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뒤 기꺼움

by SEEYOUHERE

기껍다는 말로 요약 가능한 요즘의 조각들


기껍다: (형용사)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쁘다


이 말의 심지는 ‘은근히’에 있다.

은근한 것은 언제나 강력하다.

게다가 은근한 기쁨이라니.

기꺼운 마음은 무적의 마음이다.


5월의 길고 달콤했던 연휴가 막을 내렸다. 시간을 낭창낭창하게 써도 좋다고 모두에게 국가적으로 허락된 시간. 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 들뜬 마음이 스며있었다. 만물이 파릇파릇, 어린이도 어버이도 스승도 심지어 부처까지도 모두 이름 불리고 축하받는 5월의 한가운데. 나 또한 불평할 것 하나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주변을 열심히 돌보았다.


내게 이번 연휴는 마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같았던 시간.

흐렸다가 맑게 갰다가, 날씨도 반반.

혼자였다가 함께였다가, 구성도 반반.

가득 채웠다가 싹싹 비웠다가, 마음가짐도 반반.


해가 쨍할 땐 마음도 쨍하게 피어나서 좋고, 흐릴 땐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차분해져서 좋았다. 나무들에 핀 초록과 꽃들이 뽐내는 화사한 형형색색에 오랜 시간 한눈을 팔았다. 그러고 보니 사진첩을 가득 채운 꽃과 이파리들. 눈을 두는 곳마다 녹음이 한창이었다.


책 - 영화 - 전시 - 산책 - 책 - 영화 - 전시 - 산책. 계획엔 없었으나 동행하는 이들의 손에 이끌려 뜻하지 않게 서울 이곳저곳에서 부지런을 떨었다. 자연이 주는 기쁨으로 이미 충만한 가운데 문화생활이 주는 영감으로 나는 초과상태가 되어버렸다. 세상에 좋은 노래들은 왜 이리 또 많은지. 일상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죽어있던 뉴런을 다 깨우는 듯한 자극. 감상을 기록해 두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시대 예술가들의 사유와 나의 감상이 섞여 만들어지는 순수한 기쁨의 결정체. 내가 이렇게 또렷하게 살아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경험들이 총체적인 것으로서 나를 사로잡았다. 모든 것이 짙은 농도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내게로 와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하나의 실로, 매듭으로. 그런 소중한 공간들로 나를 이끌고 또 함께 대화 나눠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씩 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쫄래쫄래. 그들의 취향과 시선에 잠시 깃들고 촘촘히 연결되는 시간. 그런 시간은 참 소중하다.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귀하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도 계획도 없는 온화한 봄날, 온전히 홀로 표류하는 것만큼 기꺼운 일도 없다. 누군가와 약속한 것도 아니니 언제든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으니 꽃밭을 누비는 나비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 모든 결정의 부담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은근한 긴장을 초래하지만 그 또한 기꺼이 감수할만하다. 결국엔 만족하는 것도 나, 실망하는 것도 나 하나이니까. 나를 달래는 일은 언제부터인지 그닥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갈 곳을 정하고, 읽을거리와 쓸 거리들을 챙겨 무작정 나가니 그때부터가 여행이더랬다. 괜히 눈 마주치는 모두와 인사 나누고픈 기분. 맨날 다니던 길도 달리 보이고, 부쩍 많아진 여행객들을 보면서 어느 나라 사람일지 속으로 맞춰보기도 했다. 우르르 가족들끼리 와서 다 같이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이들은 행색으로 보아 인도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어떤 목적으로 서울까지 왔을까. 다양한 세대의 열댓 명 되는 구성원들 모두가 오케이 할 만큼 서울이 여행지로서 매력적인 곳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누군가에게는 삭막하고 지긋지긋해서 떠나고픈 현실의 공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명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만끽하고픈 도시이리라.


마음이 부드럽게 누그러진 사람들 사이를 함께 또 홀로 거닐며 선의와 환대와 미소 속에서 충분히 기뻐한 나날들. 밖에선 모든 것이 감정을 건드리고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촉발제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퍼져나고 감동스러운 마음에 여러 번 왈칵 눈물 흘리기도 했다. 심지어 무심코 들어간 카페들에서도 나는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아는 사장님들과 그들을 꼭 닮은 공간들. 어떻게 보면 그저 음료와 자리를 내어주는 공간일 뿐인데 나는 꼭 누군가의 방에 잠시 초대된 듯 조심조심 행동했다. 주인장의 손길과 사연이 깃든 물건들을 조심히 들여다 보고 혼자 조용히 감탄했다. 사람이 잘 묻어난 공간들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잠시 방문하는 이의 손에도 저마다의 영감과 질문들을 쥐어주는. 그리고 그런 일들은 알게 모르게 진행된다.


그렇게 여행하듯, 밖에서의 경험들에 속수무책으로 취하는 동안 안에서는 열심히 비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누군가 가장 확실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물으면 숨도 안 쉬고 청소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음에 우울이 찾아든 이를 만나면 서랍 하나를 비워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집이든 회사든, 자기 공간에 있는 서랍 하나. 아무것이나 되는 대로 처박아 둔 물건들이 잠자고 있는 그 서랍 말이다.


