 이랬다. 친구와 서로의 남자 취향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떠들면서, 나는 스근하고 의젓한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친구한테 신이 들렸던 것 같다.


“그럼 너는 스근한 남자를 만나서, 아들을 낳아. 아들은 아빠를 닮아 스근하겠지. 그렇게 스근한 남자 둘이랑 살아. 여왕처럼.” 막힘없이 술술 내뱉어진 친구의 말에 나는 조금 얼이 빠지기도 했다. 감탄했고 감사?했다.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던 내 결혼생활의 청사진을 거침없이 그려줬다. 환상의 오랜 부재 상태를 깨부숴줬다. 그날 저녁은 내가 샀는데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경건하고도 신명 나는 대화 끝에 내 희망의 내용은 한결 용감해지고 뚜렷해졌다. 사실, 내가 최선이라고 그레이딩 한 그런 미래가 오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계속해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인생은 충분히 재밌을 것 같다. 함께한 과거를 거쳐 현재의 자리에서 서로의 미래를 닦아주는 일. 말뿐일지라도, 보듬고 함께 고민하는 일. 그건 아무래도, 우정으로 사랑하고, 사랑으로 우정하는 일. 그것만으로 이미 나는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곡차곡 쌓이는 퇴마와 계시의 기록들 사이에서.


모두 좋은 꿈을 꾸시길. 항상 최선의 것으로, 용감하고 뚜렷하게. 되도록이면 마음이 맞는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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