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씀씀이는 ExtraL

by SEEYOUHERE

리스펙토르의 마지막 책 <별의 시간>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온 세상이 ‘그래’로 시작되었다.


‘그래’와 ‘아니’ 중에선 아무래도 ‘그래’ 쪽이 탄생과 가까울 것이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떤 얼굴들을 떠올렸다. 사람에도 ‘그래’ 부류와, ‘아니’ 부류가 있다면 ‘그래’ 부류에 해당하는 얼굴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그래, 그래, 완전 그래’에 해당하는 사람들. 내가 정말 아끼고 애정하는 예스맨, 예스우먼들. 그래, 오늘은 당신들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당신들의 귀는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마음이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겠지. 상대를 바라보는 눈초리에는 끊이지 않는 물음과 닳지 않는 애정이 주렁주렁이다. 미지의 것들에 대한 환대. 당신들은 대화 안에서 허물없고 거침없다. 마치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상처받아본 적 없는 것처럼 묻고, 답하고, 반응한다. 그런 에너지는 역시 타고나는 것일까? 나에게 쓰고도 남아 남에게도 쓸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 말이다. 나는 당신들의 그런 티 없는 에너지가 정말 부럽다.


당신들은 아무래도 푼수데기 같은 인상을 준다(positive). 분명 누군가에겐 기피대상이기도 할 테다. 당신들은 크게 웃고, 격하게 공감하며, 끝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끈질긴 스타일의 커뮤니케이터이므로 적막이 필요한 이들에겐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괜찮다.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나는 일터에서도, 일상에서도 당신들이 필요하다. 웬만하면 주변에 항상 당신들이 있었으면 싶다. 심리적인 즐거움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당신들은 기능적으로도 아주 이롭다. 둘이든 여럿이든, 그 무리 안에 푼수가 하나 있으면 많은 것들이 매끄러워진다.


"매운 거? 그래, 그래"

"디저트는 케이크로? 그래, 그래"

'아무거나' 부류와는 또 다르다.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네 맘대로 해라’ 하는 시큰둥하고 소극적인 동의와는 달리 훨씬 적극적이다. 상대의 표정과 기분, 취향을 살피고 즉각 맞춰가려는 화합의 노력이니까. 당신들은 대화에서든 회의에서든 전체적인 분위기를 샅샅이 살피고 적절한 리액션으로 흐름을 관장한다. 신나서 오버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는 대부분 매끄럽게 받아들여진다. 구성원들은 이미 당신의 호방함이 기여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가끔의 당혹감쯤은 틈틈이 쌓아둔 고마움으로 기꺼이 상쇄된다.


당신들은 종종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인다. 심지어 내가 말하는 문장의 끝을 함께 말한다. 스마트폰 자동완성 기능처럼.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내 감정에 깊이 동화된 나머지 당신들은 어느 순간만큼은 잠깐 내가 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쫓아오다가 앞지르고,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할 말을 말해버린다. 그게 얄미워서 때때로 “아, 쫌!! 나 좀 말하게 둬!”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대화가 참 좋다. 우리가 대화 속에, 함께 있는 시간 속에 충분히 적셔져 있다는 뜻일 테니까. 엎치락뒤치락, 서로의 말을 야금야금 뺏어 먹는 우리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아주 포동포동하고 귀여워진다.


나는 당신들의 덕을 많이 보았지만, 당신들과 반대 극부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시기했다가, 동경했다가, 이제는 당신들 만큼이나 항상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 얘기다.


당신이 ‘그래, 그래, 완전 그래’라면 그 사람들은 ‘글쎄, 그러든지’에 가깝다. 무리에서도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대체로 내성적인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따른다.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표출하는 에너지를 아끼고 불필요한 소란을 피한다.


근데 재밌는 사실은, 많은 경우, 그들도 결국엔 나름 만족스러운 결괏값을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닐 때도 많다) 이쯤 되면 조용함은 일종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욕심 없는 태도 덕분일까? 소리 없이, 소비 없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건 대단한 행운이고, 능력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들. 어찌 됐든 나는 내성적인 이들의 그 초연함을 꽤나 오래 부러워해 왔다. 그걸 얄밉게 여긴 적도 있으나, 간사하게 의도된 침묵이 아니라 타고난 성향에서 비롯한 것임을 이해하고 난 후로는 그들의 수동성을 귀하게 여기게 됐다. 모든 결과에 열려 있는, 퉁명스러운 듯 너그러운 수동성을. 그리고 그 또한 그들 방식의 배려라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그래, 그래, 완전 그래’와 ‘글쎄, 그러든지’가 골고루 있는 무리에 껴 본 경험이 있다면 알 거다. 그게 얼마나 완벽한 콤비네이션인지.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자와 군말 없이 따르는 자가 적절히 섞이면 무적이 된다. 집안 꼴이 잘 돌아가고 모두의 마음에 안정이 찾아든다. 각자가 가장 잘하는 걸 하면 되니까 누가 덜 했네, 더 했네 싸울 일도 없다. 그래도 이왕 여럿일 거면 푼수가 많은 쪽이 더 좋긴 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쪽이 더 재밌으니까. 난 가끔 푼수들이 판 치는 모임에서 혼자만 내성적인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넘치는 액션과 리액션으로 하루종일 대화가 끊이지 않는 그런 모임 말이다. 생각만으로도 재밌다. 푼수 만세!


모든 사람을 ‘그래’와 ‘아니’로 분류할 순 없다. 16가지 MBTI로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성정이니까. 일반화해서 말하기 어렵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떤 무리든, 서로 다른 성향의 인간 부류들이 두루두루 섞여 있다고 본다. 극단적으로 푼수들만 모인 그룹, 내성적인 사람만 모인 그룹을 생각하면 피곤해지지만 그 안에서도 정도는 다 다를 테니까. 비슷한 듯 다른 듯, 어우러져 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각자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각자 잘하는 것을 하게 두고 때때로 그것을 높이 사는 것. '그래, 그래, 완전 그래'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하고, '글쎄, 그러든지'에게 의견 좀 내라고 따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괴로움도 시작된다. 억지로 남을, 나를 바꿀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해하며 맞춰 살다 보면 다 살아지는 법. 내게 꼭 맞는 직장, 나와 잘 통하는 친구를 구태여 멀리서 찾아 헤매기 보단 지금 주어진 ‘그래’들과 ‘그러든지’들, ‘아니’들 사이에서 일상을 잘 요리하는 게 현명한 처사일 거다. 내가 그들을 보는 방식이 바뀌면 지겹게 내내 똑같던 그들도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해봐도 괴로운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번외!)


모든 물음에 웃으며 '그래~'라고 답해버리고 싶은 봄. 풀리는 날씨처럼 괜스레 푸근해지고 싶은 이 계절을 곁에 있는 사람들과 오손도손 만끽하셔라. 마음은 엑스트라 라지로 크게 열고서!

일요일 연재
이전 18화대화의 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