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카피를 쓰고 주말엔 산문을 쓴다.
아침에는 신문을 읽고 자기 전엔 문학을 읽는다.
대부분의 시간 나는 글과 함께 있다. 글을 쓰거나 읽으면서. 어떨 때는 그냥 바라보고만 있기도 한다. 특히 카피를 쓸 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써놓은 글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시간.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만큼 서체, 색상, 자간, 행간, 단어의 조합 등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는 지도 아주 중요하니까 그렇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어조에 맞게 서체도 바꿔보고 줄 바꿈도 해보고, 단어들을 이리저리 옮겨 적다 보면, 같은 말인데도 다 조금씩 다른 말처럼 읽힌다. 이러니 넋을 놓고 유심히 바라볼 수밖에. 말 그대로 바라만 봐도 좋은 당신. 나는 글이 좋아 죽겠다.
잘 쓰고 싶어서 읽고,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쓴다. 그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도대체 무얼 쓰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순 없다. 그건 나도 모른다. 쓰고 싶은 것들은 많고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읽는 것들에 따라 쓰고 싶은 것들도 바뀌기에 좋은 글들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좋은 글을 만나면 굶주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읽어 내려가던 때도 있었다. 일단 너무 좋으니까. 맛있으니까. 남이 써놓은 활자들을- 생각들을- 맛보며 전율하고 뭉클하고 피식-했다. 질투도 많이 했다. ‘아, 내가 먼저 쓸 걸’ 이젠 안다. 나도 쓰면 될 일이라는 걸. 같은 생각도 완전히 같은 생각일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여전히 질투는 한다. 어떤 작가의 글은 너무 질투가 나서 읽지도 못한다. 읽고 싶어 죽겠는 마음과, 읽고 나면 질투가 날 걸 알아서 읽기 싫어 죽겠는 마음이 싸운다. 우스운 일이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다 보면 사람이 우스워지는 법이다. 사랑이란 어쩌면 한쪽이 우스워지는 일이라고, 김애란 작가님이 썼다. 읽자마자 무릎을 탁 치게 만든 문장. '아, 내가 먼저 쓸 걸'
그렇게 섭취된 문장들은 내가 글쓰기에 임하는 태도, 방식, 방향성에 골고루 영향을 준다. 영양을 주기도 하고. 좋은 글을 만나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지 않으려 주의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나치게 영향받을까 봐. 나도 모르게 따라 할까 봐. 완전히 홀로 세워지는 창작물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표절이라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유의해야만 한다. 한 번은 메모장에 문장 하나를 필사하고서 출처를 적어두지 않아서 내가 쓴 줄 알고 연재하는 글에 담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내가 느끼고 생각해서 쓴 문장인줄로만 알았다. 너무 좋아서 곱씹다 보니 내 것처럼 느껴진 건가. 아찔하던 순간이다.
조심조심. 많이 읽되 가려 읽는다. 읽은 것들 중 기억에 남기고 싶은 것들을 스크랩하고 필사하고, 그에 따르는 내 생각을 간단히 적는다. 이젠 출처도 꼬박꼬박 잘 적어둔다. 영화나 전시를 보고도 수기를 꼭 작성하려고 한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서도 꼭 소회를 적어둔다. 쓰다가 길어지는 생각들은 한 편의 글이 된다. 그렇게 끄적이다 보면, 끄적인 것을 읽고 또 읽다 보면, 보여주고 싶어진다. 누구에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에게. 이 모든 게 그 마음에서 시작된 거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내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내가 본 대로. 내가 쓴 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당신이 봐주었으면 좋겠는 거다.
어딘가에도 밝혀두었지만,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을 주저리주저리 구태여 글로 내보이는 일은 다소 외로운 작업이다. 혼자 읽고 말던 것들에 독자가 생기니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괴로운 질문과의 싸움이다.
‘이게 과연 쓸 가치가 있는 이야기 인가?’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문장인가?’
‘누가 궁금해나 할까?’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잖아’
그럼 한 글자를 쓰는 데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진다. 나를 잡아당기고 쓰러뜨리는 질문들을 뿌리치고 천연덕스럽게, 담대하게 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쓰기로 했으니까. 누가 와서 읽든 말든! 읽는 건 읽는 사람이 알아서 하겠거니,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내 글의 독자인 당신들을 너무 의식하다가도 무시하려고 바득바득 무진장 애를 쓴다. 너무 의식하는 것도 잘 쓰려다 보니, 무시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잘 쓰려다 보니. 그래서 이런 종류의 괴로움은 결과적으론 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
글쓰기의 진짜 괴로움은 사실 다른 데에 있다. 진짜 나를 괴롭히는 건 미지의 독자도,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아니다. 그건 오히려 양심에 가깝다.
지면 위에서 생각들이 펼쳐지고, 문장으로 자리 잡고, 문체를 이루는 동안 글과 나는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쓰려던 말에 감정이 실려 어조가 강해질 때도 있고, 솔직하고 싶은 마음에 사적인 내용들이 까발려질 때도 있고,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멋있는 척을 하게 될 때도 있고, 마무리는 되도록 긍정적으로 하려는 강박적인 마음이 실릴 때도 있다. 어느 정도 만족하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글과 내가 완전히 1:1로 합치하는 일은 잘 없다. 꼭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글을 쓰는 동안 이상한 양심이 계속해서 작동한다.