손에 잘 닿지 않고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쓰임에 대해 골똘하고 버리기로 결심하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점점 비워지는 집의 한켠을 지켜보다 보면 그 여백만큼의 평화가 찾아든다. 묵은 생각과 감정들을 단박에 씻어내기는 어려우나 서랍 하나를 비우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해낼 수 있다. 버릴 건 버리고 쓸 것들은 자기만의 체계에 따라 다른 서랍에 정리해 둔다. 물건들은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았고 당분간은 잘 쓰일 것이다. 다음에 있을 서랍 비우기에서 탈락해 버려지기 전까지는.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 버릴 것이 없는 상태에 다다르기. 비운 곳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매일 저녁 그날의 땀과 때를 씻어내듯이 내가 사는 공간, 내가 입는 옷,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도 잘 씻겨주어야 한다. 잘 털어주고 비워주고 닦아주는 일만큼 나를 잘 돌보는 방법은 없다. 밖에서 아무리 비싸고 좋다는 것들로 나를 채우려고 해도, 멋진 전시나 영화를 봐도 소용없다. 쓰지 않는 물건들이 지박령처럼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집 안으로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들고 들어가도 자리 잡지 못하리라. 그럼 결국 쌓이는 건 불만과 쓰레기뿐이다.


집에 들인 물건들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나와 물건의 관계. 만남의 기쁨이 있었고 집까지 데려와 물건에 내 자리를 내어주었고 얼마간 동고동락했다. 때론 단짝처럼 자주 만나고, 때론 가족처럼 당연한 듯 오래 잊고 지내기도 했다. 더 좋은, 새로운 물건으로 대체됐거나 단순히 더 이상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물건들. 쓰임이 애매해진 물건들. 잘 들여다보면 그 물건들 하나하나와 내가 이루는 관계에 따라 그 물건의 가치가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더 잘 들여다보면 그 물건들의 관계에 따라 더불어 내 가치도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쓰이지 않고 외면당하는 물건들이 곁에 쌓일수록 사람도 함께 외로워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소외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부단히 버려야 한다.


안 쓰는 물건을 버리듯 사람도 버린다고 말하면 너무 매정해 보이려나. 하지만 이 또한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 무 자르듯 댕강 끊어낼 일은 또 아니지만 만날 사람도 그때그때 잘 솎아내고 가려낼 필요가 있다. 정원을 가꾸듯 내가 물을 줘야 할 식물들과 뽑아내야 할 풀들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끊임없이. 왜냐하면 그래야 정말 좋은 걸 함께 나누고픈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잘 정리하는 건 내가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잘 주기 위해서다. 주고도 눈알을 굴리며 마음 불편한 것이 아니라, 무얼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으로 만날 사람들만 남기는 것이다. 좋은 것만 주고픈, 나누고픈 사람들로 나만의 정원을 꾸리는 거다. 그렇게 기꺼운 마음만 남기고 짜증과 미움과 질투가 섞인 감정들은 다 버려버리기.


안으론 비우고 밖으론 채우니 만사가 형통하더랬다. 공기도 혈액도 순환이 생명이지 않나. 아무래도 곧 떠날 여행에 앞서 들뜸과 동시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미리미리 잘 비워놔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이다. 무사가 칼을 휘두르듯 과감한 몸짓으로 집안 이곳저곳에서 휴면상태에 있던 물건들을 꺼내다 숙청했다. 침대 옆에 두었던 큰 서랍장 하나를 비우고 그 서랍장이 있던 자리도 비웠더니 시계나 책 같이 간단한 소지품을 둘 곳이 없어 애매한 찰나였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작은 사이즈의, 상태 좋은 2단 수납장이 버려진 것을 보았다. ‘이 빌라의 다른 누군가도 서랍 비우기를 했군’ 반가움과 동시에 그 2단 수납장이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로 적합하겠다는 생각에 얼른 들고 왔다. 비워서 새로 채워진 자리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런 선순환. 6월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지 간에 아나바다 운동은 부흥돼야 마땅하다.


여행, 그래 여행 말이다. 곧 떠난다는 사실에 일상도 달리 보인다. 별 거 아닌 일들도, 풍경들도 다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 설레는 마음이 설레발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떠나는 것 또한 잘 돌아오기 위함일 테니 내가 떠나는 동안 남겨질 집과 나의 고양이를 살뜰히 살피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여행기를 찾아서 읽는다. 그러다가 여행에 앞서 비우기를 실천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중에 함께 나누고픈 내용이 있어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시칠리아 여행기이다. 나에게 떠오르는 물음과 공명하는 글을 만나면, 그것도 아주 알맞은 때에 만나면 언제나 기껍다. 그 은근한 기쁨을 당신들과도 나누고 싶다.


비움 뒤에 오는 기꺼움.

비온 뒤 맑은 하늘처럼 말간 마음.


기꺼이 맞이하는 일요일 아침, 연휴도 다 지나고 당분간은 여행 계획 같은 건 없다고 해도 비움 뒤 찾아드는 기꺼움 속에서 매일을 여행처럼 사시길 바라며 서랍 하나를 비워보시길 권해본다.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물질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순수한 힘으로 보았다. (……) 그들에게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하나의 사상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곡의 음악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이럴 때 나의 힘은 더욱 순수하고 강해진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더욱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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