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는 지금, 여기에만 있다

by SEEYOUHERE

누구와 어딜 가서 무얼 먹고 무얼 할 건지 생각하고 정하는 건 내겐 즐거운 일이다. 만나는 상대에 따라, 그날의 날씨에 따라 고심해서 장소를 고르고 하루의 일과를 큐레이팅한다. 날이 좋다면 밥을 먹고 걷기 좋은 망원이나 연희, 서촌쪽을, 전시나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면 관람 후 편히 감상을 나눌 만한 분위기 있는 카페나 술집을 찾아본다. 어떨 때는 만날 사람을 생각하고 있으면 함께 가고픈 곳들이 착착 떠오른다. 또 어떨 때는 인스타그램을 한참 보다가 카페의 창밖 풍경 사진 하나, 음식점 사장님의 소개글 하나에 ‘여긴 꼭 걔랑 가야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한껏 들뜬 마음으로 제안했을 때 흔쾌히 따라주는 지인들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다.


서울엔 맛있는 게 정말 많고 각자의 종목에 심혈을 기울이는 식당들이 밀집해 있어서 특정한 음식 메뉴가 주가 되는 만남일 때 나의 서치 능력이 폭발한다. 이를테면 회나 (구워 먹는) 고기, 야키토리, 피자 같은, 상향평준화 돼서 분위기나 취향에 따라 장소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메뉴들은 나를 즐거운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 맛은 꼭 이 집을 가야 맛볼 수 있어’ 싶은 대체불가의 맛집은 번외다. 그런 집은 다른 걸 다 포기하면서 구태여 가야지 그 매력이 산다) 묵직한 메인 메뉴에 사이드까지 매력적인 곳은 아무래도 여럿이서 우르르 가야 이것저것 맛볼 수 있어 좋고, 규모도 테이블도 아기자기한 곳은 밥을 먹다가 서로에게 침이 튀어도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친구와 둘이 가는 것이 좋다.


리뷰가 좋은 식당과 카페들을 찾아 줄 세우고 접근성이 좋은지, 화장실은 깨끗한지와 같은 디테일에 점수를 매겨가며 신중히 리스트를 추려나간다. 웬만하면 맛은 보장된 곳들 사이에서 그날의 만남에 딱 어울릴 만한 단 하나의 장소를 뽑는 건 꽤나 고도의 집중을 요한다. 그래서 누군가, 연애 상대가 데이트 코스를 짜오길 바라는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요’다. 그 들뜨고 즐거운 일을 왜? 만남에 앞서 그날의 톤 앤 매너를 결정할 기회. 그 중대한 역할을 맘 놓고 넘겨줄 만큼 섬세한 남자를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요즘 식당과 카페들은 인스타그램으로 많은 것을 공지하기 때문에 방문 전에 꼭 체크해야 한다. 지도에 다 표기되지 않은 휴무일과 브레이크 타임, 혹시 모를 공지사항까지 다 확인하고 나면 이제 잘 짜놓은 대로 거닐고 방문할 일만 남는다.


계획을 다 짜놓고 나서 동행자에게 알릴 때의 두근거림, 그 노력을 알아봐 줄 때 더해지는 고마움은 큰 보상이 된다. 그치만 내가 권한 장소와 이벤트, 음식을 마주한 순간 동행자의 얼굴에 만족감이 비치는 것을 확인할 때가 단연 가장 기쁘다. 그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을 때, 그 여파로 우리의 대화도 술술 매끄러워질 때, 그래서 다음 만남이 벌써 기대될 때 그날 하루가 충만하게 기억된다. 날씨와 공간과 음식과 사람, 내가 바랐던 모습 그대로 그날 거기에 그렇게 있어준 모든 것들에 대해 회상하다 보면 내 인생에 그것들이 전부인 것만 같다. 날씨, 공간, 음식,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


삐끗하는 날들도 물론 있다. 휴무일을 착각하거나, 이동 중에 코스가 꼬이거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느꼈던 무드와는 사뭇 다른 공간을 마주하면서 실망하는 때도 참 많았다. 실망감이 너무 커서 정작 그날 만난 사람에게 마음을 온전히 쏟지 못하기도 했다.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좌절감, 함께 실망했을 상대에 대한 미안함, 탈락했지만 더 나은 곳일 수 있었던 대안들에 대한 아쉬움이 나를 압도했다. 상대와 나누었던 대화, 웃음 그런 것들까지도 다 가리고 덮어버렸다.


모든 상황을 내가 다 컨트롤하고 대비할 수 없다는 걸, 게다가 ‘완벽한 순간’이라는 것이 꼭 잘 짜인 계획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런 강박이 상대에게 부담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도, 그날의 만남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편이 더 완벽한 순간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것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어쨌든 만남이라는 것은 정답이 정해진 퍼즐을 맞추는 것이라기 보단 각자의 붓으로 덧대며 그리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것일 테니까.