‘이거 진짜 내가 하는 말이 맞아?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 아니고?’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이렇게까지 다 말한다고? 나의 체면은? 기분은?’
그럼 내가 쓴 내 글이지만 낯설고 불편해지는 때가 온다. 내가 아닌, 이미 나와 멀어진 글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쓸쓸함 같은 것. 그 괴로움을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명확히 전달하려다 보면 다 아는 듯 깊게 생각해 본 듯 쓸 때가 있다. 그럼 어쩔 땐 내가 쓴 것이, 내가 알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초과하는 기분이다. 글을 잘 쓰는 능력으로 잘 쓴 것이지, 잘 알고 잘 생각한 것까지는 아닌 것 같은 기분. 그렇게 잘 쓰는 것도 아닐 테지만, 나름대로 매끄럽게 잘 쓰인 문장을 읽으면서 문득 괴리감이 들 때면 얼른 어미를 고친다. 단정적이고 확언하는 단어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부사들을 걷어낸다. 그럼 그나마 마음이 좀 편안해지지만, 양심은 다시 몽둥이를 들고 와 위협한다.
‘솔직하게 써야지, 비겁한 거 아니야?’
솔직하게 다 내어놓고 쓰면 나와 가까운 글인가? 되려 그렇게 쓴 글 앞에서 나는 벌거벗은 듯 낯부끄러운 기분이다. 특히 가족에 대해 쓸 때, 사랑에 대해 쓸 때 그렇다. 재밌는 건, 통계를 보니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이나 사랑을 주제로 쓴 글을 가장 좋아했다. 나의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까지 글감이 되는 것이 당연할진대, 그런 솔직함이 나를 할퀴기도 한다. 이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견뎌야 할 몫인가? 어쩔 땐 낱낱이 다 말하고 싶다가도 ‘나’는 꼭꼭 숨겨놓고 이상적인 이야기나 늘어놓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를 숨기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게 내가 내 글로 널리 알려지고 싶진 않은 이유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지만서도. 자기 치부가 적나라하게 적힌 문서를 ‘대중들’이 돌려 보고 이렇다 저렇다 한 마디씩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라. 그럼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나는 내가 쓴 글보다 작은 사람이고 싶지 않다. 내 글보다 나라는 사람의 본체가 더 멋있었으면 좋겠고, 글에 쓰인 것이 전부인 사람이고 싶지 않다. 또, 수다쟁이기보다는 침묵에 가까운 사람이고 싶다. 가타부타 말하기보다 조용히 행동하는 사람 말이다. 말과 글로 벌어먹고사는 사람이,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사람이 희망하기엔 너무나도 모순적인 추구미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상반된 두 개의 마음을 품으려니 괴로운 것이 당연하리라.
봄을 만끽하자고 써 놓고서, 기력 부족으로 주말 내내 침대 위에만 있었을 때 // 마음 씀씀이를 크게 먹자고 써 놓고서, 누군가를 미워하다가 하루를 다 써버렸을 때 // 끈질기게 자기를 믿어줘야 한다고, 자기에게 솔직해지자고 써 놓고서, 자기 검열에 열심이었을 때 // 매일 연습하듯 살자고 써 놓고서, 작은 실수에도 크게 낙담했을 때 // 거울을 멀리하자고 써 놓고서, 성형 시술을 검색해 봤을 때 // 꾸준하고 성실한 운동으로 자신과 친해지자고 써 놓고서, 요가 동작이 잘 안 된다고 스스로를 질책했을 때
누가 본 것도 아니고 꼬집은 것도 아닌데 얼마나 쪽팔렸는지 모른다. 지가 써 놓고선 지키지도 못하네. 그렇게 글만도 못한 놈이 될 때마다, 내가 쓴 것과 어긋날 때마다 다시 그 궤도로 돌아가기 위해 부단히 의식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작게 행동했다고, 글도 작게만 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왜 그렇게 빡빡하게 구냐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라고, 내가 썼던 말로 나를 쏘아붙인다면 그 재치에 박수를 쳐주고는 싶지만 달리 대답할 말은 없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쓰려다 보니 그리 된 것이라서. 명쾌한 답이 있는 게 아니라 더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또한 변명일까. 변명하는 사람이고 싶진 않은데. 어찌 됐든 쓰는 것을 멈출 일은 없을 테니 자꾸만 서로 부딪치는 마음들을 잘 달래 봐야 할 일이다.
감사한 건, 내가 <돌아갈 수 없음> 연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당신들이 읽어주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종류의 시련이라는 것이다. 성장 강박증인 내게 시련은 언제나 웰컴이다. 언젠가는 이런 어려움을 뒤로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돌아갈 수 없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를.
더 나아가기 위해 마무리 짓고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오고 있는 것 같다. 쓰는 데까지 써보고 <돌아갈 수 없음>은 곧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 다음 주에도 꼭 읽으러 와주시길 바라며. 큰 일교차에 몸이 약해지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