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나 잘되라고 하는 얘기

by SEEYOUHERE

네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질퍽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어도 매 순간 고독에, 조바심에, 질투에, 어처구니없는 상실에 발이 푹푹 빠지고 만다. 모두가 각자의 고뇌에 온 신경을 쏟는 탓에 주변을 둘러보는 이가 드문 와중에, 너는 계속해서 너의 고독과 조바심과 질투, 어처구니없는 상실까지도 나눌 수 있는 벗을 찾아 헤맨다. 그 쉼 없는 여정에서 별꼴을 다 보고도 너는 여태껏 상처를 받는구나.


네게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던 때가 있었다. 타인이 풍기는 막연하고 낯선 기류에도, 은근한 배척에도 너는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대화를 이어나가고 호감을 사는 일이 어렵지 않던 때, 쉽게 사귀어도 흘려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던 때 네가 느꼈던 공허함을 기억한다. 남들과 어울리느라 자기랑 친해지는 일엔 소홀했던 탓이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무렵 네가 마주한 세상의 온갖 진실들 중에서도 그것은 꽤나 중대한 발견이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사람이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이라면, 네가 찢고 부수고 나온 외피는 과연 몇 겹이나 될까. 지금이야 그 허물들을 보며 미소 짓게 됐지만 그때 너는 무수한 겹으로 찌푸려져 있었다. 이유 없이 그냥 생기는 불행과 허무맹랑한 이별, 뾰로통한 관심과 소외, 불성실한 오해 같은 것들이 눅눅하게 겹을 이루는 절망의 페이스트리. 그토록 불행했던 그때의 네가, 지금처럼 충만한 마음으로 기뻐할 나날들을 맞이할 줄 알았다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까. 덜 쓸쓸했을까.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널따란 바다처럼, 너는 계속해서 새로운 생각이 샘솟고 속을 알 수 없이 깊은 물의 사주를 타고났다고 네 엄마는 말해주었다. 그 말에 갇힌 걸까. 너는 자꾸만 익숙한 데에서 벗어나려고 열심이다. 호기심은 왕성하고 웬만한 변화에 열려있으나 뜻이 감지되지 않는 것엔 이끌리는 법이 없다. 피상적인 것들은 네 눈길에 닿지 못한다. 무엇이든 깊게 깊게, 하지만 싫증은 빨라서 장거리 연애면 몰라도 장기 연애에는 소질이 없는 너. 누군가는 너무 깊게 사귀려고만 하니까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라 조언해 주었지. 나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네가 가볍고 단순한 것들과도 친해지길, 얕고 은근하게 지속되는 관계 안에서의 안락함을 느껴보길 항상 바라고 있다. 팔자나 운명 같은, 나를 알고나 하는지 모르겠는 말들에 갇혀 살기엔 너의 젊은 날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다.


소명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부름의 무게로 중심을 잡는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함을 분별하며 살 때 그 육중함은 삶을 짓누르는 무엇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곳에 흔들림 없이 존재하도록 돕는 것이 된다. 어쩌면 너는 너의 소명을 찾은 것 같다. 흔들리는 일이 있어도 재깍 제 궤도로 돌아오는 것을 보니. 남들과 애정을 나눌 줄도 알고 말이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이 씨가 되어 잘 자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 너의 소명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지. 네게 좋은 어른이 필요했던 그때 너는 이미 마음을 먹었는지 모른다. 네가 바라는 그 어른이 되기로. 역시, 정말 귀한 것은 결핍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듯,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가장 취약한 곳에서 비로소 새 시대의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일 테지.


내 딸이자 가장 오랜 친구. 좋은 것만 주고 싶고 무얼 한대든 다 믿어주고픈, 힘이 돼주고픈 존재. 한평생 미워하고 달래기를 반복해 왔지만 여전히 더 알고 지내고픈 지긋지긋한 나의 연인, 너는 나다. 얼마나 더 다투고 화해해야 우린 더 친해질까. 아직도 다 헤아리지 못한 네 모습들이 너무 많다. 고백하건대, 나는 네 잠재력을, 가능성을 다 끌어다 쓰진 못한 것 같다. 사사로운 것들에 연연하면서 흥청망청 흘려보낸 시간들도 너무 많고.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건, 너로 좀 더 살아도 좋다고 신이 기회를 주는 것만 같다.


그럼 살아야지.

너로 살아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그러니까, 나로 살아서 할 수 있는 일들.

내가 나라서 할 수 있는 일들.


나는 어쩌다가 나로 태어났을까. 이때의 이 모습으로, 이런 사람들이랑 함께 살아가게 되었을까. 그것엔 어떤 합당한 이유도 그럴듯한 원리도 없다. 있는 것은 나와, 내가 매일 만나는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의미들, 이야기들. 나는 그런 것밖엔 모른다. 대신 아는 건 잘 해내자고, 까먹지 않도록 여기저기에 잘 적어둔다. 그럼 거창한 신비에 빠지지 않고도, 운명에 기대지 않고도 내가 나인 걸 견딜 수 있다. 나인 채로 살기. 그저 나로 살기, 그뿐인데 그게 애쓰지 않으면 잘 안 된다는 것도 참 우스운 일. 오히려 좋지 뭐,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이니까.


글을 쓰고

피아노를 치고

춤을 추는 삶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찾아 먹는 삶


그걸 위해 벌고

벌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배우는 삶


그 밖의 무얼 더 바랄 수 있을까


내가 시간을 쓰는 것이 곧 나.

내가 돈을 쓰는 것이 곧 나.


그렇다면 나는

글이고 음악이고 춤이다.

책과 요가, 커피와 디저트가 곧 나다.

(그렇다면 나, 제법 달콤한 사람일지도?)


나를 내 자식인 것처럼 대하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듯이. 금이야 옥이야, 공주님을 대접하듯 극진히. 좋은 거 먹이고, 좋은 거 입히고. 밤늦게 군것질하지 말아라- 유튜브는 이것까지만 보고 그만 봐라- 때론 엄격하게 대하기도 하면서. 혹여나 물들까 질 나쁜 사람들과는 어울리게 두지 않는다. 집안의 청결에 유의하는 것도, 식재료의 산지를 따지는 것도 다 나 잘되라고 하는 일. 오늘은 현관을 깨끗이 닦았다. 드나드는 발걸음이 산뜻하길 바라면서. 제철 과채는 한 두 가지씩 꼭꼭 냉장고에 채워놓고 잘 챙겨 먹인다. 나를 보살피는 데에 이보다 더 지극한 방식이 있을까? 이렇게 사랑으로 돌보는데 내가 엇나갈 수는 없을 테다. 잘 돌봐주는 것은 결국 잘 봐주는 것이 아닐까. 못나고 부족한 것까지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 나야, 모쪼록 너답게,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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