철저한 사전 조사, 여기 다음은 저기 같은 계획 없이 우연이 이끄는 대로 하루를 채우는 법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미련한 완벽주의를 내려놓게 하는 사람들. 그중에 아라언니가 있다. 눈썰미도 순발력도 좋아서 함께 있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기 발랄한 말솜씨로 내 웃음보를 빵빵 터뜨리는 사람. ‘아라’라는 이름 덕인지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많은 언니를 만날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덜 계획적인 사람이 됐다. 물론 언니와 꼭 가고픈 장소를 먼저 골라 데이트 신청을 할 때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아라서(알아서) 어떻게 잘 되겠거니-’ 했다고 해야 하나.


언니가 한솔 오빠(언니의 구남친이자 현남편)와 캠핑을 다니는 걸 보고는 나도 껴달라고 졸라서 셋이 간 적이 있다. 남양주였었나. 어디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캠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서 언니 오빠에게 모든 걸 맡기고 나는 몸만 가는 꼽사리였으니까 장소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일행에서 가장 무책임한 멤버가 되는 기분은 퍽 좋았다. 요즘은 그걸 수발놈(자기는 아무것도 안 해서 수발을 들게 하는 놈의 줄임)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그날 완벽하게 수발놈이었다. 언제나 계획을 짜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난데, 그 부부 사이에 끼기만 하면 철부지 딸이 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장을 볼 때도 “난 잘 모르니까 언니가 골라!” 하면 그만이었고, 캠핑장에서도 한솔 오빠가 시키는 대로 와서 텐트의 봉을 잡으라면 잡고, 의자를 펼치라면 펼치니 만사가 뚝딱이었다. 비바람이 불었다가 - 잠깐 해가 떴다가 - 싸라기눈이 내렸다가 - 눈발이 커졌다가 하는, 소위 미친년 날뛰는 날씨였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셋이서 “와- 날씨 왜 저래” 이러면서 우적우적 태평하게 핫도그를, 소고기를, 애호박을, 버섯을, 떡을, 고구마를, 꿀호떡을, 그 외에도 구울 수 있는 건 다 구워 먹고 스모어도 해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해 있었을 텐데, 있는 그대로의 순간에 나름의 재미를 더할 줄 아는 부부 사이에 있으니 내 마음도 너그러워졌다.


캠핑은 정말 듣던 대로 먹고 치우고의 연속이었다. 질 좋은 호주산 소고기를 배 터지게 먹었는데도 불판을 설거지하고 이것저것 치우고 나니 아까 먹었던 고구마랑 호떡이 또 당겼다. 너무 배가 불러서 가쁜 숨을 쉬며 난로 곁에 앉아 있는데 아라 언니가 결연하게(?) 은박지로 싼 군고구마를 집어 들었다. 껍질을 벗기고 길게 반으로 갈라 그 사이로 맛있는 가염 버터 한 조각을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한 입 앙- 베어 물었다. 아까 이미 먹었던 맛. 우리가 입을 모아 찬사를 퍼부었던 그 달콤하고 고소한 감동의 맛. 아는 맛은 무시무시한 것이라서 언니가 먹고 있는 걸 앞에서 보고 있자니 나도 한 입 먹고 싶어졌다. 먹고 싶은데 배가 너무 불러서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보며 언니가 말했다. “배부르지만 난 이걸 먹어야겠어. 이 맛은 다시는 안 와. 아무리 똑같이 해도 안돼. 오늘 여기서밖에 못 느낀다니까?”


너무 맞는 말을 들으면 머리에서 종소리가 난다. 영화에서처럼. 그 순간에도 그랬다. 한 입 한 입 꼭꼭 씹어 고구마의 맛을 느끼는 언니 곁에 앉아서 나도 언니처럼 살아봐야지 싶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을 온전히 즐기면서, 소중히 여기면서. ‘지금, 여기’는 지금 여기에만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내 기억 속에 달큰 짭조름한 버터고구마의 맛과 함께 각인되었다. 아마도 나는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곱씹을 것이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과 홍차가 있듯, 내겐 군고구마와 버터가 있다.


변수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장난 같은 우연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살아보고 있다. 즉흥적으로. 통제하려 들지 않고. 그래서인지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며칠 전엔 또 아라 한솔 부부를 비롯해서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낭창낭창한 일요일 하루를 보냈다. 뭘 먹을지도 즉흥, 어디를 갈지, 버스로 갈지, 지하철로 갈지, 언제 내릴지도 즉흥, 누구를 또 부를지도 즉흥이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짜 맞춘 듯 매끄러웠고 무엇보다 유쾌했다. 날씨도 크게 한몫했지만 모두가 그 순간의 대화와 분위기에 온전히 젖어있었기에 가능했던 하루였다. 각자의 최선을 덧대어 완성된 하루. 너무도 완벽해서 선물 같았던 하루. 그렇게 우리는 낮에 만나 밤이 늦도록 푸지게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철저히 알아보고 계획해서 만나는 즐거움은 내가 찾아가서 얻어내는 즐거움이다. 나는 그런 즐거움도 여전히 사랑한다. 근데 맞닥뜨리는 즐거움도 사랑하게 됐다. 내게 돌진하는 즐거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기뻐할 수밖에는 없는 즐거움 말이다. 그 마법 같은 감정은 왠지 혼자일 때보다 같이 호들갑을 떨어줄 사람과 함께일 때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나와 함께 2025년의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어주는 사람들, 당신들! 정말 최고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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